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단 한 번도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죽으면 내가 남긴 디지털 발자취는 어떻게 될까?
나는 한동안 페이스북 활동을 열심히 해 왔다. 지금 살펴보니 참 다양한 내용들이 그것도 많이 포스팅 되어 있다. 페이스북에 올린 공개된 나의 글과 사진을 훑어보면 대충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지 등을 아는 데에 큰 무리가 없을 정도다. 나뿐 만이 아닐 것이다. SNS 시대를 살고 있는 많은 이들의 공적/사적 내용들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유튜브, 블로그, 밴드 등에 게시되어 있다. 우리가 죽으면 과연 디지털 발자취들은 어떻게 될까?
지금 소개할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를 읽어보면 그 해답은 생각보다 무게감이 있을 뿐만 아니라 결코 단순하지 않다 사실을 알게 된다.
먼저 이 글을 읽는 어떤 분들은 자신이 SNS를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이기에 디지털 발자취가 별로 없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디지털 자산 목록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많다. 책에 나온 목록들을 보라. SNS는 물론이고 모든 이메일 계정과 비밀번호, 모든 금융 관련 계좌 정보, 모든 온라인 상점 계정과 비밀번호 그리고 구매 내역, 모든 여러 가상 화폐, 클라우드에 저장된 디지털 자료, 카카오톡 등의 메신저 내용, 방문 사이트 내역과 검색 내용 등이 모두 포함된다.
내가 지금 당장 죽지 않는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디지털 자산은 더 많이 누적될 뿐만 아니라 전혀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발자취를 계속해서 남길 것이다.
뭐 많다고 치자. 나야 죽으면 그만이고 내 가족이 다른 유산처럼 상속 받으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것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일단 디지털 자산에 대해 유서를 남긴 사람들이 전무하다시피하기 때문에 대부분 유족들이 디지털 유산에 대한 고인의 의지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게다가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에 나온 연구 결과를 보면 자신의 디지털 자산에 대해 배우자는 모르겠지만 부모의 경우에는 접근에 대해 거리낌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당신은 어떤가? 당신의 카톡 등 메신저, 이메일, 검색 내용 등을 당신이 죽은 후에 부모가 봐도 괜찮다고 생각하는가? 더 나아가서 배우자는 괜찮은가?
솔직히 나는 별로 보이고 싶지 않다.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에서는 평소라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개념 하나를 제시한다. 바로 ‘사후 프라이버시’이다. 디지털 시대 전에는 죽은 사람의 프라이버시는 완전히 무시되어 왔다. 실제 살아 있을 때에도 죽은 후 자신의 프라이버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한 사람도 거의 없다. 하지만 디지털 자산이 개인에게 주는 임펙트는 완전히 다르다. 물적 유산으로 한 개인의 깊은 속마음과 작은 행동까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디지털 자산은 다르다. 절대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과 치부까지 알 수 있는 것이 디지털 자산이다.
자 그렇다면 당신은 자신의 가족들에게 당신의 디지털 유산을 남길 것인가? 아니면 전혀 접근하지 못하게 할 것인가? 여기서 놀라운 사실 두 가지. 디지털 자산은 일반적인 물적 유산과 다르게 당신이 유서를 남기지 않았을 때 가족들에게 상속되지 않을 수도 있다. 심지어 어떤 디지털 유산들은 당신이 유서를 남겨도 상속되지 못할 수도 있다.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에서는 이 사항에 대해 여러 가지로 논의를 하고 있다. 먼저 온라인 서비스 계정의 경우 명의 도용 등의 위험이 있기에 유족들에게 넘겨줄 수가 없다고 한다.
“대부분의 온라인 서비스는 사용자 한 명당 하나의 계정씩만 허용하는 정책을 필수적인 약관으로 갖추고 있다. 이는 사용자를 식별할 수 없는(어쨌든 지금까지는) 인터넷상에서 신원 도용, 사칭, 저작권 침해, 금융사기, 명예 훼손 등과 같은 온갖 종류의 범죄 활동을 막기 위해서다. 인터넷 기업이 사용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을 때, 그 기업은 법적 책임이라는 구덩이 앞에 놓이게 된다.” -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 p. 163
특히 메신저 자료는 또 다른 독특한 이유로 유산을 남겨줄 수 없다. 메신저는 고인의 프라이버시만 걸린 게 아니라 고인과 대화를 한 살아있는 모든 사람의 프라이버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만약 A라는 사람의 애인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는데 애인의 유족이 애인의 모든 카카오톡 내용을 소유한다고 생각해 보라. A가 그것을 허락해 줄 수 있을까? 애인과 카카오톡으로 수많은 사적인 대화를 했을텐데?
그래서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의 저자는 디지털 유산과 사후 프라이버시의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주제가 계약법, 프라이버시법, 지적재산권법, 상속법과 같은 광범위한 분야의 법률을 아우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 p. 157
그래서 많은 디지털 기업들은 약관을 통해 사용자가 사망했을 경우 사망자의 디지털 자산에 대한 일부 권리를 소유한다. 예를 들어 디지털 자산을 활용할 수는 없지만 자산에 대한 접근을 차단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 것이다. 그래서 유족이 고인의 SNS 계정을 접근하기 위해 소송을 벌이는 일이 자주 생겨나고 있다.
이런 개인적인 디지털 유산 문제뿐만 아니라 디지털 세계는 죽음과 여러 가지 기묘한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고인들이 있는 공동묘지나 봉안당에 아주 가끔 간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죽은 이들과 같은 공간에서 있지 않는다. 하지만 디지털은 이런 환경을 바꿔 놓고 있다. 특히 페이스북의 SNS 공간은 죽은 자와 산 자와 빈번한 재회가 가능하다. 페이스북이 만약 100년 동안 유지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에서는 21세기 말에 무려 36억 8천에 달하는 프로필이 추모 상태, 즉 페이스북은 30억 명이 넘는 고인들과 함께 활동하는 광장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디지털과 죽음이 함께 하면서 시대와 그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기존에 경험하지 못했던 완전 새로운 거대한 트렌드와 함께 하고 있다. 하지만 죽음은 나와 거리가 멀어 보이고 아직 메가 트렌드의 초기이기에 국가 정책, 법제화, 개인의 인식 측면 모두에서 전혀 준비되어 있지 못하다. 그런 의미에서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는 매우 적절한 책이다.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의 저자인 일레인 카스켓 박사는 생명과 죽음 그리고 프라이버시 권리와 거대 기술 기업간에 관계에 대해 선도적으로 연구하는 학자이다.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는 디지털 시대의 죽음이 파생시킬 수 있는 여러 딜레마를 심리학, 사회학, 법학, 윤리학, 비즈니스 등 다양한 분야를 접목하여 풀어낸 수작이다.
앞서 언급한 디지털 유산과 프라이버시 대한 내용은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의 극히 일부분이다.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알 수 있다.
- 디지털 시대의 죽은 자와 그 가족&친구 간의 지속적 연결이 주는 의미와 심리상태
- 5종류의 디지털 사용자와 그 특징(은둔자, 실용주의자, 큐레이터, 상시 접속자, 생활 기록자)
- 디지털 자산의 종류와 특징들
- 디지털 애도의 심리학
- 디지털 이민자와 디지털 원주민이 디지털 죽음을 대하는 방식
- 디지털 자산의 접근과 통제
- 온라인 기업들의 이용약관 문제
- 사후 프라이버시 문제
- 디지털 자산 관련 법제화의 어려움
- 디지털 아바타의 등장과 그 여파
- 남겨진 자들의 명예훼손과 죽은 자를 향한 스토킹
- 셰어런팅에 관한 문제들(자녀들의 사진과 이야기를 SNS에 올리는 문제)
- 디지털 발자취를 현명하게 남기기 위해서 필요한 행동들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은 디지털과 죽음이 만났을 때 발생하는 매우 복잡한 사회 현상들을 규명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심리학자의 책답게 새롭게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심리 상태들을 다루고 있다. 또한 현재 우리가 어떠한 의사결정으로 어떻게 디지털 발자취를 만드는 것이 현명한 것이지 실용적인 방안까지 제시한다.
물론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끼는 것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다만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 같은 훌륭한 책을 읽음으로써 복잡하지만 앞으로 필연적으로 다가올 그리고 무엇보다 나와 직접적인 문제가 될 수 있는 나의 디지털 자산의 중요성을 늦게라도 ‘인식’할 수 있다는 점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제 디지털 세계에서 떨어져 살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유튜브, 구글 검색, 네이버 메일, 쿠팡, 넷플릭스, 그 외 수많은 디지털 세계에서 우리의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디지털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는 한 번쯤은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디지털 세계에서 활동하는 모든 이들에게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을 강력히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