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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토끼 Feb 07. 2021

사실 전 돈가스를 못 먹어요

너한테 너무 잘 보이고 싶어서

볼빨간사춘기의 ‘썸탈거야’를 듣다 보면 이런 가사가 흘러나온다.


밀가루 못 먹는 나를 달래서라도

너랑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닐 거야


썸 탈 때의 마음은 사귀는 사이일 때의 마음과는 다르다. 아직 약속된 관계가 아니기에 간질간질한 설렘과 긴장이 있지만 그 이면에는 위태로운 불안감이 자리한다. 그래서 상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더 간절해진다. 싫어하는 사람에게조차 잘 보이려 애쓰는 나 같은 사람은 썸 타는 사람이 생기기라도 하면 잘 보이고 싶어서 몸살이 날 정도이다.


아직 ‘썸’이라는 단어조차 세상에 나오지 않았던, 그래서 그 이상야릇한 마음을 더더욱 설명할 길이 없었던 스무 살 시절을 떠올려 본다. 그 때 나는 혹 마음에 드는 사람과 함께 밥을 먹게 되면 꼭 돈가스를 먹으러 갔다. 혹시라도 먹다가 나물 같은 게 잇새에 끼지 않을 음식, 햄버거나 피자처럼 입을 쫙 벌리지 않고 작게 썰어서 입에 쏙 넣을 수 있는 음식이 나에게는 돈가스였다. 물론 맛도 있고.


문제는 내 몸이 튀긴 음식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점이다. 실은 밀가루도, 돼지고기도 일정량 이상 먹으면 꼭 탈이 난다. 유난히 병치레가 잦은 위장을 가진 탓에 못 먹는 음식이 참 많지만 그 중에서도 돈가스는 나에게 있어 소화가 안 될 모든 요소를 고루 갖춘 음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늘 돈가스를 골랐던 내 마음을 그 때의 썸남들은 절대 모를 것이다.


이십대 중반쯤부터 소화가 안 되는 음식들은 아예 끊었다. 그런데도 종종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그 모든 결심과 습관을 무너뜨렸다. 같이 더 있고 싶어서, 싫다는 말을 하기 싫어서 먹지도 못하는 음식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 발이 아파 물집이 잡히기 시작하는데도 더 걷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가 무리하고 있구나.


언제부터인가 무리를 하게 되는 그 마음이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결국 볼빨간사춘기의 가사처럼 ‘내 맘의 반쪽을 네게 걸어보는’ 모험을 하지 않고 물러서는 사람이 되었다. ‘한 번 더 너에게 다시 달려가’ 보는 대신 나 자신에게 괜찮으냐고 묻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바삭바삭하게 잘 튀겨진 돈가스를 앞에 두고 이렇게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려 한다.


사실 전 돈가스를 못 먹어요.









이미지출처: Hypebe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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