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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이집사 Jul 12. 2023

손주 사랑

외할머니든 친할머니든


<손주 사랑>


마트 옆문을 나오니 유모차가 앞에 옵니다

꼭지 문 눈 초롱한 아이가 앉아있습니다


할머닌 차 밀고 할아버진 뒤 따릅니다

머리 쇤 할머니 외할머닐지 친할머닐지


닮았나 안 닮았나 내 눈은 위아래 바쁩니다

엄마 닮으면 외할머니 아빠 닮으면 친할머니


엄마 아빠 어떻게 생겼을지 알 길 없지만

외할머니 친할머니 사랑만은 똑같겠지요





밥 동료들끼리 일정이 틀어지면

점심을 혼자 먹습니다.

엎어지면 코 닿는 대형마트로 달려갑니다.

1층 푸드 코트에서 밥을 얼른 때우고

중고책 매장이 있는 4층으로 올라갑니다.


국가전문자격증 공부 때문에 책 한 권 못 본 작년에

오히려 책을 징그럽게 사들였습니다.

못하면 더 하고 싶은 '분노 소비'랄까요.

올해는 꾹꾹 참습니다.

꼭 사야겠단 책만 고릅니다.


사십여분 이 책 저 책 보면서 돌다가

류시화 시인의 시선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에 꽂힙니다.

제목은 수도 없이 듣었지만

몇몇 구절만 접했던 바로 그 시집!

시인이 낸 총 세 권의 시집에서

반응이 좋았던 아흔여덟 편을 추렸습니다.


룰루랄라 시집을 옆구리에 끼고

대형마트 옆문을 나섭니다.

막 왼쪽을 도니 십여 미터 앞에

유모차를 끌고 오는 노인 두 분이 보입니다.

할머니가 유모차를 밀고

할아버지는 검은색 비닐봉지를 들고 뒤따릅니다.


얼굴이 주먹만 한 뽀얀 남자 아기입니다.

머루알 같은 검은 눈이 들어옵니다.

돌이 막 지난 듯 꼭지를 입에 물었습니다.


눈이 바빠집니다.

할머니와 손주, 손주와 할머니를

빛의 속도로 스캔합니다.


버릇입니다.

길 가다 마주치는 어른과 아이를 보면

닮았는지부터 살펴봅니다.

재밌기 때문입니다.

단박에 엄마나 아빠를 닮은 걸 알면

속으로 웃습니다.

실제로도 둘 중 하난 닮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가 과학의 힘(?)을 빌리지 않았나

짓궂은 상상을 합니다.


 주인과 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기하게도 키우는 개와 주인이

닮은 경우가 많습니다.

치와와든 레트리버든

개 주인의 몸집, 몸매, 생김새와

비슷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개가 주인을 고르진 않았을 테고

알게 모르게 자신을 닮은 개를 택하는 걸까요?


이번엔 다릅니다.

잠시 지나친 짧은 순간이어서 그랬는지

아이가 누굴 닮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할아버지는 아예 눈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아마 아이가 너무 어려서 그랬나 싶습니다.

아니면 엄마와 아빠를 한번 더 거쳐서 유전자가

내려갔기에 닮은꼴이 무디어졌을지도요.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친할머니든 외할머니든

누굴 닮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할머니들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손주입니다.

자식은 미워도 손주는 예쁘다고 했으니까요.


아이의 엄마 아빠가 살짝 부럽습니다.

낮시간에 아이를 돌봐줄 조부모가 계신다는 게.

할머니, 할아버지, 흰 얼굴 돌쟁이

모두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커버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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