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다시 태어나는 게 답인가
곰곰이 생각해 봐도 무엇을 내가 크게 잘못한 것인지 모르겠는데
내 인생은 크게 잘못되어 있다.
이 나이에 변변한 직장 하나 없고 돈도 없고 집도 없고 차도 없는.
이것은 잘못돼도 아주 단단히 잘못된 것인데
나는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 수가 없다.
시키는 대로 학교를 잘 다니고
대학을 가고
취직을 하고
나에게도 번듯한 직장이 있었다.
나름 꽤 번듯한 곳이었다.
2년 계약직으로 들어가 성실히 일했고 지각 한번 한 적 없으며
모두 다 일을 잘한다고 칭찬해 주던 직원이었다.
당연히 재계약이 될 줄 알았다. 난, 정말 열심히 전심을 다 했으니까.
그렇게 2년이 끝나갈 때쯤 재계약은 되지 않을 것이란 말을 들었다.
내가 하던 일을 용역업체를 쓰게 되었으며 혹시 계속 일하고 싶다면
우리 회사 직원이 아닌 용역 업체의 직원으로서 일하게 해 줄 수 있다고.
그 말은 이미 2년이나 성실히 일하여 일도 익숙하고 잘하는 경력직인 나를
용역 업체의 직원으로 지금 월급의 반을 주며 복지도 모두 제외될 것이지만
나는, 하던 일을 계속하면 된다는 그런 말이었다.
하, 내가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잘못이었던 건가?
지금 와서는 그런가 싶은데
그때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이런 식으로 부품처럼 취급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더 우스운 것은 나와 같이 입사한 친구가 낙하산이라
그 친구는 재계약을 해줘야 하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재계약 면접을 볼 것이며
구색을 맞추기 위해 나도 그 면접을 볼 것인데 결과는 정해져 있으니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 참. 10년도 더 된 일인데도 지금 생각해도 헛웃음이 나온다.
내가 다니던 곳은 그래도 꽤나 큰 기업이었다.
대표를 볼 일이 거의 없는, 사내 체육 대회가 아니면 만날 수도 없으며
그 사내 체육 대회에서도 저 멀리 콩알만 한 얼굴을 볼 수 있는 나름 그런 큰 기업이었다.
나는 그놈의 형식적인 재계약 면접의 들러리로 들어갔으며
그 높디높으신 대표에게 이런 식으로 회사를 운영하시면 망할 것이라고 말하고 나왔다.
그 면접 후 인사과에서 전화가 왔다.
지금 일하던 곳에서 계속 일하게 해 줄 순 없지만 다른 곳에서라도 일하게 해 주겠다고.
"아뇨, 전 사람을 이런 식으로 대우하는 곳에서는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
25살의 패기 넘치던 나란 애새끼는 저딴 소리를 날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퇴사를 했다.
그리고 10여 년이 흐른 지금 그 기업은 망하지 않았다.
근데 나는 망한 것과 비스무리한 상태이다.
왜지.
왜긴 왜야, 25살 애송이의 판단이 틀렸다는 거지.
나는 사실 한동안 그 회사가 있는 동네를 가지 못했다.
가면 마음이 너무 아팠으니까.
첫사랑 비슷한 것이었다. 첫 직장이란.
순진하게 내 진심을 알아줄 것이라 믿었고, 온 힘을 다해 사랑했는데
비참하게 차여버린, 그런 첫사랑과 비슷한 것이었다.
아, 여기서부터 잘못된 것이었던가
그런가
10여 년 전의 나는
정말 그리 큰 잘못을 했던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