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린 눈을 비비며 쓰라니 쓰고 읽으라니 읽었다
교실에 앉아 있던 학생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서약서를 읽는다.
나는 미래의 배우자와 나 자신을 위해 순결을 지킬 것을 서약합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교회가 아닌 교실에서 벌어진 풍경이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2000년대에는 순결서약서를 쓰거나 순결사탕을 나눠주는 학교가 꽤 많았고, 특히나 보수적인 고장의 여학교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물론 나를 포함한 대부분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하게 된 이 서약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졸린 눈을 비비며 서약서를 쓰라니 쓰고 읽으라니 읽었다. 그러면서도 무의식중에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순결을 지키는 일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칭찬받는 일이구나.
드라마를 봐도 순결에 대한 생각은 무의식중에 각인되었다. 수많은 드라마 속의 사랑에 빠진 남녀들은 서로를 아무리 미친 듯이 사랑해도 그 사랑을 육체적으로 확인하는 건 딱 키스까지일 뿐 거기서 더 진전되는 스킨십은 간접적으로라도 다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키스를 나눈 두 사람의 관계는 반드시 결혼으로 귀결되었다.
하지만 그 때 케이블 채널에서 늦은 시각이면 틀어주던 외국 드라마들은 달랐다. 그 중에서도 당시 가장 인기가 많았던 드라마는 <섹스 앤 더 시티>. 물론 정규방송에서 틀어주던 대부분의 멜로드라마와 달리 관람가가 높았다는 결정적인 차이도 있다. 하지만 같이 하룻밤을 보낸 남자와 쉽게 헤어지고 다음 화에서 바로 또 다른 사람을 만나기도 하는, 섹스가 별 대단한 게 아니라 즐거운 교류이고 지속적인 관계로 이어질 가능성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드라마 속 인물들은 낯설긴 했지만 타락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들에게 순결서약서를 들고 가면 코웃음을 치며 박박 찢어버릴 것 같았다.
대체 연애의 진실은 어떤 드라마 속에 있는 걸까. 아직 나이 앞에 숫자 ‘1’을 떼지 못한 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교복 입고 연애하는 건 날라리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생각이 아주 보편적일 때였고, 나는 날라리가 되기에는 너무 겁이 많았다. 그런데 드디어 스무 살이 되어 마주한 연애의 세계는 드라마로 예습했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첫키스가 곧 결혼으로 이어지는 한국 멜로드라마와 뉴욕을 배경으로 한 19세 이상 시청가 드라마 사이의 간극만큼이나 복잡하고 모순적이었다. 나는 그 사이에서 내내 아찔한 멀미를 느끼며 청춘을 보냈던 것 같다. 나보다 먼저 연애를 시작한 친구는 나에게 연애를 오래 유지하는 법칙이라며 다음 사항을 알려 줬다.
일주일 안에 손잡지 말 것. 한 달 안에 키스하지 말 것. 일 년 안에 자지 말 것.
마치 윤하의 노래 '비밀번호 486(하루에 네 번 사랑을 말하고 여덟 번 웃고 여섯 번의 키스를 해줘~)'의 현실 버전 같은 연애의 법칙을 들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여기는 뉴욕이 아니니까.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없어도 순결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시늉은 하는 게 연애의 법칙이로구나. 참 이상하지만 그게 내가 마주친 세상이었다. 생리대를 살 때면 아무도 못 보게 검은 비닐 봉지로 봉해서 들고 와야 하고, 콘돔을 살 때는 거의 준범죄 수준으로 조심스러워야 되는 세상이기도 했지만, 유흥가마다 모텔이 즐비한 세상이기도 했다. 대학 때문에 타 지방으로 와서 자취를 하게 된 친구들 중에는 주거비도 아낄 겸 동거하는 커플들도 꽤 많았다. 물론 걔네 둘이 동거한다더라 하는 이야기는 대개 소문으로만 은밀히 퍼져나갔다. 앞에서는 잘 됐다고 부러워하면서도 뒤에서는 손가락질하기 십상이었으니까. 연애 상대가 자주 바뀌는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조신함의 기준은 언제나 상대적이었고, 매력적인 여자가 헤픈 여자가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나에게 연애의 법칙을 알려준 친구는 결국 첫 번째 남자친구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 때 방영되었던 수많은 드라마의 여주인공들처럼. 꽤 이른 나이에 결혼한 그 친구의 웨딩드레스 입은 모습이 내심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나는 주인공에게 박수를 보내주는 조연이었고, 현실의 청춘들이 대개 그러하듯 그다지 아름답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연애들을 했고 헤어졌다. 그렇다고 <섹스 앤 더 시티>의 인물들처럼 자유로운 연애를 이어갔던 것도 아니다. 헤어짐은 매번 무겁고 두려웠다. 실패한 연애가 늘어갈수록 내용도 잘 기억나지 않는 순결서약서가 자꾸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나를 질책했다. 점차 나이를 먹어가고 세상이 변해가면서 비로소 그 실체 없는 죄의식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몇 년 전에 가깝게 지내던 지인 분께 자신은 개인적 신념에 따라 순결서약을 했고 지금도 지켜나가는 중이라는 고백을 들었다. 이상하게도 그 분의 순결서약은 무겁지도 고리타분하지도 않고 참 멋져 보였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스스로 택한 길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오히려 서른이 다 되도록 혼전순결을 지킨 사람을 신기하게 보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 분은 그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아랑곳하지 않음이 참 멋졌다.
누가 스무 살의 나에게도 그렇게 세상의 이중적 잣대에 아랑곳하지 않는 법을 알려줬더라면 내 이십대의 연애가 조금은 덜 혼란스러웠을까. 순결서약서나 순결사탕 대신에 조금이라도 현실적인 성교육이 이루어지는 시대였더라면 어땠을까. 내가 어떤 사람이고, 관계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질지 고민하는 법을 배우기에 나는 미숙했고 세상은 정답 없는 주관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