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깜이집사 Jul 12. 2023

기나긴 토요일

마! 이게 아빠 노릇이다


<기나긴 토요일>


놀러가잔 딸내미말 귓등으로 응했다가

워터파크 가쟀다며 우리아빠 최고라네


반백살을 앞에두고 무슨놈의 물놀이장

아이들이 기뻐하니 꾹꾹참고 따라가네


매표소앞 백발노인 나에게는 용기되고

긴머리결 찰랑이는 아가씨들 두근두근


물 반 사람 반 해수욕장 울고가고

떠들썩한 재래시장 명함조차 못내미네

 

손이라도 놓치면은 이산가족 불 보듯 해

아들 딸 어디 있나 아빠 마음 조마조마


하늘 공중 물미끄럼 짜릿하고 신이 나서

두 번 타고 세 번 타도 그만두기 어렵다네


지친 몸을 뒤로 하고 운전대를 잡자마자

마라탕을 사달라며 아들  시끌시끌


평시엔 꼼지락 지지리도 안 자더니

오늘은 집에 오자 너도나도 꿈나라


쏟아지는 졸음 참고 컴퓨터를 켜놓고선

써놓았던 글 바루며 토욜밤을 지세우네





"엄마, 찜질방 가면 안 돼?"


"여기가 찜질방인데 가긴 어딜 가!"


그냥 대꾸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딸이 툭 던진 말에 또 낚이고 말았습니다.


7월 들어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인데

딸은 느닷없이 찜질방에 가잡니다.

얼굴 벌건 채 주방에서 불요리를 하는

엄마 옆에 와서 말이죠.

살짝 짜증이 난 아내는 바로 쏘아댑니다.

여기가 찜질방인데 가긴 어딜 가나며.


그냥 물러설 딸이 아닙니다.

본색이 나옵니다.

그럼 워터파크를 가잡니다.

남매가 유아였을 때 한번 갔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로는 해수욕장과 계곡을 다녔습니다.


저는 거실에서 귀를 쫑긋하고 엿듣습니다.

불똥이 제게 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인 채.

잠시 왈가왈부하더니

아빠에게 물어보라며 아내는 바통을 넘깁니다.

아니나 다를까 딸이 제게 졸졸 옵니다.

가자며 가자며 졸라대기 시작합니다.

옛날에 간 건 기억도 안 난다며 가야겠다고 합니다.

쓰럽긴 하지만 주말에 할 일이 태산입니다.

솔직히 밖으로 쏘다닐 마음이 없습니다.

우물쭈물하니까 공격은 세집니다.

자식이기는 부모 없습니다.


그 주 토요일에 가기로 했습니다.

어딜 가자면 나서는 일이 없는

중학생 아들까지 덩달아 얼씨구나 합니다.

가만히 있는데 떡고물이 떡 하고 떨어진 셈입니다.

받아먹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부랴부랴 온라인으로

할인 티켓 네 장을 삽니다.

요일 밤부터 짐을 싸놓기 시작합니다.

챙기는 건 결국 엄마 몫인데도

미리미리 싸놔야 한다며 딸은 신났습니다.


쉰 앞둔 내가 무슨 물놀이장이냐며

아내에게 투덜거립니다.

오늘만은 아이에게 맞추자며 신신당부합니다.

종일권을 끊어 오전 열 시 조금 넘어 도착했는데

벌써부터 초만원입니다.

태권도장, 유치원에서 단체로 온 아이들부터

남녀노소 가리지 않습니다.

매표소 앞에 백발 할머니가 보입니다.

일이십 대 아가씨들의 복장이 남다릅니다.

노는 건 나이 문제가 아닌가 봅니다.


물이 아니라 사람들에 밀려 둥둥 떠다닙니다.

앉을 자리도 겨우 잡고, 점심도 간신히 먹었습니다.

난이도가 여러 개인 물미끄럼이 재밌다며

내려오자마자 또 올라갑니다.

저는 한 번 타고 지쳤습니다.

내려오는 쪽 구석에 앉아 쉽니다.

오후 세 시정도면 끝날 줄 알았는데

폐장 시간인 오후 다섯 시 반까지 놀았습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차에 올라 시동을 겁니다.

집에 밥도 없고 어머니에게 부탁하기도 뭐 하던 찰나

식당에서 마라탕을 먹자며 조르기 시작합니다.

피곤하지만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습니다.


먹고 집에 들어가니 밤  시가 다 되어갑니다.

이는 닦고 자랬는데 딸은 소파 위에 나가떨어졌고

아내와 아들은 자기 방으로 부리나케 들어갑니다.


컴퓨터를 켭니다.

오늘 작업을 못하면

다음 주 글 발행이 힘듭니다.

내일은 어머니와

텃밭에 감자를 캐러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눈을 비벼가며 글을 다듬습니다.


그렇게 토요일 밤은 깊어 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호랑이 위에 장모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