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있는 특성화고를 나왔다. 조리가 좋아서 선택한 조리과는 나의 생각처럼 낭만적이지 못했다. 공부에 의욕이 없어 차선책으로 조리를 선택한 학생들, 혹은 그런 생각마저도 없이 온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요리를 하다 보니 영양에 관심이 생겼고, 식품영양학과로 유명한 경희대학교를 알게 되었다. 고1 때 국어 선생님께 “저 경희대 가고 싶습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피식 웃으며 ‘이거나 한번 읽어보라’며 취업 관련 종이 한 장을 쥐어주더라.
꿈이 손쉽게 짓밟혔다.
주제넘은 목표였던가?
아니, 그래도 가고 싶은 걸.
특성화고는 야간자습이 없었기에 혼자 학교에 남아 자체 야자를 하고 갔다. 교통비 아끼려고 도보로 40분을 걸어가던 등굣길에서는 영어 듣기 파일을 들었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시끄러운 교실에서는 이어폰을 귀마개 삼아 꼈다. 교실에서 불 끄고 영화를 볼 땐 창가에 앉은 친구와 자리를 바꿔 창문에 비치는 햇살로 공부를 했다. 가능성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고 그냥 했다.
혼자였던 순간이 많았다. 시기심이었는지 공부하는 걸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애들이 있었고, 내가 단어를 외우든 말든 오히려 더 시끄럽게 떠드는 애들이 있었다. ‘옆 반 누구 말투가 마음에 안 들더라’, 같은 대화 말고 좋은 글과 좋은 말들을 접하고 싶었을 뿐인데 내가 사회성이 결여된 것만 같은 기분을 매번 느꼈다. 숨이 턱턱 막혀올 때는 창밖에 자란 나무를 보았다. 가만 서서 공기를 내뿜는 그 선한 존재를 보고 있으면 사회가 내게 부여한 딱지는 아무렇지 않았다. 그저 생각했다. 이 순간을 이겨내고 난 저 너머의 세상은 내게 바라던 세상과 닮아있을 것이라고.
서울로 대학을 온 사람이 전교생에 나 한 명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나의 합격소식을 교원들끼리 주고받는 메신저에 단체 메시지로 공유했고, 선생님들은 “맨날 앞에 앉아서 공부하던 걔 결국 경희대 갔답니더.” 라고 말했다.
대학에 입학하고, “잘 지내냐”는 선생님의 물음에, 벚꽃 핀 학교에서 본관놀이한 사진을 보내드렸더니 “결국 니가 있어야 할 자리로 갔구나.”라고 하셨다. 그때 심장에 조여오던 먹먹한 그 감정을 표현할 단어를 아직도 모른다.
작년쯤인가, 특성화고를 졸업해 공장 노동을 하다가 기계가 내려앉아 급사한 23살 청년을 기리는 자리가 마련되었고, 고려대생, 서울대생 등 다수의 엘리트가 모인 장소에서 말할 기회가 주어졌었다.
“여러분들이 ‘좋은 대학에 와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특권일 수 있습니다. 그들이 특성화고를 졸업하자마자 공장에 취업하게 된 것은 단지 노력의 부재가 아니라 그들이 처한 가정환경, 화사한 미래를 꿈꾸는 것조차 사치일 수 있는 상황이 존재합니다.”
그치, 나도 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엄마 언니들 없었으면 지금 어디서 뭐 하고 있을지 모르는 거잖아. 하루 종일 서서 부었을 다리를, 속이 헛헛하게 비었을 혀끝의 짠내를, 주머니에 들어있던 컵라면과 초코과자를 그저 의자에 앉아 ‘사회적 비극’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는 그게 특권이 아니면 뭐라 말할까.
온몸을 떨면서 말을 마쳤고 그 안에 있던 수많은 학생들이 함께 울었다.
그때 느꼈다.
’나 보잘것없던 실업계고 학생에서 지금 이렇게 똑똑한 친구들한테 깨달음을 줄 정도로 성장했구나.‘
수업 준비 없이 피피티를 줄줄 읽어 내리는 교수님한테 ‘수업 준비는 해오시냐’고 대들었던 일이 화제가 되어 페이스북에서 3만 개 개가 넘는 좋아요를 받은 적도 있다. 대학주보에서 연락이 왔고, 후마니타스 학장님께 불려 “용기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건 어쩌면, 대학을 강요받은 적이 없었기에 미련 없이 떠날 준비도 되어있었던 특성화고 학생이기에 가능했던 무모함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겐 경희대가 낮은 목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틀을 깨부수는 경험을 통해 얻어낸 이 공간이 너무나 소중하다. 나의 경험이 타인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배움은 내가 속한 그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직도 대학 줄 세우기로 한 인격을, 한 인간을 평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사물의 단면만 볼뿐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특성화고를 나와서 갖게 된 소중한 가치 중 하나는 바로 ‘이면을 볼 줄 아는 눈’이다. 타인에게 영감을 주는 삶— 그 기반에는 세상을 더 낫게 바꿔 나가려는 노력이 숨겨져 있다. 오리들 사이에서 나 혼자 물갈퀴가 있는 것 같을 때, 스스로를 백조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냐는 오로지 나의 몫이다.
혼란 속에 떨고 있는 너는 한 송이 꽃이다.
그러니
부디 꺾이지 말길
제발 그러지 않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