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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토끼 Mar 01. 2021

범인은 이 안에 있어

누가 층간소음을 내었는가

며칠 전부터 이상한 소음이 계속 되고 있다.

 

따다다다다다다-


짧은 간격으로 규칙적이게 이어지는 진동 소리. 처음에는 어느 집에서 가정용 재봉틀을 새로 샀나 했다. 어릴 때 엄마가 한복 만드는 일을 하셨는데, 딱 그 때 들었던 재봉틀 소리와 흡사했다. 길어지는 집콕 라이프 중에 이웃의 누가 새로운 취미로 옷 만들기라도 시작하신 건가. 하지만 새벽 6시에 비몽사몽 눈을 떴을 때부터 자정이 넘어 잠들 시간까지도 소음이 계속되자 철인이 아닌 이상 이렇게 오래도록 재봉틀을 돌릴 수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소리일까. 뭔가 24시간 자동으로 돌아가는 기계의 모터 소리 같은데 그럴 만한 게 뭐가 있을까. 공기청정기? 냉장고?


사실 주의 깊게 듣지 않으면 듣지 못할 수도 있을 만큼 작은 소음이라 그냥 참고 지내보려고도 했다. 무지막지한 우퍼스피커까지 동원할 필요도 없이 그냥 나지막하게만 음악을 깔아놓아도 충분히 덮일 만한 소음이었다. 하지만 나 역시 전보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 상황에서 종일 음악을 틀어놓고 있자니 그것도 나름대로 귀가 피곤한 일이었다. 게다가 음악이 잠시 끊어진 틈 사이로 여지없이 들려오는 그 미세한 소음.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이렇게 특정 소음을 인지하고 그 소음에 예민해지는 걸 ‘귀 트임’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었다. ‘귀 닫힘’이란 말은 없는 걸 보니 한 번 트인 이상 전으로 돌아가긴 글렀다.


안 되겠다. 범인을 찾아보자. 역시 얼마 전 새로 이사 온 윗집이 소음의 진원지일까. 찾아가 봐야 하나. 아냐. 아랫집이나 옆집에서 벽을 타고 오는 소음도 많다고 하던데. 그래. 모를 때는 또 검색을 해보는 수밖에. 그런데 대체 뭐라고 검색해야 할까. 층간소음이라고 검색해 보면 발소리나 청소기소리 같은 것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래서는 찾을 수 없다. 이 드넓은 인터넷의 바다 어디에도 나와 똑같은 사례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층간소음이 이렇게 괴로운 존재란 걸 깊이 체감하는 나날들이었다. 다들 이런 소음을 견디고 사는 거구나. 이 도시의 모든 이웃들에게 존경을 표하는 마음과 짜증스러운 마음이 자주 교차했고, 드디어 결단을 내리리라 마음먹은 것이 바로 오늘이다.


더는 이렇게 살아갈 수 없다. 어떻게든 이 소음의 정체를 알아내고 말리라.


어디쯤에서 시작되는 소리인지 가늠하기 위해 의자 위에 박스까지 쌓고 올라가 천장 곳곳에 귀를 기울여본다. 모든 감각을 귀에 집중시킨다. 어라, 그런데 천장에서 시작되는 소리가 아닌 것 같다. 다시 귀를 쫑긋 세우고 여기저기 대어 본다. 책상과 맞닿아 있는 벽에 귀를 대는 순간 문제의 소음이 강하게 벽을 타고 들려온다.

  

여기군!


문제에 한 발짝 다가선 느낌만으로도 벌써 속이 후련하다. 이 벽의 뒤쪽은 화장실이다. 아, 그럼 화장실 환풍기에서 나는 소음인가. 어느 집이 24시간 그냥 화장실 환풍기를 켜놓고 사나. 그럴싸한 추리다. 인터넷에서 어느 집 환풍기 팬이 고장 나서 위아래로 소음이 울렸다는 글도 본 적 있다.


잠깐.

그런데 좀 이상하다.

집중해서 잘 들어보니 이 소음이 내 책상 쪽으로 다가올수록 크고 선명해지는 것 같다. 설마, 설마... 찬찬히 책상 위를 훑어본다. 그리고 무언가가 눈에 띈다. 책상 위에 올려둔 틴케이스, 그리고 그 틴케이스 위에 올려둔 작은 탁상시계. 아냐. 아닐 거야. 저거 무소음시계인데.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손은 탁상시계를 향하고 있다. 그리고 탁상시계를 들어 올리는 순간,


며칠 간 계속되던 소음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하, 하, 하.


그제야 며칠 전 청소하다 이 탁상시계를 떨어뜨린 기억이 났다. 다행히 멀쩡하게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서 그대로 책상 위 틴케이스에 올려뒀었다. 하지만 아마 그 때 시계 내부의 무언가가 망가진 모양이었고, 그 고장 난 소리가 틴케이스를 울리고 다시 책상을 울리면서 마치 벽이나 천장을 울리면서 나는 층간소음처럼 들린 것이다. 시계에 귀를 대보니 과연 시계 안에서 재봉틀 박는 소리가 자그마하게 들린다. 따다다다다다-


휴, 수사는 끝났다. 역시 내가 겪는 대부분의 문제의 범인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나, 내가 범인이었다.

다행인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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