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맥주 한잔 하실래요"를 보고
그간 브런치에 통 들어오질 않았다. 연극이다 음악회다 보러만 가고 막상 글을 쓰려고 하면 되게 귀찮아져서 그냥 재밌게 관람만 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맨날 써야지 써야지 하다가 게으름 이슈로 미루게 되고, 큰 마음 먹고 노트북을 열었는데 글을 쓸 때 곁들일 배경음악 찾는다고 유튜브를 뒤적이다가 쇼츠 하나 누르니 2시간이 이미 날아가버리는 날이 부지기수였으니까. 핑계를 대자면 세상에는 한눈팔기 딱 쉬운 재미있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이제 다시 때가 왔다. 연말연시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써내려가 보려고 한다. 사실 이번에는 본의아니게 마감시일을 받게 되었다. 의지박약인에게는 이런 원동력이라도 있어야 해서 지면을 빌려 기한을 주신 분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
이번에는 "맥주 한잔 하실래요"라는 연극을 보고 왔는데, 일전에 관람했지만 글은 쓰지 않았던 "바디체인지"라는 연극과 마찬가지로 관객 참여형 연극이었다. 그래서 항상 마음 속 연극 장바구니에 담아뒀던 것을 올해가 가기 전에 드디어 보게 되었다.
1부는 배우들의 시간, 2부는 관객들의 시간으로 나뉘어져 있고 연극 제목에서 어느 정도 감이 왔을테지만 배우도 관객도 맥주를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그런 연극이다.
배경이 게스트하우스 라운지인지라 최대한 그것과 비슷하게 꾸며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보통의 극장에서 티켓하우스가 여기서는 프론트 데스크였고 티켓 역시 카드키를 연상하게 하는 명함 크기의 티켓이었다. 입장할 때부터 극이 시작하는 느낌이어서 역시 관객 참여형 연극다운 기획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극장 가는 길부터가 시작이 아니었을까 싶다. 예약확인 안내문자에 '멧돼지를 조심하라'는 문구가 괜히 써 있던게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진짜 멧돼지가 나타나는 스펙터클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으니 너무 걱정하진 않아도 된다.
연극이 시작되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조명이었다. 보통의 극장과는 달리 게스트하우스의 모습을 따 온 관계로 조명시설이 열악해보였지만 밝기 조절 기능도 있고 갖출 것은 다 갖춰져 있었다. 뭉클조명이라 했던가. 조명들이 또 예쁘고 색도 따뜻해서 분위기 또한 한 층 더 따스했다.
이야기는 여느 청년들의 고민거리들, 그리고 그것들을 하나씩 타파해 나가며 더 성장하는 우리 자신들을 보여주었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에 슬퍼했고, 너무 많은 선택지 때문에 모두의 만족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결정을 쉽사리 하지 못했고, 여러 상황들 때문에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했던 우리들. 그러나 이 고민들은 '하면 된다'는 주문에 모두 해결이 된다. 물론 어렵고 시간도 많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천천히 차근차근 하나씩 풀어나가면 안 될 것은 없다. 1부는 그렇게 마무리가 된다.
드디어 기다리던 관객의 시간. 모두가 둘러 앉아 아무 내용의 한 마디씩을 하고 수건돌리기 같은 게임으로 화자를 지정하게 된다. 화자는 이 글의 제목처럼 궁금증을 일으킬만한, 소위 말하는 어그로 잘 끌리는 한 마디를 이야기하면 청자들은 그 주제에 맞는 질문들을 맥주 한 모금과 함께 던지면 된다. 그리고 화자는 그 질문들에 답을 하는 식으로 이뤄졌는데, 개인적인 얘기들이 오갔고 2부 한정 매 회차마다 다른 관객 다른 이야기니까 자세한 것들은 직접 참여해서 경험해 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래서 뭔가 집단상담 하는 느낌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개인사, 고민거리를 듣고 공감하며 우리 자신들에게 위로하고 연대하는 그 기분이 좋았다. 다 같은 고민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만 이런게 아니었구나 하면서 되게 큰 힘이 되었다.
어쩌다보니 나도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는데 그 때 끌었던 어그로는 지금 글 제목과 같았다. 목적어가 없으니 상상하기 나름이지만 내가 진짜 하고싶었던 말은 지금 이 글을 쓰는 까닭, 리뷰 글작가가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연극도 리뷰를 쓸 계획이지만 차일피일 미루는 경향이 있다고 얘기하니 이태양 연출가님께서 마감기한을 주신 것이었다. 리뷰가 마음에 드실지 어떨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덕분에 완성이 되어가고 있어서 또 한 번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
그런데 또 다른 생각으로는 정말 희망사항이긴 하지만 아예 연극배우가 하고싶은 것도 있다. 그래서 이런 관객참여형 연극에 많이 기대하고 관심있어 하는게 아닐까 싶다.
맥주도 참 맛있었다. 크러시를 예전에 먹어봤는데 그 땐 크게 맛있지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도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는데 크러시는 캔이 맛있나보다. 다른 사람들 많이 마셔봐야 두 캔 마시던데 맛있어서 네 캔이나 마셨다. 국산 맥주 아직 안 죽었구나 싶었다.
그리고 다시 1부 이야기를 하자면 이별 이야기에 무지개빛깔을 넣은 것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관객들도 크게 동요하는 분위기가 아니었고 그래서 우리 사회가 점점 다양성을 인정해주는 분위기로 가는 느낌이라 너무 좋았다. 개인적으로 정재환 배우님의 경남 말투는 대구 출신으로서 너무 정겹게 들렸고, 그 말투가 여러 사람이 거쳐가는 게스트하우스 특성을 더욱 부각시켰다. 게스트하우스 라운지에서 같이 이야기 듣는 느낌이었다.
이제 글 마무리를 할까 한다. 쓰면서 또 찾아보니 원래 이 달 말이 이번 시즌 마지막 공연이었는데 인기가 꽤 있는지 다음 달에 추가 공연이 있다고 한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배우 교체도 일부 예정되어 있나보던데 아직 못 본 사람들은 빠른 예매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극장 벽면에 방명록 적는 공간이 있어서 한 줄 적었는데 그걸 사진으로 남기질 못했다. 그것 뿐만이 아니라 극장 곳곳이 포토존이었는데 왜 사진 찍을 생각을 못했나 싶다. 그래서 이번 글에는 극단 SNS에 있던 단체사진과 포스터가 이미지의 전부이다. 개인적으로 아쉽지만 내 실수라 뭐라 하지도 못한다. 다음에 다른 공연에는 남길만한 것들을 좀 챙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