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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린 Aug 15. 2020

자폐아가 되는 것

중학교 때였나, 학교에 자폐증을 가진 친구 한 명이 있었다. 어린 나이에도 사회성이 좋아야 친구가 많고 인정받아야 했던 사회 속에서 혼자 나돌아 다니는 자폐아는 단연 눈에 띄었다. 다 같이 체육수업을 들을 때면 혼자 나무 아래서 나뭇잎을 유심히 관찰하거나, 복도에서 벽의 문양을 세심히 들여다보는 등의 행동을 하였다.
 
그 친구와 가까워지려고 몇 번 시도했었다. 어떤 사람은 나의 이런 행위에 ‘착하다.’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그건 착한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호기심이 드는 대상과 가까워지려는 건 당연한 본능이기에. 누가 잘 나가는 옆 반 아이와 친한지, 혹은 오리털이 두둑한 노스페이스 패딩을 갖고 있는지, 과도한 가십거리에 예민해져야 인정을 받는 속에서 자폐아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시끄러운 속에서 혼자 고요한 모습이 때론 부러웠고 그와 같이 되고 싶었다.
 
책을 읽다 자폐아와 관련된 부분이 나왔다. ‘자폐아는 사회성, 발달 능력이 뒤처지는데 비해 특정 분야에서 천재성을 발휘한다.’ 그들의 제한된 집중이 오히려 재능을 고도로 발휘할 수 있게 한다는 말이었다. 그림에 있어 천재적인 능력을 갖고 있던 한 아이를 사회화시키는 과정에서 그 천재성이 추락하듯 낮아졌다는 말도 있었다. 이는 단지 재능만이 아니라 생각과 감정 역시 그러하다. 일전에 무언가를 보고 경탄하던 나에게 ‘순수한 척한다’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단숨에 꺾여버린 행복을 기억했다. 그렇게 나를 보는 사회의 시선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다 보니 어느덧 나도 시끄러운 세상 속에 뒤섞여 살고 있었다. 우린 고도로 사회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해내야 한다.
 
엊그제 동네 놀이터에서 그네를 탔고, 풍성히 피어 오른 벚나무가 앞에 있었다. 그네를 힘차게 앞으로 밀어 올리는 순간 발끝에 닿을락 말락 하던 꽃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미소가 머리끝에서부터 샘솟아 입으로 터져 나왔다. 그저 웃었고, 입으론 어릴 적에 들었던 동요를 읊조렸다. 오롯이 그 순간에 녹아들었다.
 
올해 나의 주된 목표는 공교롭게도 ‘자폐아의 특성을 닮는 것’이다.

나와 행위 간의 관계에만 집중하고
그 순간에 필요치 않은 타인은 배제하며
보다 고요함 속에서 행복을 찾아나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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