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는 냉담자이지만 엄마는 40대 초반에 마음이 너무 힘들었을 때 성당을 다녔고 세례도 받았다.
그때 엄마를 따라 나도 1년 동안 성당에 다녔고 역시 세례를 받았다.
오늘은 한때 엘리사벳과 글라라였던 모녀가 바티칸에 가는 날이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바티칸에 가는 길에 우리 사이에서 수십 번 회자된 가톨릭 관련 에피소드를 다시 나누었다.
바야흐로 내가 세례를 1주일쯤 앞두고 보호자 동반 신부님 면담이 있었다. 그때 신부님은 내가 기도문도 잘 외우고 같이 영성체수업을 받는 동생들을 잘 챙긴다고 꽤나 칭찬하셨다. 그러면서 "너 나중에 크면 수녀 할래?"라고 물으셨고,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엉엉 울어버렸다. 옆에 같이 계시던 수녀님은 민망해하셨고 엄마는 괜히 수녀님께 죄송스러웠다고 한다.
"수녀 안 할거에요..."라며 울음을 그치지 않자 신부님은 그럼 넌 뭐가 되고 싶냐고 물으셨다.
나는 의사가 될 거라고 대답했다.
근데 신부님은 이 상황을 빨리 넘어가려는 생각이 없었나보다. "수녀가 되어도 의사 할 수 있어! 성당 근처에 있는 파티마 병원이라고 알지? 거기 가면 수녀님이 의사도 하고 간호사도 하잖아." 라고 하셨다.
"그래도 그냥 의사 할 거에요. 수녀의사는 안 할거에요."
나는 지금 생각해봐도 수녀가 되겠냐는 말에 왜 엉엉 울었는지는 모르겠다. 훗날 나의 대모님은 그건 신부님이 나를 너무나도 좋게 보신거라고, 가톨릭신자로서 칭찬인 거라고 하셨다.
(그때 면담실에 같이 계셨던 마리아수녀님은 우리 반을 담당하셨는데, 공교롭게도 내가 반장이었다. 엄마같은 수녀님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잘해주셨는데 괜히 민망하셨을 수녀님께는 아직도 죄송하다. 종교생활은 1년 즈음에서 끝났지만 신부님과 수녀님에 대한 기억은 따뜻하게 남아있다.)
엄마는 면담이 끝나도록 울음을 그치지 않는 나를 결국에는 다그쳤다. 내가 면담실에서 울면서 나오자 대기실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다른 부모님들은 대체 신부님이 면담에서 얼마나 엄격하게 하셨으면 애가 울면서 나오냐며 긴장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이 사건을 두고두고 말씀하시곤 했다. 어쩜 가톨릭신자로서 저렇게까지 종교생활을 열심히 할까 싶은 우리 이모는 "너는 그 말씀이 영광인 줄도 모르고 울면 어떡하니?"라고 하시고, 엄마는 "내가 수녀님이 옆에 계시는데, 얘가 수녀하기 싫다고 엉엉 울어대서 얼마나 죄송하고 민망했는지 모르겠다."라는 대화로 이 에피소드는 항상 마무리된다.
아침 일찍 바티칸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우리는 또 하마터면 내가 수녀가 될 뻔한 스토리를 나누었다. 아마 지금 신부님이 나를 보면 그 말을 취소하고 싶으실 거라고 깔깔깔 웃었다.
로마에서 가장 날씨가 좋았던 날, 축복이 함께한 바티칸
고작 1년짜리 종교생활이었지만 한 때의 엘리사벳(엄마의 세례명)은 바티칸 입성에 굉장히 감격스러워했고, 감동으로 마음이 벅차오르는 듯했다.날씨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바티칸 투어가 2번째인 나는, 그저 사람들에 치여서 6-7 시간을 떠밀려 다닐 생각을 하니 입장하기도 전에 걱정이었다.
개인적으로 바티칸은 무조건 전문가이드를 동반한 투어로 다녀와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일단 바티칸 내부는 동선이 복잡해서 길을 잃거나 꼭 봐야 하는 것을 놓치기 쉽다.
거기다가 아침 일찍 가도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고, 내부에 입장해도 사람이 정말 많다. 어쩌면 사람들에 떠밀려서 몇 시간을 빠져나오지도 못하고 다녀야 한다. 바티칸을 거의 매일 오는 가이드님이 안내해주는 최적의 동선을 따라다녀도 힘든 게 바티칸이다.
바티칸 투어 업체를 예약하기 전에 내가 중요하게 따진 것은 단 2가지였다.
- 패스트트랙으로 입장할 것
- 소수인원 가이드 투어일 것
내가 선택한 투어업체는 최대 8인 예약이었고 공인가이드와 패스트트랙으로 입장했다. 최소인원이 2명이라도 투어가 진행된다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지만 그날은 8명을 꽉 채워 투어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몇 년 전에 20여 명이 넘게 다니는 투어가 힘들었던 나는 소수인원 투어가 꽤나 마음에 들었다.20여 명쯤 같이 우루루 다니다보면 다른 투어팀과 섞이거나 가이드와 중간에 떨어져서 쫓아가기 바쁘고, 선두에 있는 가이드가 설명하는 내용을 뒤에서는 약간의 시간차로 인해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비용이 조금 더 들더라도 소수인원으로 신청했고, 정말이지 스스로 나를 칭찬하고 싶을 만큼 잘한 선택이었다.
작은 체구의 가이드님은 차분한 목소리로 쉬지 않고 하나라도 더 설명해주셨고, 4시간 정도의 반일투어와는 달리 7시간 가량의 집중코스 투어였다. 회화관 투어가 끝나고나면, 카페에 약 1시간정도 앉아 티타임과 함께 가이드님이 준비해오신 각종 시청각자료를 보며 역사와 문화 등 각종 설명을 들었다.
" 디너쇼라고 생각하시고, 커피와 간식 드시면서 편안하게 앉아서 들어주세요~"라는 말씀과는 달리, 가이드님은 1시간 내내 서서 태블릿을 활용하며 쭉~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메디치가문과 교황 등 각종 지식들을 꾹꾹 눌러 담아 열정적으로 전달해주셨다.2명씩 4팀이었던 우리는 가이드님이 보여주시는 것들을 충분히 돌아가면서 보면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덕분에 바티칸투어 2회차인 나도 너무 재밌게 들었다. 사실 바티칸은 꼭 보셔야한다는 생각에 최대한 엄마가 덜 힘드실 거 같은 방향으로만 생각했는데 오히려 내가 더 재밌었다.
추천해주신 인삼커피와 오렌지환타는 너무나도 입맛에 잘 맞았고, 에너지를 보충한 우리 팀은 솔방울정원부터 내부의 각종 벽화의 방을 지나 시스티나 성당을 거쳐 김대건신부님 동상까지 같이 이동해서 설명을 듣고, 베드로대성당 앞에서 투어를 마쳤다.
존경과 박수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투어였다. 바티칸 입장료 자체도 예전에 비해 올랐고, 코로나 이후 투어비용도 꽤 올랐지만 전혀 아깝지가 않았다.
우리는 행복한 마음을 가득 안은채 쿠폴라에 오르기로 했다. 쿠폴라 엘리베이터 티켓을 사기 위한 줄이 성당 밖까지 늘어져있어 한참을 줄을 서서 기다렸고,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한 줄도 한참을 기다렸어야 했다. 하지만 바티칸에 왔으면 쿠폴라만큼은 꼭 올라가봐야한다.
가이드님과 헤어진 직후라, 서로 감동한 포인트와 인상 깊었던 것에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긴 줄이 금방 줄어드는 것 같았다.
쿠폴라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본격적으로 계단을 오르기 전, 지붕 위 성물샵이 나온다.
가톨릭 신자인 이모를 위해 엄마는 묵주 팔찌 몇 개를 구입했다. 나도 기념품으로 몇 가지를 구매하고, 예전에 그랬듯이 이번에도 엽서를 써서 부쳤다. 바티칸에서 보내는 편지.
아빠에게 엽서를 쓰시라고 했지만 엄마는 한사코 거절하셨다.(참고로 두 분은 사이가 좋다.)
이제 계단을 한없이 걸어야하는 순간만 남았다.
돔모양으로 기울어진 천장을 손으로 짚어가며 뱅글뱅글 돌아서 올라갔다. 중간에 잠깐 숨을 고르면서 쉬기도 했지만 다행히 정체구간은 없었고, 우리가 쿠폴라를 한참 오를 때가 마침 미사시간이라 계단은 붐비지 않았다.
마지막코스인 나선형 철제계단을 오르던 때, 엄마는 '조각케이크 모양처럼 생긴 계단을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돌면서 올라가니 어지러우면서 오랜만에 목에서 피맛이 났다.'라고 하셨다.
내가 꼭 보여드리고 싶었던 모습
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로마에 왔고, 힘들 거 알면서도 바티칸에, 쿠폴라에 오른거다.
우리는 참 행복했다.
"이걸 내 눈으로 직접 보다니!"라며 엄마는 기뻐하셨고, 그 모습을 보고 나도 기뻤다.
어제 하루종일 흐리더니 결국은 세차게 쏟아져내린 폭우 덕분에 다음날 우리는 맑디 맑은 날씨와 함께 바티칸에 머물 수 있었다. 참으로 멋진 풍경을 보면서 말이다.
나의 힘들었던 마음도 어제 폭우 속을 헤매면서 털어버리고 왔던 터라 마음껏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