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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수씨 sans souci Jul 14. 2019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폴란드 친구 미할리나를 찾아 떠난 <폴란드, 바르샤바 그리고 체스토호바>

대단한 무언가를 보기 위해 떠나온 것이 아니다.

어쩌면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아무것도 여기지 않게 여기게 되는

그 마음을 만나기 위해 떠나온 것이다.


< 모든 요일의 여행, 김민철 >


photo by @youngeun, jasmine








1. Prologue

  - 23살 겨울, 선물처럼 나에게 다가온 7개국 9명의 인연들

중국 사천성 지역에서 7개국 출신의 9명이 모였다.

인도네시아, 우즈베키스탄, 뉴질랜드, 폴란드, 요르단, 말레이시아 그리고 한국까지.


국적은 물론이거니와 직업 나이까지 우리는 공통점이 거의 없었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중국 면양의 작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가르기 위해 한 마음으로 모였다는 것. 처음에는 우여곡절도 물론 많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타지에서 서로 의지하는 든든한 친구가 되어있었고, 떠나는 날엔 어느 때보다도 마음 아팠던 기억이 있다.


이 친구들은 지금까지도 나의 인생 깊숙이 스며들어있다. 대학생활 아니 지금까지 나에게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물어본다면, 망설임 없이 이들과 함께 지냈던 시간을 떠올릴 것이다.






폴란드 친구, 미할리나 / Michalina from Poland


아홉 명의 친구 중 나를 "재-스민(Ja-smine)" 이라고 귀엽게 부르는 

폴란드 친구 미할리나와 다시 재회했던 이야기를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미할리나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방송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친구다. 나보다 한 살 많은 언니인데, 사실 우리는 중국에서 가장 나중에 친해졌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이 무색할 만큼 우리는 돌아가기 몇일 전 아쉬운 마음에 맥주를 함께 마시다 밤새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급속도로 친해졌다. 가장 나와 많이 닮았고, 이야기를 할 때면 서로 박수치며 공감하던 기억이 있다.


"우리는 왜 이제야 이렇게 친해진거야... 아쉽다.... 정말."  

이 말을 헤어지기 전 서로 몇 번이나 되뇌였는지 모른다.


그렇게 중국에서 돌아와 나는 한국에서 미할리나는 폴란드에서 각자의 시간이 꽤 흘렀다. 나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4년간의 숙원사업이었던 유럽여행을 돌연 떠나게 된다. 미할리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연락하기 전에는 당연히 첫 유럽여행이니 내가 프랑스나 스페인으로 떠날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폴란드로 체크인하는 동유럽 여행을 결정하게 된다.


여러 가지 상황적인 요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미할리나와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폴란드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만 갔고, 이 친구를 타지에서 아닌 그 친구의 나라에서 만나보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폴란드 바르샤바로 친구를 만나러 떠났고, 그 당시 여행을 계획하며, 친구랑 어디갈지 어떻게 만날지 이야기 나누던 시간의 설렘을 잊을 수 없다.






(왼) 중국에서 찍은 폴라로이드 / (오) 미할리네 집에 붙어있던 그 때 그 폴라로이드 사진.


2. 내 친구네 집은 폴란드 바르샤바

- 재-스민, 폴란드에 온 걸 환영해!


미할리나를 유럽에서 다시 만난다는 설렘과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걱정도 많았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변해있을까. 부터 시작해서 나를 부담스러워하진 않을까. 첫인사는 어떻게 할까. 갑자기 떠나기 며칠 전부터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다.


 바르샤바 쇼팽 공항에서 오전 7시. 아주 이른 시간임에도 나를 마중 나와준 미할리나. 넓디넓은 공항에서 서로를 겨우 발견하던 그 순간, 우리는 누가 뭐랄 것 없이 먼저 꼬옥 안아주었다.


" 와!! 재-스민, 잘 도착했구나 !! 폴란드에 온 걸 환영해~"

변함없는 말투로 반겨주는 미할리나.


기차와 지하철 몇 번을 갈아타고 미할리나네 집에 도착했고, 거실로 들어서는 순간 나의 시선을 사로잡던 사진 하나가 나의 모든 걱정과 긴장을 사르르 녹여버렸다. 바로, 나와 중국에서 찍었던 폴라로이드 사진을 거실 한가운데에 붙여둔 것이다. 그때의 그 추억을 미할리나 역시 간직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타지에서의 외로움이랄까. 두려움이랄까 그 모든 것들을 보듬어 주었다.



 



3. 미할리나와의 시간  

- 함께 만들어 먹는 식사,


바르샤바에 있는 4일간 모두 미할리나네 집에서 머물렀다. 미할리나와 함께 바르샤바에 있던 시간 동안은 내가 지금 여행을 하고 있었던 것조차 잊고 있을 만큼 편안하고, 느긋한 시간들을 보내었다.


낮 시간 동안에는 같이 바르샤바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저녁엔 장을 봐서 같이 저녁을 해 먹었는데, 저녁 먹는 시간이 너무 즐거웠다. 과일과 야채로 샐러드를 만들고, 수프를 끓이고, 고기를 굽는다. 뭔가 화려한 식사는 아니었는데, 매일매일 그렇게 내가 있던 곳과 다른 미할리나의 삶에 함께 있는 기분이다.






@ 생각보다 유럽에서는 '차' 문화가 발달한 것 같다. 매일 아침 미할리나는 나에게 종류를 달리하여 차를 끓여주었고, 우리는 이 차를 마시며 오늘 어디로 갈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 내가 오고 나서부터 복잡 복잡해진 신발장






@ 미할리나를 만난 것과 덤으로 '바르샤바(Warsawa)' 라는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예쁜 도시를 알게 되어 기뻤다. 앞으로 이 도시에 대한 이야기도 풀어볼 예정이다.






4. 미할리나의 고향 폴란드, 체스호바   

- 미할리나네 부모님을 만나다.


체스토호바(Czestochowa)는 폴란드 남부에 위치한 작은 소도시로, 미할리나의 고향이자, 그녀의 부모님께서 살고 계신 곳이다. 미할리나네 부모님께서는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감사하게도 체스토호바의 고향집으로 나를 초대해주셨다. 체스토호바를 찾은 한국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왠지 특별해진 기분이다.


미할리나네 어머니는 기차역에 나와 미할리나를 마중 나와 계셨다. 처음보는 아시아 여자아이인 나를 보자마자 따뜻하게 안아주시며 환영해주셨다. 아주머니는 정말 호탕하신 분이셨다. 영어와 폴란드어를 섞어 말씀하시는데도,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차 안에서 내내 웃었던 기억이 난다.


집에 도착하니, 내가 제일 먹고 싶었던 플라츠키를  미할리나네 아버지께서 만들고 계셨다. 어머니와 달리 수줍음이 많으셨지만, 이것 저것 많이 챙겨주셨다. 타지에서 이렇게 따스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또 있을까. 기분이 몽글몽글했었다. 미할리나와 동생 마르체리나가 만든 불 켜진 트리부터, 이 집의 작은 두 지킴이 스팅키와 진저까지. 체스토호바에서의 모든 것들이 참 따뜻했다.







@ 플라츠키, 피에로기, 랑고스 ; 익숙하지 않던 폴란드 요리 이름이었는데, 지금은 잊혀지지 않는다. 어느 나라 음식이든 집밥이 최고인 것 같다.






체스토호바를 찾아 폴란드의 작은 소도시의 모습을 경험할 수 있어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미할리나가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어 고마웠다. 도심에서의 미할리나와 아담한 2층 집에서 보는 미할리나는 비슷하지만 달랐다. 부모님과 있을 때 애교 가득하고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니, 친구의 많은 면을 나누게 된 것 같아 기뻤다.


아주머니께서 차려주신 아침을 먹고, 미할리나 동생이 쓰던 다락방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진저와 스팅키 그리고 가족들과 거실에서 여유롭게 쉬었던 여정.


내 친구, 미할리나를 다시 폴란드에서 만났던 이 여행에서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여행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일상을 함께 해보고, 소소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그런 것들. 그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앞으로도 그런 행복을 찾아가고 싶다.


미할리나 그리고 가족들 모두에게 다시 한번 나의 여정에 함께해주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폴란드 친구 미할리나를 찾아 떠난 <폴란드, 바르샤바 그리고 체스토호바>

Written by. youngeun, jasm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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