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복잡하다거나 고민이 생길 때는 쓴맛을 찾는다. 초콜릿 같은 거 말고, 칡즙이나, 노니주스나, 한약처럼 호불호 강하고 떨떠름한 것들. 아무에게나 호감을 보이지 않는, 주장이 강한 그 맛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고민은 사라지고 쓴맛의 잔상만이 혀에 남는다.
요 근래 내가 생각하는 세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현실이 나를 답답하게 했다.
“지구가 아파요.”
그 말이 그렇게 아픈 건 줄 알았더라면.한때 그저 ‘알고 있어야 하는 상식’ 정도로 받아들인 것에 비해 현실은 참담했다.
플라스틱병에 갇혀 죽는 작은 생명체들과, 일생동안 젖을 짜내다 생을 마감하는 소들과, 끝없이 잘려나가는- 푸른 나무들과, 쓰린 아픔을 어디 말할 데도 없이 품고 사는 사람들의 존재가 그러했고, 이러한 문제는 돈과 편의를 외치는 사람들의 외침 속에 희미해졌다. 또한 그 산더미 같은 현실에 무력하게 놓인 나 자신의 존재가 나를 힘들게 했다.
생각이 생각을 물고 머리가 아득해지던 와중에 쓴맛이 나를 일깨웠다. 다만 아파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고, 감성을 거쳐 이성의 단계로 나아가야 했다.
많은 사람을 매료하는 것은 단맛이다. 허나 단맛만을 좇다 보면 병들기 마련이다. 사람들을 혹하게 하지만 깨달음은 없다. 실로 단조로운 맛과, 단조로운 삶이다.
그런 세상 속에서 나는 달기보단 쓴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단맛에 제동을 거는, 그래서 단맛이 더 달게 느껴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