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위에 장모님
"암만 봐야 먹을 게 뭐 있네"
< 호랑이 위에 장모님 >
눈 빛 살기 가득 호랑이
어슬렁거리며 다가오고
왼쪽 오른쪽 두리번두리번
말이라도 잡아먹을 기세네
아이쿠 턱 밑까지 오려는 찰나
여유 있는 장모님의 한마디
"암만 봐야 먹을 게 뭐 있네"
장모님은 곧 일흔입니다.
전보다 많이 약해졌습니다.
편찮으신 곳도 많습니다.
지지난 주 수술을 했습니다.
무릎에 구멍을 몇 곳 뚫었습니다.
발바닥 티눈도 도려냈습니다.
한달 가까이 병실 신세를 져야한답니다.
지난 주말, 수술 열 흘만에
병문안을 갔습니다.
두 발짝 떨어진 저와 달리
아내는 엄마 손 꼭 잡고
어쩔 줄 몰라합니다.
손주들이 안 와 아쉬웠을 텐데도
바쁘니까 이제는 오지 말랍니다.
헤어지는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떨어지는 발걸음이 편치 않습니다.
손주들 사진과 동영상을 보면서
소일하는가 봅니다.
뜬금없이 아내의 카톡으로
영상을 하나 보내주셨습니다.
범띠 손주인 제 아들 생각이 난다면서요.
호랑이가 동물원에서 어슬렁 거리며
관객들 쪽으로 걸어오는 장면입니다.
뭐 그런가 보다 했는데
영상 중간 조그만 소리가 들렸습니다.
뭔가 해서 다시 돌려봤습니다.
"암만 봐야 먹을 게 뭐 있네"
장모님의 목소리였습니다.
번역(?) 해보면
"아무리 봐야 먹을 건 없다"는 뜻입니다.
암만은 '아무리'라는 북한말이었습니다.
암만은 요르단의 수도이기도
'물론', '그렇지'라는
충청도 사투리이기도 합니다.
순간 빵 터졌습니다.
생각 없이 던졌을 장모님의 한마디에
나와 아내는 그 자리에서 죽게 웃다가
배꼽이 사라졌습니다.
동물원 창살이 중간에 있습니다.
호랑이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와도
기겁하며 도망갈 필요가 없습니다.
전혀 무섭지 않습니다.
웃으며 툭 던진 장모님의 비아냥(?)에도
호랑이는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호랑이가 불쌍했습니다.
맹수의 야성이 맥을 못 춥니다.
호랑이뿐인가요. 사자, 코끼리, 코뿔소...
사람보다 덩치 큰 동물들이
죄다 동물원에 갇혀 있습니다.
몸집만 크다고 강한 건 아닌가 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호랑이 보다 나을까요?
인간이 동물들보다 강할까요?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하는 걸까요?
그건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