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0만 원이 찍힌 날, 나는 퇴사를 했다

이직 없는 퇴사, 그리고 1년의 공백

by 강쪼꼬

1,600만 원이 찍힌 날, 나는 퇴사를 말했다

청내공 1,600만 원이
내 통장에 찍힌 걸 확인한 그날,
나는 회사에 퇴사 의사를 전달했다.

망설이지 않았다.
이미 마음속에서는
그날이 퇴사일로 정해져 있었으니까.


한 달간의 인수인계를 거쳐
나는 회사를 나왔다.

이번 퇴사는
이직이 예정된 퇴사가 아니었다.
도망도 아니었고,
보험도 없었다.

다른 길로 가보기로 한 퇴사였다.


당시 나는
관세사 1차를 합격한 상태였다.

그래서 퇴사 후
전업 수험생으로
1년만 더 도전해 보기로 했다.

기한을 정해둔 싸움이었다.
1년.
딱 1년만.

그 안에 안 되면
미련 없이 접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꽤 많은 돈을 썼다.

학원 등록비,
인강, 현강,
주말 모의고사.

공부외에 다른 곳에 돈을 쓰는 것은
그때의 나에게는 사치였다.

수입도 없었고, 시간이 없었고,
한 번에 끝내고 싶었다.


그렇게
1년간의 수험생활이 시작됐다.

남자친구와는
한 달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했다.

주말에도, 평일에도
내 일상은 늘 같은 패턴이었다.


공부하고, 지치고,다시 앉고.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말하긴 어렵다.
나름대로는
정말 열심히 했다.

결과는
0.5점 차이 탈락이었다.


2차 불합격.

점수를 확인하고
크게 무너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담담했다.

아, 여기까지구나.
이 싸움은
내가 끝까지 끌고 갈 싸움은 아니었구나.


약속했던 대로
나는 미련 없이
수험시장을 떠났다.


그리고 다시
취업 시장으로 돌아왔다.

근 1년 만의 취준이었다.


이력서를 다시 쓰는 것도,
면접을 준비하는 것도
조금은 떨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첫 번째로 본 중소기업에
덜컥 합격하고 말았다.

그렇게
나의 서울 중소기업 생활은 또다시 시작됐다.


그당시에는 조건은 나쁘지 않아 보였다.

연봉 3,500만 원,
상여금 월급의 200% 보장.

이전보다는 조금 나아진 선택을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늘 상황이 바뀔 수 있다.

입사하고 보니
상여금은 200%가 아니라
30%으로 바뀌었다. 시황이 안좋다는 이유로 말이다.


말이 다르고,
기대가 다르고,
현실은 늘 그 아래였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아직 어렸고,
아직 움직일 수 있었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조건에서
빨리 성장해야 했다.


그래서 또다시
이직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도망치듯 나오는 퇴사가 아니라,
조금 더 큰 판으로 가기 위한 이동.


이제는
무작정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조건을 따질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렇게 나는
또 한 번의 선택지 앞에 서게 된다.

월,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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