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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송이 Mar 10. 2024

나이를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겪어보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태도가 좋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길었지만 요약하자면 이런 내용이었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돈이 마침 너무 없는 와중에 일 해보겠냐는 제안을 받았고 냉큼 물었다.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아니, 사실 지금도 가릴 처지는 아니다.

고로 내가 이 아르바이트 자리를 시작한 이유는 어쩌면 단 하나, 돈 때문이었다.

태도가 좋지 않다. 맞는 말이었다. 정곡을 찔렸다.

내게 이 일은 그저 아르바이트였고, 그 점이 태도가 좋지 못했던 것이 맞다.

나는 사실 이런 일을 해본 적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하는 지도 잘 모른다.

그저 기회가 왔기에 덥석 잡았는데 잡아서는 안 되는 기회였던 것이다.

준비도 마음도 없는 일을, 돈을 위해 잡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인정하고 사과드렸다. 아니었다고, 진심 열심히 하고 있었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명명백백한 사실이었다.

한 줄로 요약했지만 실제로는 구구절절한 사과였다.

서른 중반이 넘어 누군가에게 치부를 들킨 것이 정말 오랜만이라 계속 눈물이 났다.

쪽팔렸다. 너무너무 쪽팔렸다.

얄팍한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사장님 내외는 좋은 분들이셨다. 형편이 어려운 나에게 일자리를 주시고 항상 친절히 대해주셨다.

나는 열심으로 보답하기는커녕 그런 친절에 기대어 어중간한 자세로 이 일을 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장님 내외가 얼마나 이 일에 진심인 줄 알고 있으면서도 난 그저 매일 내 코 석자만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 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행동인가.

나는 이상스럽게도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나라는 인간이 얼마나 애새끼에 불과한지를 깨닫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진짜 어릴 때는 내가 애새끼인 줄도 몰랐다는 것이다.

그걸 그때 알았어야 하는데.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지만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다.

그럼에도 이 낯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점이 참 가혹하다.

난 왜 나이만 먹어버렸을까.

아르바이트는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 같다. 기존에 말씀하셨던 날짜까지만 하고 그만두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사장님은 앞으로 좋은 태도를 보여준다면 더 일하게 해 주겠다고 아량을 베풀어 주셨지만

나는 이제는 알아버렸다. 이 일을 하기에 나는 적합하지 않다.

이 일 자체를 진심으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자리에 와야 한다.

남은 날들은 정말 전심을 다해 성실히 일하고 이 자리를 잘 마무리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있는 가장 쪽팔린 길일 것이다.

발가벗겨진 치부에 고개 드는 것조차 힘든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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