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무사

<3부> 그럼에도 낭만을 사랑하는 이유

by 깜지

글에서도 한번 언급했지만 나는 뮤지션이자 작가이며 책방무사의 주인인 요조 님의 팬이다. 글을 쓰는 시점 기준으로는 책방무사가 서울에 위치하고 있지만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책방무사는 제주도에 있었다. 나는 작년에 제주도로 책방무사를 방문했다. 책방무사의 서울 이전 소식과 함께 제주도에서의 마지막을 알렸기 때문이다. 그동안 제주도에 갈 기회가 없어 번번이 미루고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꼭 제주도에서의 마지막을 함께 하고자 제주도에 내려가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그동안 요조 님을 멀리서만 응원하는 내향형 팬이었기 때문에 혹여나 이번 여행에서 요조 님을 바로 코 앞에서 마주하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꽤 오랫동안 전전긍긍 고민했었다. 너무나 반갑고 기뻐 호들갑을 피워야 할지 아니면 혹여나 실례가 될까 봐 기쁜 마음을 절제한 채 덤덤히 마주 해야 할지 말이다. 나는 후자의 손을 들어주었고 편지를 쓰기로 결정했다. 혹시라도 내가 방문하는 날에 책방에 안계실지도 모르니 팬심을 전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내가 여자친구들에게 쓴 편지도 아마 이 정도로 정성을 녹여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 가까이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아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연수로만 치면 거의 15년 팬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응축됐던 팬심이 한꺼번에 소용돌이치다 보니 엄청나게 장황한 편지를 쓰고 말았다. 깨알 같이 편지지와 편지봉투도 이쁘고 비싼 걸로 준비했다. 앞으로도 이보다 더 정성을 들여 편지를 준비할 수 없을 거라 자부할 정도. 그렇게 요조 님의 책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과 편지만을 들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요조 님에 대한 팬심이 애틋한 이유는 학창 시절의 짝사랑 같은 의미여서이다.



학창 시절의 나는 다른 친구들처럼 아이돌이나 연예인을 좋아하지 않았다. 티브이에 나오는 연예인들은 모두 멀게만 느껴질 뿐이라 나의 관심 밖이었다. 그리고 딱히 나만의 음악적인 취향이 있을 때도 아니어서 차트에 있는 대중음악을 듣는 것이 전부였다. 중학생 때는 스마트폰이 보급되지 않아서 mp3로 음악을 들었던 시절이었다. mp3파일을 다운로드하여 플레이어에 직접 넣어야 했는데 그때는 스트리밍 시절이 아니었다 보니 직접 곡을 구매해야 했다. 학생이었던 나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음악을 듣지 못했고 그냥저냥 흥얼거릴 수 있는 유행가들 중에서 몇 개의 곡을 신중하게 선정한 다음 그 곡들을 구매해서 들었다. 나름 시험기간의 유일한 낙이었지만 몇 개의 곡을 계속 반복해서 듣다 보니 어느 순간 금방 질리게 되었다. 무료함에 빠져 공허한 눈으로 문제를 풀던 중 mp3의 다른 기능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라디오였는데 내 mp3가 나름 신형이어서 라디오 기능도 지원해 주었다. 라디오에 대한 나의 인식은 어린 시절의 편견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할머니 집에 가면 어른들이 듣는 오래된 옛날 노래만 가끔 흘러나오는 구닥다리. 처음에는 그런 편견 때문에 라디오 기능을 애용하지 않았지만 반복된 유행가로 인해 무료함에 시달렸던 때문인지 그날은 처음으로 라디오를 켜게 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우연히 들었던 라디오 방송이 바로 '요조의 히든트랙'이었다.



감미로운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녀 특유의 차분한 톤과 어조로 조곤조곤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밤 12시에 가까워지고 있던 중이라 얼핏 졸음이 올 수 있었지만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하여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고 점점 더 그녀의 목소리에 매료되어 빠져들게 되었다. 이윽고 그녀는 이야기를 마친 다음, 노래 한 곡을 선정하여 틀었다. 어떤 한 팝송이 흘러나왔다. 바카라의 'Yes Sir, I can Boogie'라는 노래였다.



어린 시절의 모든 경험들은 다 새롭게 느껴지는 것처럼 반복적인 일상에 지쳐 매일매일이 무료하던 나에게 장르 불문 다양한 음악들은 매일매일이 새로운 하루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이때부터 음악은 나의 유일한 취미이자 벗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많은 노래들을 쉽게 접할 수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노래를 듣기 위해서는 매일 밤 10시 요조의 히든트랙을 듣는 것이 나의 일상이 되었다. 요조 님은 매 방송마다 자신이 직접 선정한 이른바 숨겨진 명곡들을 틀어주었고 덕분에 평소라면 접할 수 없었던 다양한 노래들을 라디오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처음에는 음악이 좋아 라디오를 듣게 되었지만 점점 더 라디오 진행자인 요조 님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녀가 홍대 여신이라 불리는 유명한 인디 가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녀의 노래들을 들으며 이른바 나도 누군가의 팬이 될 수 있었다. 여신 같은 미모는 덤.



내가 요조 님의 팬이 되었던 이유는 요조 님의 음악이나 목소리, 여신 같은 미모도 한몫했지만 나와 요조 님이 서로 가깝다고 느낀 점이 더 큰 이유였다. 티브이에서만 나오는 멀게만 느껴지는 연예인이 아닌 매일 밤마다 라디오로 요조 님과 소통하며 그녀의 일상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 가깝다고 느꼈었다. 그러한 내적 친밀감으로부터 파생된 마음이 요조 님을 향한 팬심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본격적인 수험시절이 시작되면서 시험공부에 지치고 힘들 때마다 라디오를 들으며 힘든 수험생활을 이겨내었다. 나는 그녀의 팬이기도 하지만 그녀 또한 나의 은인이기도 했다.



학창 시절의 짝사랑 같다고 표현한 이유는 누군가를 정말 좋아한다는 감정을 이때 처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성 간의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당연하게도 절대 사랑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마음이란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단지 그때 그 순수했던 마음이 학창 시절의 순수한 짝사랑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학창 시절의 짝사랑은 짝사랑으로만 끝나는 것처럼 요조 님에 대한 팬심 또한 멀리서 응원하기만 할 뿐 직접 전해지지 않는 마음인 것처럼 말이다. 아무튼 모두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 이유나 감정은 제각각 다르기에 나는 짝사랑 같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요조 님의 대한 팬심이 짝사랑 같다고 생각해서인지 정말 짝사랑 같은 팬으로만 남게 되었다. 성인이 되어 어떤 방식으로든 요조 님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짝사랑의 마음처럼 그녀 앞에 서기 부끄러운 마음 때문에 직접 다가가 마음을 전할 수 없었다. 심지어 공연 티켓을 예매하고도 취소하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었다. 요조 님이 나중에 책방을 운영하며 독서모임을 주최할 때에도 수 백번 고민하다 한 번도 신청하지 못했다. 나를 가짜 팬이라고 말하여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이대로 멈추어선 안될 것 같아 큰 용기를 내어 제주도행 비행기 티켓을 끊은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용기를 가지고 마음을 전하기 위해. 그래도 나라는 팬 한 명이 어렸을 때부터 멀리서 오랫동안 응원해 왔다고. 요조 님이라는 서사의 한 페이지에 나도 기록되었으면 했고 잊히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렇게 아주 큰 결심과 각오를 가진 채 발걸음을 제주도의 책방무사로 향했다. 책방무사는 제주도 수산리라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제주도의 관광지나 번화가만 주로 방문했던 내 기준으로는 상당히 시골이라 할 수 있었다. 차를 운전하지 못하는 뚜벅이인 나로서는 가는 길조차 쉽지 않았는데 버스와 택시를 번갈아타며 가까스로 겨우 힘들게 도착할 수 있었다.



내가 방문했던 날은 책방 운영 종료일 이틀 전이었다. 종료일 당일에는 사람이 많을 것으로 예상하여 조용히 방문하고 싶어서였다. 나의 예상대로 그날은 한적한 시골 마을의 평소와 다름없는 보통의 오후였다.

책방무사


작은 시골 마을, 허름한 건물에 자리를 잡은 책방무사는 얼핏 보면 쉽게 지나칠 수 있을 정도로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수차례 책방무사의 모습을 봐왔던 나로서는 아름상회 간판의 모습을 보는 순간 긴 시간 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를 오랜만에 보는 것처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긴 여행 속에서 보물을 찾은 듯한 모험가의 마음 같은 기쁨 또한 교차했다.


책방 입구
카페 '공드리'


작은 골목 틈 사이로 들어가니 총 세 개의 건물이 나를 반겼다. 하나는 책방, 다른 하나는 책 이외에 소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공간, 마지막으로는 카페 '공드리'였다. 가장 먼저 책방부터 들리기 위해 낡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책방에 요조 님은 계시지 않았고 조용한 침묵만이 나를 환영해 주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책방 특유의 우디향도 나를 반겨주었다. 그 안은 목재로 이루어진 아주 작은 공간이었는데 그 안을 책들이 자신만의 공간을 주장하며 빽빽하게 채우고 있었다.



책방 내부는 혹시나 실례일까 봐 따로 촬영하지는 않았다. 그저 눈으로, 향으로, 촉감으로, 마음으로 이 공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가끔 독립서점을 방문하게 되면 최대한 많은 의미를 깨우치려 노력한다. 가령 책의 선정, 배치, 내부 인테리어, 향, 하물며 책의 표지나 질감마저도 모두 책방 주인의 어떤 생각과 의미가 담겨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책방 주인이 직접 큐레이팅한 책들은 모두 책방 주인의 분신들과도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곳을 찾아온 여행자들은 그 공간 자체를 느끼고 책을 읽음으로써 책방 주인의 생각을 읽고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책을 읽고 그 공간에 머무는 것으로 하여금 책방 주인과 가까워지고 닮아가는 것까지.



그동안 요조 님의 산문집을 통해 그녀가 어떠한 마음으로 책방을 운영하고 책을 사랑하는지는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으나 요조 님이 직접 큐레이팅한 책들과 공간을 통해 그 마음이 더 와닿을 수 있었다. 이 공간에 대한 애정과 책을 통해 희망과 안식을 선물하고자 하는 마음을.



비록 요조 님은 그 자리에 계시지는 않았지만 이미 그녀를 본 것과 다름없는 영적 체험을 한 기분이었다. 요조 님을 직접 뵙지 못해 아쉬운 기분이었지만 오히려 낭만이라 생각했다. 마음을 전하지 않아 이루어지지 못한 짝사랑으로만 남기는 것처럼.



일상 51선. 요조 지음


책방 옆에 있는 카페 공드리 사장님께서는 요조 님이 직접 계시지 않을 때 대신 운영을 맡아주셨다. 책 구경을 모두 마친 다음 한 권의 책을 골라 사장님께 부탁드려 구매했다. 내가 고른 책은 요조 작가님의 '일상 51선'. 요조 님의 일상을 담은 개인 산문집인데 따로 정식 출판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직접 방문하여 구매하거나 책방무사 온라인 스토어로 주문해야 했다. 물론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것은 낭만이 아니기 때문에 이전부터 방문해서 구매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아무튼 그렇게 책을 구매한 다음, 사장님께 요조 님이 나중에 오시면 볼 수 있도록 편지 전달을 부탁드렸다. 사장님은 알겠다고 답해주시면서 나의 편지를 받아 주었다. 책방을 나와 소품 전시 공간을 구경했는데 그곳에 방명록이 있었다. 그 방명록에도 짧은 편지를 남겼다. 과연 요조 님은 사장님으로부터 편지를 전해 받으셨을까? 방명록에 적힌 내 짧은 글을 보셨을까?



카페 사장님께 연락드려 편지의 행방을 여쭤 볼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혹시나 편지가 전달되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않기로 해서다. 요조 님이 내 편지나 방명록을 보았는지 그러지 못했는지는 더 이상 중요치 않았다. 그저 여전히 짝사랑으로만 남고 싶었다. 가끔은 전해지지 않고 마음으로만 남겨야 낭만일 때도 있는 법. 나는 여전히 그녀의 가장 멀리 있는 팬임은 변치 않을 테니.



모든 구경을 마친 다음 카페 공드리에 가서 시를 쓰며 커피 한잔에 오늘의 추억을 담아 마셨다.

그날 하늘의 색은 푸른색이었으며 노을은 어김없이 금색으로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P.S 책방무사는 이제 서울 신촌에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용기를 내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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