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하는 할머니가 물려주신 유산

아들아. 우리는 그 반점 때문에 이 세상에 왔으니 그 반점 탓하지 마라.

by 여여


나 어릴 적,

할머니 손등에서 팔목까지 검은 반점이 많았다..
어린 내가 왜 그러냐 물으면, 저승 갈 날이 멀지 않아 생기는 표시라 하셨다..

내 할머니, 나 어릴 적 저승길 앞두고 생겼던 검은 그 반점.

소위 검버섯이라 하더라.
나이 들어 생긴다 하여 영어로는 Age spot라 하는 검버섯.

할머니가 저승길 떠나시고, 한참 후 내 아버지 손등에서 할머니 것과 똑같은 검버섯을 보았다.

그리고 얼마 전, 내 아버지도 저승길로 가셨다.


그러고 한참 후, 내 손등에 검버섯이 창궐하더라.

나도 이제 저승길 떠날 채비를 서둘러야 하는 나이가 됐나 보다.

내 아버지가 할머니로부터 물려받고,

내가 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검버섯.
그 모양이 예쁘지는 않지만,

내 사랑하는 할머니 그리고 내 아버지가 내게 물려주신 검버섯.
그래서 정감이 간다.


어찌 할머니, 아버지가 물려준 것이 검버섯뿐이겠느냐마는

내가 사랑하는 조상이 물려준 검버섯 모습에 정감이 간다.

이 검버섯이 없었다면

내가 내 할머니 손자로

그리고 내 아버지의 아들로 이 땅에 오지 못했으리라..


내 손등의 검버섯에서, 내 할머니의 검버섯 그리고 내 아버지의 검버섯을 본다..
돌아가신 내 할머니와 아버지가 보고 싶은데...

이렇게 내 할머니와 아버지의 검버섯을 내 손등에서 바라보니

마치 돌아가신 할머니와 아버지를 보는 듯하다..

연안 박지원의 한시 " 憶 先兄(억 선형)"이 생각난다.

연암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가 그리울 때면, 아버지의 용모를 닮은 형을 보면서 아버지를 추억했는데

어느 날 그 형이 돌아가신 후 아버지가 그리울 때 형의 용모를 볼 수가 없어

형을 닮은 연암 자신이, 형의 의관을 차려입고 냇가로 가서

자신을 냇물에 비춰보며 아버지와 형을 추억했단다.


처음 내 손등에서 흉한 반점을 발견했을 때 피부과에 가서 제거 수술을 받았는데..

이제 내 손등의 검버섯을 보고 그리운 할머니와 아버지를 추억한다.


내 아들도 내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검버섯을 나로부터 물려받았을 터,

내 아들이 나이 들어 자기 손등에 검은 반점 생길 때

부디 아들도 조상이 물려준 그 반점 사랑해 주기를 바란다.


아들아. 우리는 그 반점 때문에 이 세상에 왔으니 그 반점 탓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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