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월사 산길에서 배운 것, 나무는 겉으로 판단하지 않음

나무는 겉으로 판단하지 않는다_29회

by 광풍제월

망월사 산길에서 배운 것, 나무는 겉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2026. 4. 4. 토 (D-271)


우리는 생각보다 쉽게 판단한다. 눈에 보이는 장면 하나로 상황의 전부를 이해했다고 믿는다.

지난 토요일, 망월사 산길에서 그 판단이 얼마나 얕은 것인지 잠시 멈춰 서게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날씨부터 확인했다. 비 예보에 내심 걱정했지만, 다행히 하늘은 용케 버텨주고 있었다. 혹시 몰라 우비와 우산, 스틱까지 챙겨 집을 나섰다. 망월사역에 모인 이들은 대부분 비를 대비해 겨울에 가까운 복장을 하고 있었다.


우리 조는 여덟 명, 서성규 강사님과 함께 가장 마지막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길을 오르며 강사님이 툭 던진 말이 마음속에 깊은 파동을 만들었다.

“많이 아는 것보다, 하나를 깊게 아는 게 중요합니다.”


그 말에 응답하듯, 초입 바위틈에서 매화말발도리를 만났다. 손톱만 한 흰 꽃들이 척박한 환경을 견디고 몸을 기대 피어 있었다. 우리는 매년 같은 자리에서 피는 꽃이라 여기지만, 그들이 건너온 시간은 결코 같지 않을 것이다. 지난겨울을 각자의 방식으로 버텨내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나무에게 조용히 인사를 건넸다. 다시 만나서 참 반갑다고.


조금 더 올라가자 북한산국립공원의 상징인 ‘깃대종’ 표지판이 우리를 맞이했다. 깃대종이란 특정 지역의 생태적, 문화적 특성을 반영하는 상징적인 야생 동식물을 뜻한다. 이곳 북한산의 주인공은 바로 산개나리와 오색딱따구리다.


지천에 흔하게 널린 것이 개나리라지만, 이곳에서 만난 산개나리는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물푸레나뭇과에 속하는 이 녀석은 일반 개나리와 비슷해 보여도 꽃이 조금 더 작고, 잎 뒷면에 보송보송한 잔털을 품고 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놓치고 말 그 미세한 차이를 발견하는 순간, 마치 숨겨진 보물을 찾은 듯 어깨가 으쓱해졌다. 익숙함 속에 숨은 특별함을 알아보는 일, 그것은 결국 '대상을 대하는 자세'의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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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깃대종 산개나리(2026.4.3)

답사가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생강나무를 설명하던 중 나뭇가지 하나가 툭 하고 부러졌다. 순간 모두의 시선이 강사님에게 향했다. ‘아, 실수로 꺾으셨구나.’ 나는 너무도 당연하게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강사님은 부러진 단면을 보여주며 말씀하셨다.

“이건 제가 한 게 아닙니다. 굵은수염하늘소가 자른 흔적이지요.”

순간 망치로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상황은 단순했지만, 원인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눈앞의 장면만으로 판단하고, 보이는 대로 이해했다고 믿었던 나의 오만이 부러진 나뭇가지 하나 앞에서 멈춰 섰다.


망월사 산길을 내려오며 생각했다. 나는 오늘 나무를 본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좁은 시야와 성급한 방식을 다시 보게 되었음을. 나무는 겉으로 자신을 다 말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가 깊게 보지 못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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