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나는 계속 지원서를 썼다

문과생의 첫 구직기

by 강쪼꼬

경영학부를 졸업했지만, 막상 사회에 나와 보니
경영학이 뭘 할 수 있게 해주는 학문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계사나 컨설턴트가 될 만큼 전문적인 것도 아니었고,
개발자나 기술자처럼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기술을 배운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평범한 문과생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건 외국어였다.

수업은 대부분 영어로 들었어서,
토익 900점, 토익스피킹 레벨 8,
2학년때 중국 교환학생으로 남은 HSK 6급이 있었다.

대단한 무기는 아니었지만, 이게 취업의 동앗줄이 될 것 같았다.

‘그래도 영어랑 중국어는 쳐주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외국어를 조금이라도 써먹을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고, 그 당시 찾은 직무가 해외영업이나 무역사무였다.

사실 그때의 나는 해외영업이나 무역사무를 진짜로 원해서 지원한건 아니였다.

내가 그나마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에서 지원을 시작했다.


공고에 '영어 필수, 중국어 우대' 이 문구가 있으면

일단 지원서를 넣었다.

취업에도 초심자의 행운이란게 있었나, 처음에 넣었던 몇 곳의 대기업에서 서류가 통과 되었다.

그런데, 그 다음 진행된 인적성 시험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아 그 좋은 기회를 날려먹었다.

내 스펙이 그래도 먹히는 구나라고 생각하는 찰나부터 나에게 대기업 서합은 없었고, 모든 대기업에서 광탈하고 말았다.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본가에서 출퇴근할 수 있는 천안과 아산에 있는 회사들만 지원을 했다.

본가에서 주거비를 아낄 수 있다면 그게 베스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루에 한두 개씩 지원서를 넣는 걸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하루에 열 개씩 넣기 시작했다. 조건을 따질 여유는 없었다.

직원 수가 5명인 곳부터 모두 지원했다. 회사의 규모는 클수록 다다익선일 뿐이였다.


이력서를 아예 읽지 않은 게 느껴지는 곳도 있었고, 불합격 연락도 없이 며칠 뒤 같은 공고가 다시 올라오는 곳도 많았다. 그래도 나는 계속 지원서를 썼다.

면접을 보러가면 나와 같은 쌩신입은 정말 보기 힘들었다. 몇 살 더 나이는 있었지만 경력이 조금이라도 있었고, 중고신입으로 지원한 경력자와 매번 경쟁을 해야했다.


떨어지면 또 쓰고, 연락이 없으면 다음 회사로 넘어갔다.

그리고 그렇게 한 달쯤 지났을 때,직원 수 5명 남짓한 한 회사에서 1시간 반짜리 면접을 봤다.

지금 생각해도 꽤 긴 면접이었다.

천안과 아산에 내가 지원할 수 있는 회사는 거의 바닥이 난 상태여서 합격통보를 받고 그 곳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의 첫 회사가 결정됐다.

그 당시 연봉은 2700 이였고, 성악가처럼 긴 머리를 하신 남자 대표님과 나를 포함하여 5명의 여직원이 있었다.

월,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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