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그럼에도 낭만을 사랑하는 이유
첫사랑은 '첫'과 '사랑' 사이에 띄어쓰기를 하지 않지만 새 사랑은 '새'와 '사랑' 사이에 간격이 있다. 첫사랑은 당연하게도 처음 시작하는 사랑이기 때문에 간격이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새 사랑은 이별 뒤에 일정 간격을 두고 찾아오기 때문에 띄어쓰기를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원래 사랑은 첫사랑을 제외하면 이별 뒤에 찾아오는 것이 당연하니까. 그래서 이별 뒤에 새 사랑은 반드시 찾아올 거라 믿고 있다. 그리고 새 사랑은 분명 다시 한번 아름답게 찬란히 빛날 것이며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 믿고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렇게 믿었던 것은 아니었다.
최근에 감명 깊게 본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엄마와 함께 보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엄마는 왜 아빠랑 결혼했냐고 물었다. 생각해 보니 그동안 다른 사람에게 부모님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뿐이었지 직접 물어본 적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무튼 드라마를 본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이러했다.
'그때는 그렇게 만나서 결혼하고 같이 사는 게 자연스러운 거라 생각했어'
우리 부모님은 중학교 때부터 교회 친구 사이셨다고 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성인이 되어 교제를 시작하셨고 결혼하여 내가 태어났다. 내가 부모님의 연애사를 너무 잘 알고 있는 이유는 내가 궁금해하지 않아도 주변 친인척들은 어렸던 나를 앞에 두고 그러한 이야기를 시시콜콜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어른들은 내게도 부모님처럼 지조를 지키며 한 사람과 오래도록 사랑하여 결혼하라고 얘기해 주었다. 물론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누군가는 애한테 그게 할 말 이냐며 다그치는 어른도 있었지만 어쨌든 그러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니 첫사랑만이 진짜 사랑이라고 믿게 되었다. 꼭 누군가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더라도 내 성향 상 아마 첫사랑에 환장했을 것임은 틀림없다.
새 사랑은 첫사랑만큼 순수함이 서린 진실된 사랑이 아니라 믿었다. 그래서 새 사랑은 내게 있어 두려움이었다. 상대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는 관계는 파국만 남을게 뻔하니까. 감히 이별 후에 새로운 사랑을 할 수 있을지 나 스스로에게 의구심을 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럼에도 새로운 사랑을 다시 한번 꿈꾼다. 그들이 대단해 보였다. 사람들은 왜 새로운 사랑을 끊임없이 갈구할까? 어떻게 새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새 사랑임에도 진실된 사랑일 수 있을까?
그러나 그런 고민도 잠시, 생각보다 답은 쉽게 내릴 수 있었다. 내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내 삶에서 새롭게 인연들은 찾아왔다. 그렇다. 새 사랑은 자연의 섭리였다. 마치 거스를 수 없는 파도와 같았으며 상처가 난 뒤 다시 상처가 아무는 것과 같은 지극히 단순한 순리였다. 그래서 새 사랑을 시작할 때 이미 나는 그런 고민 따위 내 기억 속에서 잊은 지 오래였다. 이미 오래전부터 새 사랑에 대한 갈망이 내 몸속에 각인되어 있듯 새 사랑을 받아들이는데 어떠한 거부감이 없었다. 원래 인간은 외로운 존재라서 어쩌면 이미 우리는 그렇게 창조되었던 걸지도 모른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 자연의 섭리처럼 차가워지면 온기를 찾고자 하는 본능처럼.
그래서 새 사랑의 기회가 찾아왔을 때 다시금 작은 불씨가 생겨나는 느낌이었다. 그 작은 불꽃은 처음 타올랐던 거대한 불꽃보다는 작았지만, 본질적으로 불꽃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새 사랑도 첫사랑과 똑같은 순수함이 서린 진실된 사랑이었다. 사랑은 원래 처음부터 그런 놈이었다. 그리고 불씨가 남아있다면 언제든지 불꽃은 커질 수도 있었다. 오히려 정제되고 단련된 사랑이라 그런지 더 능숙하게 온도 조절이 가능했다. 그래서 새 사랑은 불씨를 꺼트리지 않고 더 오랫동안 천천히 불씨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새 사랑만의 특별한 능력이었다. 상실을 겪은 나의 사랑은 이제 오랫동안 천천히 온기를 유지하는 낭만적인 새 사랑이 되어 있었다.
새 사랑에 대한 고민을 끝 마쳤을 때 문득 새 사랑과 낭만은 비슷한 구석이 많다고 느꼈다. 새 사랑을 시작하는 것은 낭만을 다시 사랑하는 것과 같았다. 씁쓸하고 시린 뒷맛이 느껴지는 이별 뒤에 찾아오는 새 사랑처럼 낭만도 달콤함 속에서만 피어나는 것이 아닌 고통과 실패 뒤에 찾아오기 때문이다. 첫사랑의 달콤함만이 낭만적인 사랑이 아닌 이별 후에 꽃 피우는 새 사랑도 낭만적인 사랑이었다.
어쩌면 내가 다시 낭만을 사랑하게 된 것도 새 사랑처럼 자연의 섭리가 아니었을까? 원래 인간은 인류애가 가득해서 낭만을 무척 사랑한다. 단지 현실이 차갑기에 낭만적인 삶을 포기하는 것뿐이지 속으로는 낭만을 사랑한다. 이는 타인의 창을 통해 낭만을 즐기고 열광하며 좋아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낭만은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행복과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마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여 사랑의 행복함을 느끼는 것처럼. 내가 다시 낭만을 사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 개인적인 다짐과 깨달음도 있겠지만 결국 인간은 낭만을 사랑하고 좋아해서였다. 새로운 사랑을 자연스레 맞이하는 것처럼.
새 사랑이 가져다주는 행복은 이별의 아픔을 즉시 잊게 만들 정도로 크다.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영혼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낭만은 실패와 고통을 동반하지만, 그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우리의 영혼은 그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낭만을 사랑한다.
행복은 어떠한 대가 없이 찾아오면 좋겠지만 역설적이게도 새 사랑은 이별을 겪어야만 찾아오고 낭만 또한 실패와 고통 뒤에 찾아온다. 그런 가시밭길을 걸어야 함에도 새 사랑을 하는 이유, 그럼에도 낭만을 사랑하는 이유는 결국 행복에 대한 우리의 '본성'과 '믿음'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