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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토끼 Jan 17. 2021

힘을 빼고 이를 닦는 법

내가 시린 이라니

이가 시리다는 느낌을 처음 받았을 때 나는 깊은 충격에 빠졌다.

믿었던 이, 너마저...


몸의 안팎 어디 할 것 없이 고루 부실한 내가 유일하게 튼튼하다 자부했던 신체부위가 치아였다. 지금껏 썩은 적도 없고 부러진 적도 없었던 튼튼한 내 이. 개그콘서트의 갈갈이패밀리를 보면서 ‘음, 나도 따라 할 수 있겠는데?’하고 생각했을 정도로 어지간한 건 다 잘 베어 먹었고 우둑우둑 잘 씹어 먹었다. 하기야. 그 사이 개그콘서트는 전성기를 지나 결국 폐지되기까지 했는데 그에 비하면 내 몸은 잘 버텨주고 있는 것인지도. 아무튼 어느 날 초콜릿을 베어 무는 순간 이가 시리기 시작했다. 세상에. 초콜릿을 맛있게 베어 물 수 없는 삶은 생각만 해도 쓰디썼다.


치과에서는 내게 이런 조언을 건네주었다.

양치질을 살살 하세요.

잇몸이 나이에 비해 너무 많이 닳았단다. 그래서 이가 시린 거라고.


시린 증상을 완화시켜 준다는 불소치약을 샀다. 힘을 빼고 양치질을 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을 기울였다. 별 것 아니다 싶었는데 조금만 방심하면 나도 모르게 또 힘을 주고 이를 박박 닦고 있었다. 힘을 빼고 이를 닦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이었다니.


대체 무엇이 문제인 걸까. 다른 감정은 몰라도 분노가 그렇게 많은 사람은 아닌데 왜 나는 자꾸 분노의 양치질을 하는 걸까. 거울 속의 양치하는 내 모습을 매일같이 곰곰이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그리고 깨닫게 되었다.


나는 연필을 쥐듯 칫솔을 쥐고 있었다. 마치 스물여덟 개의 치아마다 빼곡하게 글자들을 새겨 넣으려는 사람처럼 그렇게 칫솔을 쥐고 있으니 자연히 힘이 들어갈 수밖에.


행동은 말이나 글보다 솔직하다. 양치질이라는 행동은 내가 뱉는 말이나 이렇게 주절주절 써놓은 글보다 더 솔직하게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 주었다. 내 손에 들어온 모든 감정과 생각에 힘을 주고, 그걸 놓치는 게 무서워서 몸에든 마음에든 종이에든 새겨 두는 사람. 그 사람이 거울 속에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안간힘을 쓰다가 여린 이음새가 닳아버리면 마침내 가장 단단한 것들마저 잃게 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 양치질을 하기 시작한 지 몇 십 년만에야,

힘을 빼고 양치질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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