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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이집사 Jun 30. 2023

브런치스토리

사랑방의 포근함


<브런치스토리>


마당에서 놀던 내가 섬돌 딛고 올라가니

이불 베개 가지런히 자개 위에 접혀있네


문방사우 옆에 있고 향초 냄새 가득한데

어디에서 무얼 할지 누구 하나 말을 않고


미닫이문 여는 소리 옆 방에서 들리는데

딸깍잘깍 소리 날 뿐 금세 적막 휩싸이네


벼루에 물을 붓고 개털붓 만지작 만지막

벗 없으니 글벗 삼아 한글자씩 써내리





자의 반 타의 반 브런치로 왔습니다.

블로그에서 에세이를 써오던 제게

친한 이웃이 브런치를 권했습니다.

"에이! 말도 안 돼"라며 말았습니다.

플랫폼 바뀌는 게 큰 일인 양 여겼습니다.


몇 달 지나 다시 그럽니다.

이번엔 다른 이웃까지요.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에세이는 브런치에서 편하단 걸 께달았기에

옮겨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이웃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유익한 포스팅을 꾸준히 보며

 영감도 받고 글감도 찾았습니다.

부실한 제 글을 좋게 봐주고

격려도 해주었습니다.


브런치에 들어와 보니 느낌이 좋습니다

휑하지만 조용하면서 깔끔합니다.

새로 지은 건물 8층 구석 한 칸을

글방으로 임차한 주인장 같습니다.

여행용 가방에 옷가지만 허겁지겁 챙겨

글방에 온 기분입니다.

책걸상과 집기 몇 개만 조촐합니다.


가만히 글방 벽에 귀를 대봅니다.

드르륵드르륵 드릴 소리가 나고

손님들인지 시끌벅적하기도 합니다.

간판 다는 소리, 주인장의 고함소리도 들리다가

금세 조용해집니다.


들어온 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납니다.

일 안 했다고 건물주가 임차료를 깎아 주지도 않습니다.

뭐라도 해야 합니다.


화선지를 펴고 서진을 올립니다.

벼루에 물을 따르고 먹을 갑니다.

대나무 통에 몇 자루 꽂혀 있는

붓을 만지작 거리다가

손에 잘 잡히는 걸 하나 뽑아봅니다.

쓰윽 쓰윽~ 개 털이라 질감이 시원치 않습니다.

그렇다고 도구를 탓할 여유도 없습니다.

뭐라도 써야 합니다. 내 이름 석자라도요.

개 털 삼 년 묻어 놔야 여우 털 안 되니까

지금 있는 걸로 뭐라도 해봐야 합니다.


남이 보든 말든 부지런히 연습해야 합니다.

문 밖에 인기척이 있으면 슬쩍 나가보고

다시 돌아와 써야 합니다.

하나 둘 채워가면서

글방 환경을 정비해야 합니다.

글방답게 풍성한 글도 갖춰 놓아야 합니다.

옆 방 주인과 이야기를 나눌 짬은 아직입니다.

내 콧물이 석자라 먼저 닦아야 합니다.


그래서 씁니다.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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