복수초 앞에서, 내 삶의 시기를 묻다

복수초_20회

by 광풍제월

복수초 앞에서, 내 삶의 시기를 묻다

2023.2.15. 일


10시에 복수초 꽃을 보기 위해 홍릉수목원 앞에서 아내를 만났다. 우연인지 작년 오늘도 이곳에서 아내와 함께 복수초 개화를 지켜보았다. 1년 전의 장면이 겹쳐지듯 떠올랐다.


복수초 군락지로 가니 여전히 목책 울타리가 둘러져 있고 몇 사람이 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른 시간이라 꽃잎은 거의 닫혀 있었다. 나는 어제도 이곳에 왔었다며, 3시가 지나자 몇 송이는 완전히 꽃잎을 열었다고 말했다.


온도가 조금 더 오르면 다시 보자고 말한 뒤,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조경인의 숲까지 걸어 올라가며 나무들을 살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이곳을 자주 찾았었다. 작살나무와 쪽동백나무의 겨울눈을 설명해 주고, 진달래와 철쭉을 구별하는 법도 이야기했다. 숲은 여전히 제자리에 있었고, 나는 예전처럼 숲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다만 시간이 조금 흘렀을 뿐이다.


11시 12분, 다시 복수초 군락지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더 모여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목책 울타리가 필요한 이유를 생각했다. 울타리는 단순한 금지가 아니다. 꽃을 쉽게 만질 수 없도록 물리적 거리를 두면서, 함부로 다가설 수 없다는 마음의 거리도 함께 만들어 준다. 경외심은 그렇게 생겨나는지도 모른다.


이전보다 꽃이 더 많이 피어 있었다. 몇 송이는 활짝 열려 햇빛을 정면으로 받고 있었다. 어떤 것은 아직 몽우리였고, 어떤 것은 완전히 꽃을 펼쳤다. 같은 공간에서도 개화의 속도는 달랐다.


가까이에서 꽃잎을 확대해 보니 황금빛 술잔 모양이 또렷했다. 그래서 복수초를 ‘측금잔화’라 부르는가 보다. 옆으로 기울지 않고 햇빛을 향해 단정히 열린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몽우리에서 술잔 모양으로, 그리고 활짝 피어나는 과정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인간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겠다고.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느 단계에 와 있을까. 활짝 피어났던 시간을 지나, 이제는 서서히 내려앉는 쪽에 가까워진 듯하다.


꽃은 질 때 모양이 흐트러진다. 나는 그 흐트러짐을 바라보며 오히려 자세를 고쳐 선다. 다시 피어나려 애쓰기보다, 지금의 자리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노년의 아름다움은 다시 꽃을 피우는 데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단정히 빛을 받는 태도, 어쩌면 그곳에 있을지 모른다.


오늘 만난 복수초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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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황금 술잔 모양, (우) 만개한 복수초(홍릉수목원,2026.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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