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생, 사회에 던져지다.

외고와 지방대 사이에서 출발한 사회초년생의 현실

by 강쪼꼬

나는 천안에서 태어나 천안과 그 옆 동네인 아산에서 자랐다.

크게 특별할 것 없는 동네에서, 크게 특별할 것 없는 학생이었다.

다만 한 가지 특별한 게 있다면,

우리 엄마의 학구열과 나는 칭찬받기를 좋아하던, 말 잘 듣는 딸이었다는 점이다.


중학교 내내 최상위권을 유지하던 나는

공주사대부고 입시에 떨어지고,
차선책이던 충남외고에 입학했다.

외고에 들어가면 인생이 달라질 거라 생각했다.
적어도 어른들은 그렇게 말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나는 외고에서 망한 케이스였다.

영어 괴물들 사이에서 내 성적은 애매했고,
의욕은 빠르게 사라졌다.
수능 점수를 보신 담임선생님은 재수를 권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공부를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는, 이 방식의 공부를 더 하고 싶지 않았다.

3년 동안 거의 주말도 없이 기숙사 독서실에서 매일 밤 10시까지

졸음을 참아가며 공부하던 시간은 그때의 나에게 너무도 큰 고역이었다.

다시 한 번 도전한다고 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대전의 한 4년제 신생대학교에 입학했다.
학교 이름을 말해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곳이었다.
학생 수는 1,000명 남짓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솔직히 말하면, 학교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애초에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선택이었다.
캠퍼스는 작았고, 대전에는 연고도 없었다.

‘정 아니면, 반수라도 해야 하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딱 하나, 마음에 드는 점이 있었다.
외국인 유학생 비중이 50%가 넘는 학교라는 사실이었다.

캠퍼스를 걷다 보면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많이 들렸고, 중국어, 베트남어, 러시아어가 뒤섞여 흘러다녔다.

그 풍경이 묘하게 나를 끌어당겼다.


‘그래도 외고에서 배운 게
아주 쓸모없진 않겠네.’

영어와 중국어, 그 두 가지만큼은 언젠가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정말 그 이유 하나로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나는 그 대학을 졸업했다. 그것도 수석으로.


하지만 지방 4년제를 수석으로 나왔다고 해서
사회에 큰 도움이 될 만한 무언가를
얻은 것은 아니었다.


학교 안에서 조교 같은 아르바이트를 하긴 했지만,
학교 밖에서 일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돈을 좋아했고, 쓸 줄만 알았지 벌 줄은 몰랐다.


그렇게 2017년,
졸업과 동시에 나는 사회에 던져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내가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어디쯤에 서 있는 사람인지.


외고를 나왔지만 내신도, 수능도 잡지 못한 케이스였고
대학을 나왔지만 내세울 간판은 없었으며
외국어를 했지만 당장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스펙도, 경험도, 전략도 없는 상태로
사회에 발을 들여놓았다.


하지만 그땐 몰랐다.

다들 비슷하게 시작하는 줄 알았다.

조금 서툴러도,
조금 헤매도,
시간이 지나면
나를 위한 자리 하나쯤은 자연스럽게 생길 거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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