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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토끼 Feb 20. 2022

이름을 불러 줘

육아 관찰자의 소소한 발견

요즘 조카가 크는 걸 보며 드는 생각이 있다. 사람이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은 이름이구나.


엄마 아빠


보통 이 두 단어로 아이의 말은 시작된다. 아이에게는 엄마와 아빠가 그 사람을 부르는 이름이다. 물론 응, 아니 같은 대답이나 까까, 물, 옷 같은 명사도 배운다. 모두 제 의사를 표시하고 필요를 충족하는 데 긴요한 단어들이다.


그런데 실생활에 크게 필요치 않아도 빨리 익히게 되는 말들도 있다. 역시나 이름들이다. 이제 겨우 몇 마디 말을 시작한 조카가 제 애착인형을 안아주며 토토라고 부르거나 티비 속 만화 캐릭터의 이름을 따라 외치는 걸 보면 참 신기하다. 토토, 뽀로로, 에디, 루피 같은 중요치도 않아 보이는 이름들이 이렇게나 일찍 그 어린 뇌에 새겨진다니.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님의 시 구절처럼 이름을 부른다는 건 그토록 중요한 일인가보다. 어린 조카의 세상 속에는 제가 좋아하는 인형이나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가 마치 실존하는 친구처럼 소중하게 기억되고 존재해 있음을 그 서툰 명명을 통해 가늠해 본다.


물론 앞으로 점점 더 많은 말들을 익혀나가면서 조카는 보다 많은 대상들과 복잡한 개념들을 명명하게 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토토나 뽀로로보다 중요하게 인식되는 말들이 아이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게 되겠지. 때로는 엄마나 아빠보다 더 애착하게 되는 말들도 생겨날지 모른다. 그러다 또 그토록 애착했던 단어들이 무겁고 미워지기도 하여 제 안에 있던 모든 말들이 서로 쾅쾅 충돌하는 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복잡한 말의 세계가 시작되는 지점에 무엇이 있었는지 기억하길. 너는 소중한 누군가를 부르며 말을 시작했다는 걸. 그리고 언젠가 마지막 순간에 너의 머릿속에 남아있을 말들도 누군가의 이름, 이름들일 거란다.


어쩌면 인간은 소중한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 위해 언어를 창조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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