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그럼에도 낭만을 사랑하는 이유
낭만을 무언가에 빗댈 수 있다면 나는 노을에 빗대고 싶다.
늦은 여름 오후의 퇴근길, 한강 위를 건너는 지하철에 내 몸을 맡긴다. 내 귀엔 오래된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온다. 이미 오래전 종영된 '요조의 히든트랙'이란 라디오 방송이다. 팟캐스트를 통해 몇 개의 녹음본을 들을 수 있었다. 마치 오래된 골동품을 찾아 발굴하는 느낌이었다. 오래된 것에 대해 집착하는 괴상하고 고상한 취미를 즐기며 퇴근길 노을을 바라본다. 흔들리는 지하철 속, 주변 소음과 함께하는 그런 노을이었지만 그 어떤 노을보다도 밝고 아름다웠다. 가장 밝은 시간 때의 노을, 매직아워는 나의 하루에 대한 수고의 보답이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이었다. 나의 눈은 마술공연을 보고 난 후의 어린아이의 눈망울처럼 호기심이 서려 있었고 오래된 골동품을 발견하여 환희에 찬 노인의 눈망울처럼 여운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이성과 현실의 세계에서 벗어나 나의 내면, 낭만의 세계로 천천히 돌아오는 시간이었다. 매직아워는 나의 낭만을 환영하는 빛이자 낭만의 시작을 알리는 시간이었다. 눈부신 노을빛은 낭만의 정수를 빛내고 있었다.
하지만 마법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가장 밝게 빛나는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찰나의 순간이었다. 짧은 공연은 까만 커튼을 드리우며 막을 내린다. 수수께끼와 여운만 남긴 채. 내게 다음 공연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쉬움이 있어야 다음 만남이 기대되는 것처럼 나에게 노을은 아쉬움과 기대가 반복되는 연속된 교차의 순간이었다.
노을이 지면 씁쓸한 여운을 삼키며 하루를 마무리하지만 낙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다음 날 다시 한번 노을을 마주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비가 오거나 눈이 와서 노을을 보지 못하는 날이 있더라도 하늘은 어떻게든 푸른 하늘로 돌아가려 한다. 그럴 때면 붉은 노을은 어김없이 내게 찾아왔다. 수고했다며 악수를 청하였다. 내게 위로가 되어주는 노을은 그렇게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내게 찾아왔다. 그래서 노을이 지더라도 우리 모두는 다시 한번 노을이 떠오르리라 믿고 있다.
흥미진진한 드라마를 보고 나서 다음화를 기다려야 할 때 사람들은 아쉬움과 여운을 함께 삼킨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다음 화가 방영될 때까지 참고 인내한다. 그리고 기다림이 극치로 다다른 순간 드라마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이처럼 노을을 보기 위해 나는 하루 24시간 중 매직아워를 뺀 나머지 시간을 기꺼이 기다릴 수 있었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 찾아온 매직아워가 지나고 밤이 찾아오는 것처럼 낭만파 인생의 빛은 찰나의 순간을 빛 내기 위해 인고의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다. 낭만은 빛이자 기다림이었다. 낭만은 기다림이란 대가가 필요하지만 그럼에도 낭만을 사랑할 수 있었다. 매직아워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이었으니까.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것이 시간이라는 노래의 악보라면 나는 기꺼이 일상이란 선율을 연주하며 다음 공연을 기다릴 수 있었다. 노을은 언제나 아무 말 없이 뜨고 지지만 그런 침묵마저 내겐 너무 따스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