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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수씨 sans souci Mar 01. 2020

유럽 그리고 겨울 바다

나의 두번째 유럽여행에서







Winter sea in Europe

나의 두번째 유럽여행에서

2019년 12월의 기록


ⓒ Copyright 2019. sans souci. All rights reserved






두 번째 유럽여행이었다. 유럽의 스산한 겨울이 속상했던 25살의 나는 마지막 여행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두번째 유럽여행은 꼭 날씨 좋은 계절에 다시 와야지!' 했건만, 이번에도 역시 겨울이었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아이러니하게도 겨울이여서 더욱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되었다. 바로, 겨울 바다 덕분이다.


같은 바다여도, '겨울바다' 단어만의 특별한 정취가 있다. 나에게 겨울바다란, 청량감이 강하고, 한적하고, 여유롭고, 새해 소원으로 따스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렇다. 이번 두번째 유럽여행은 본의 아니게 유럽의 이곳 저곳 겨울 바다에서의 추억을 가득 안고 돌아왔다. 첫번째 여행은 폴란드에서 시작해 헝가리, 슬로바키아 동부 내륙을 여행해 바다를 한 번도 본적이 없었건만, 이번 여행은 다녔던 도시 곳곳에 바다가 있었다. 우연이지만, 우연이 아닌듯 찾아다녔던 유럽의 겨울 바다를 엮어 본다.







첫번째 바다,

Zandvoort Beach, Netherland


나의 친구 욜란다와 함께 원래 암스테르담 도심에만 머물다 곧장 파리로 떠날 계획이였다. 그러나 당시 파리의 파업이 너무 심해 도저히 떠날 엄두가 나지 않아 급히 계획을 변경하게 되었다. 연말이여서일까 암스테르담 근처의 숙소들은 대부분 예약된 상태였고, 이미 살인적인 이 도시의 숙소 가격에 더 살이 붙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난감했다.


독일에 있었던 욜란다와 8시간의 시차로 제대로 연락하기도 어려웠던 와중에 정말 우연히 Zandvoort 지역의 저렴한 에어비앤비를 발견했다. 고로, 이 지역은 처음엔 단지 묵을 곳을 찾아 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암스테르담 기차역에 이어 한번 아름다운 일출을 마주했다. 겨울 바다라 바람이 몹시 찼지만, 분홍색 하늘이 너무 예뻐 넋을 놓기도 하고, 아무 걱정없이 바다만 보고 있어도 편안했다.


찾아간 행복보다 때로는 우연에서 오는 행복이 훨씬 크다. 










두번째 바다,

Madalena Beach, Portugal


여행지에서의 아침,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침대에 느기적되며 오늘 해야할일 리스트를 적어보는 것이다. 포르투갈 포르투에서 '자전거 타고 해변다녀오기' 목록은 늘 빠지지 않았다. 포르투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 일도 자전거를 빌리는 것이었다. 첫 날, 자전거를 빌리며 포르투 숙소 직원이 알려준 관광지가 아닌 현지 해변으로 가보았다. 거리가 상당히 있어 초콜릿 몇개와 요거트도 챙겨갔었다.


도대체 언제 도착하는거야 할 정도로 한참을 달려 도착한 이곳의 바다는 정말 나에게 큰 기쁨을 안겨주었다. 특별한건 없지만, 바다가 너무 깨끗하고 이 바다를 즐기는 포르투갈 사람들의 일상이 인상적이었다. 바다가 코앞인 놀이터에서 아이와 미끄럼틀을 타고, 가만히 바위에 앉아 혼자 파도를 감상하고,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커피와 함께 신문을 읽는다.


이 해변에서 적은 나의 노트에는 이렇게 메모되어 있었다. 할머니 집 냄새가 나는 것 처럼 포근한 바다. 











세번째 바다,

Cabo da Roca, Portugal


떠나기 전에 몰랐다. 포르투갈은 겨울이 우기라는 것을. 스페인처럼 겨울에 늘 맑을 줄 알았건만, 포르투갈의 날씨는 그야말로 변덕쟁이였다. 이 곳에 있는 동안 나는 자기전, 일어나자마자 늘 구글에서 날씨를 검색했다. 이날은 분명 비가 올것이라 했다. 호카 곶은 못가보고, 새로운 도시 라고스로 떠나는구나 싶던 찰나. 아침에 쨍쨍한 해를 보자마자 콧노래 부르며 다녀온 이곳의 바다. 놓치지 않고 다녀와서 참 다행이다.


'세상의 끝' 호카 곶의 수식어가 나를 이곳으로 이끌게 했다. 곳에 도착해서 보니 더욱 마음에 들었다. 그 어떤 바다보다 아주 먼 곳에서부터 굽이쳐오는 높은 파도를 보면서, 옛날 포르투갈 사람들의 생각에 동화되어 보기도 한다.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던 호카 곶에서의 시원한 바다 바람과 부서지는 파도가 햇빛에 반사되어 보석같던 풍경들이 하나 하나 소중했던 곳이다.










네번째 바다,

Pinhao Beach, Portugal


점점 남쪽에 다다라 날씨가 따스해짐이 내 사진에서도 느껴진다. 라고스는 포르투갈 남부에 위치한 도시로, 대표적인 유럽의 휴양지 중 한 곳이자 내가 사랑하는 도시이다. 첫 번째 유럽여행과 두 번째 유럽여행에서 명확한 차이가 있다면, 다시 방문하고 싶은 곳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 여행을 하면 수록 내가 좋아하는 것을 명확하게 알게되고, 좋아하게 같은 직감을 더욱 잦게 느끼게 된다. 여행을 통해 얻는 가장 큰 수확은 이런 게 아닐까. 모쪼록 다음 여행에서 꼭 다시 이곳 라고스를 찾고 싶다.


포르투갈에서 신기했던 건 그리 크지 않은 이 나라의 바다가 이방인인 내 눈에도 모두 너무나도 다르게 보였다. 이곳 라고스라는 도시의 바다는 그 어느 곳 보다 한적했고, 나를 느긋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랜드캐니언 같은 바위들이 울퉁불퉁 솟아있어 멋진 자연 경관을 보여주기도 하고, 따가운 햇빛 아래 여기저기 그늘막이 되어주기도 한다.


라고스에서부터 계절이 헷갈리기 시작했다. 겨울일까. 여름일까. 분명 겨울인데, 날은 따뜻하지만, 바다를 즐기는 사람은 적다. 굉장히 특이했고, 좋았다. 따뜻한 바다를 여유롭게 나만의 바다로 즐길 수 있어서 :)











다섯번째 바다,

Sitges Beach, Spain



스페인 시체스 해변은 오후 늦게 도착했었다. 많은 바다들 중 유일하게 석양을 담은 바다가 되었다. 이 곳에서 좋은 기억이 참 많다. 친절한 피자집 주인 아저씨, 길을 물었을 때 알려주시던 할머니, 버스기사님까지. 이곳의 바다처럼 따뜻했다.


스페인에선 다소 생각이 많았다. 마지막 여행지 였기 때문이었다. 여행의 시작도 어렵지만, 나는 항상 맺음이 더 어려운 것 같다. 좀 더 단단해지고 싶은데, 늘 그렇지 못하다. 그런데, 여행하면서 종종 그럴때도 있다. 지하철을 타면, 갑자기 서울에서 2호선을 타는 내 모습과 오버랩되는 그런 순간들. 분단위, 초단위로 쪼개어져 나에게 한컷 한컷 스쳐 지나가곤 한다. 여정으로 한국에서의 일상이 그리워진걸까. 끝내기 싫다면서, 돌아갈 때가 되면 변덕이 심해진다.


시체스 해변은 따뜻한 날씨때문일까 서핑을 즐기는 사람이 많아 방파제에 앉아 그들을 구경하고, 일기를 쓰고, 멍때리는데 시간을 많이 보냈다. 해가 지는 노란빛 해변을 보며, 바르셀로나로 돌아가는 길이 참 아쉬웠다.








겨울의 유럽여행, 바다와 함께라면 나쁘지 않아.

다음 여정이 또 한번 겨울이여도 나는 좋을 것 같다. :)







Winter sea in Europe 

나의 두번째 유럽여행에서

2019년 12월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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