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토끼 Jan 03. 2021

새해에는 성덕이 되어 보자

누구나 좋아하는 가수 하나쯤은 있으니까

재작년의 일이다. 합정의 어느 카페였다. 2층 구석 자리에 앉아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카페 한 쪽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처음 듣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어, 뭐지. 마음이 출렁했다. 휴대폰이나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때우려던 나는 어느 순간 아무 것도 못하고 카페를 잔잔하게 채우고 있는 노래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다음 곡에서도 같은 목소리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또 마음이 출렁. 눈에 띄는 게 싫어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건만 자리에서 일어나 점원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노래 누구 노래예요?


다린.


집에 오자마자 당시 이용 중이던 음원사이트에서 다린을 검색했다. 싱글앨범 몇 개를 제외하고는 두 장의 앨범이 올라와있었다. ‘Stood’ 그리고 ‘가을’. 모든 곡이 좋았다. 말도 안 돼. 정말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도 한 두 곡은 내 취향이 아니기 마련인데 이렇게 다 내 취향일 수 있다니. 지구 어느 구석에 숨어 있던 취향의 도플갱어를, 심지어 나에게는 없는 어마어마한 음악적 재능을 지닌 도플갱어를 만난 느낌이었다.


그 해의 남은 날들은 거의 매일 다린의 노래를 들은 것 같다. 특히나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그녀의 노래를 밤새도록 나직이 틀어 놓았다. 누군가 괜찮다고 토닥여줄 때보다 내 감정을 정확히 읽어줄 때 더 위로가 되는 날들이 있다. 그 때가 그러했다. 괜찮다고 힘내라고 하는 노래보다 다린의 노래가 더 위로가 되었다. 단 한 소절도 과하지 않은 그녀의 감정이, 단 한 소절도 진부하지 않은 그녀의 표현이 잠들지 못하는 마음을 정확하게 쓸어주었다.


그러다 얼마 전 ‘싱어게인’이라는 TV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며 나는 또 오랜만에 마음이 출렁했다. 사실 출렁한 정도가 아니라 이번에는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꺅, 설마! 이름을 가리고 경연하는 프로그램의 특성 상 56호라는 이름을 달고 노래를 부르는 앳된 얼굴의 가수, 그런데 그녀에게서 이제는 너무나도 낯익어 길에서 스쳐 들어도 알아볼 것만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처음 다린에 대해 찾아볼 때까지만 해도 그녀의 얼굴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고, 이후에는 노래를 들으며 머릿속에 상상하게 된 이미지를 계속 간직하고 싶어 일부러 찾아보지 않았었다. 그런데 TV 속에 그녀의 목소리에 꼭 어울리는 얼굴과 표정과 몸짓을 지닌 가수가 노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린이다! 다린이 TV에 나오다니!


심사위원들은 그녀에게 이소라 씨와 스타일이 비슷하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의자에 앉아 마이크를 입술 아래 꼭 붙이고 나지막하지만 절절하게 노래하는 그녀의 모습은 아직 어린 이소라 씨 같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곡을 커버하는 그녀의 모습이 아닌 자기 곡을 부르는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면 심사위원도 생각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녀의 목소리나 노래하는 스타일은 이소라 씨와 비슷할지 몰라도 그녀가 만든 노래는 이소라 씨가 만든 노래와 다르다. 한 때 이소라 씨도 정말 좋아하여 앨범을 자주 들었던 사람으로서 ‘확실히’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참고로 나는 글을 쓸 때 ‘확실히’ 같은 부사를 절대 함부로 쓰지 않는 편이다.


다음 라운드에서 그녀와 함께 듀엣 곡을 부르게 될 분은 나처럼 그녀의 노래를 이미 알고 있던 분이었다. 그래서인지 반가운 기색을 표하며 다린과 함께 노래를 부르게 된 자신을 성덕이라고 표현하였는데, 그 장면을 보며 나도 성덕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 이 글을 쓴 이유이다. 평생 가도 나 같은 음치가 다린과 함께 노래 부를 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내 글을 그녀가 읽게 되는 일은 일어날 수 있으니까.


다린은 결국 ‘싱어게인’에서 탈락하였다. 아쉬웠지만 원망하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사람마다 취향은 다르기 마련이고, 그녀가 오디션에 어울리는 가수라고는 나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에게 당신은 당신만의 노래를 하는 가수라는 말, 그러니 계속 노래해 달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당신의 노래 안에서 슬픔은 담담하고, 외로움은 오롯했다고도 말하고 싶다. 당신은 혼자 잠에서 깨어난 순간에 ‘잠든 너의 흰 옷에 파란 새벽이 물이 들었네’라고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고, 이별 후의 날들을 ‘듣는 이 없는 문장을 나는 노래라 하며 서성이고 있네’라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니 굳이 누군가의 평가대로 자신을 바꾸지 않아도 된다고도 말해야겠다. 그냥 그 표정, 그 몸짓, 그 목소리로 계속 노래해 달라고 전할 수 있는,


아, 새해에는 나도 성덕이 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때로는 내가 가장 나를 모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