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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이집사 Jul 06. 2023

호랑이 위에 장모님

"암만 봐야 먹을 게 뭐 있네"


< 호랑이 위에 장모님 >


눈 빛 살기 가득 호랑이

어슬렁거리며 다가오고


왼쪽 오른쪽 두리번두리번

말이라도 잡아먹을 기세네


아이쿠 턱 밑까지 오려는 찰나

여유 있는 장모님의 한마디


"암만 봐야 먹을 게 뭐 있네"






장모님은 곧 일흔입니다.

전보다 많이 약해졌습니다.

편찮으신 곳도 많습니다.


지지난 주 수술을 했습니다.

무릎에 구멍을 몇 곳 뚫었습니다.

발바닥 티눈도 도려냈습니다.

한달 가까이 병실 신세를 져야한답니다.


지난 주말, 수술 열 흘만에

병문안을 갔습니다.

두 발짝 떨어진 저와 달리

아내는 엄마 손 꼭 잡고

어쩔 줄 몰라합니다.


손주들이 안 와 아쉬웠을 텐데도

바쁘니까 이제는 오지 말랍니다.

헤어지는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떨어지는 발걸음이 편치 않습니다.


손주들 사진과 동영상을 보면서

소일하는가 봅니다.

뜬금없이 아내의 카톡으로

영상을 하나 보내주셨습니다.

범띠 손주인 제 아들 생각이 난다면서요.


호랑이가 동물원에서 어슬렁 거리며

관객들 쪽으로 걸어오는 장면입니다.

뭐 그런가 보다 했는데

영상 중간 조그만 소리가 들렸습니다.

뭔가 해서 다시 돌려봤습니다.


"암만 봐야 먹을 게 뭐 있네"


장모님의 목소리였습니다.


번역(?) 해보면

"아무리 봐야 먹을 건 없다"는 뜻입니다.


암만은 '아무리'라는 북한말이었습니다.

 암만은 요르단의 수도이기도

'물론', '그렇지'라는

충청도 사투리이기도 합니다.


순간 빵 터졌습니다.

생각 없이 던졌을 장모님의 한마디에

나와 아내는 그 자리에서 죽게 웃다가

배꼽이 사라졌습니다.


동물원 창살이 중간에 있습니다.

 호랑이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와도

기겁하며 도망갈 필요가 없습니다.

전혀 무섭지 않습니다.

웃으며 툭 던진 장모님의 비아냥(?)에도

호랑이는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호랑이가 불쌍했습니다.

맹수의 야성이 맥을 못 춥니다.

호랑이뿐인가요. 사자, 코끼리, 코뿔소...

사람보다 덩치 큰 동물들이

죄다 동물원에 갇혀 있습니다.

몸집만 크다고 강한 건 아닌가 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호랑이 보다 나을까요?

인간이 동물들보다 강할까요?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하는 걸까요?


그건 모르겠습니다.



암만 봐야 먹을 게 뭐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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