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밤 차를 몰고 마트로 장을 보러 가던 중이었다. 나와 '90년대 노래 이야기를 하던 아내가 뭔 생각이 스쳤는지 갑자기 <버스 안에서>를 흥얼거린다. 그땐 가수가 누구인지 안 떠올랐는데 알고 보니 그룹 자자이다. 그런데 아내의 노래를 듣은 딸이 노랫말이 틀렸다며 교정(?) 해준다. 도대체 뭔 상황인가? 당황스러웠다.
'90년대가 어떤 시대였나.
'94년 남다른 춤사위와 비트로 <난 알아요>를 부르며 나타난 서태지와 아이들이 가요계를 접수했다. 그러더니 HOT, 젝스키스, 핑클, SES가 데뷔하면서 세기말까지 인기를 휩쓸었다. 아이돌, 걸그룹이라는 말이 처음 나왔고 어린 학생 가수들이 군무를 추어댔으며 팬덤이 생겨난 때도 바로 '90년대였다. COOL, 룰라, 클론이나 DJ DOC, 코요테 등도 세기 말과 세기 초에 걸쳐 인기만큼은 막상막하였다.
방송국에 팬레터를 보내거나 가수의 콘서트에 가서 야광봉을 흔든 적은 없다. 대중문화에 빠져 덕질도 안 했으니 당시의 내 지식과 느낌은 이 정도이다. 하지만 가장 에너제틱하고 파릇파릇했던 일이십 대를 보낸 시기가 바로 세기 말과 세기 초였다. 발라드를 좋아한 나였지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신나는 음악은 피하지 못했다.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에 나온 귀에 짝짝 붙는 댄스 음악을 들으면 나는 여전히 흥겹다.
내가 운동하는 킥복싱 도장에서도 '90년대 대중가요처럼 비트가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쇼팽의 피아노협주곡 제1번이나 하이든 교향곡 제45번을 틀어놓는다면 1,000개 할 줄넘기를 100개도 못할 게 뻔하다.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순식간에 힘을 쏟아내야 하는 데 느릿느릿 새소리 물소리가 들려서는 안 될 노릇이다. 와인 가게에선 트롯보단 프랑스 샹송이 어울린다. 미술관에서는 국악보다 잔잔한 뉴에이지 음악이 제격이다. 최근 유행하는 빠른 리듬의 동서양 음악과 함께 '90년대 우리 댄스 음악이 체육관에서 빠지지 않는 이유이다.
나와 아내는 '90년대 댄스 음악을 듣고 자란 세대이다. 그런데 딸이 노래 제목뿐만 아니라 가사까지 아는 게 이해가 안 갔다. "그녈 보곤 해 아니야?" 하는 딸내미 말을 듣고 순간 소름이 돋았다.
내 뒤에 앉은 여자애가 진짜 내 딸 맞는가? 누구냐 넌?
<버스 안에서>를 학교에서 친구들이 불렀다고 하는데, 가사를 정확하게 외울 정도면 한두 번 들은 게 아닌 것 같았다. 수업시간에 듣거나 선생님들이 불러주지도 않았다면....
혼란은 오래가지 않았다. 답이 머릿속에 스쳤다. 아이들이 집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를 주워들은 게 아닐까 싶었다. 초등학교 5학년 딸을 키우는 부모라면 70년대, 늦어도 80년대 초반에 태어난 X세대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90년대 중반 전후로 대학에 입학했고 2000년대 초중반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바로 그 세대. 베이비붐 세대와 MZ 세대의 중간에 끼어 위아래의 문화를 직간접으로 겪는 세대, 조직에서도 이리저리 차이면서 자리를 쉽게 못 잡고 눈물 콧물 흘리며 존버하는 세대, 가정에서는 엄마 아빠로 조직에서는 관리자급으로 대한민국의 경제 중추인 세대, 적지 않은 수식어가 따르는 세대가 바로 X세대이다.
그러면 어떻게 열 살 막 넘은 애들이 이 노래를 들은 걸까?
유튜브 같은 SNS 플랫폼인 게 분명하다. 검색어만 치면 손 안에서 세상 모든 현상과 사물, 사람들을 접하는 영상 정보의 바다, 바로 유튜브이다. 엄마 아빠가 노래를 틀어놓고 신나게 요리를 하거나 집 청소를 했겠지. 아니면 스트레스를 날리려고 크게 틀어놓았던가.
유튜브 등으로 영상이나 노래를 아무 때나 보고 듣는 지금과 달리, '90년대는 이른바 길보드 차트 시절이었다. 매체라곤 사실상 TV와 라디오가 전부여서 노래가 길바닥에서 많이 들릴수록 인기가 많았다. 장사꾼들도 이를 놓치지 않았다. 불법 복제한 1,000원짜리 인기 음악 테이프를 리어카에 싣고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팔았다. 나도 주요 고객이었다. 영화음악, 발라드나 인기가요 모음집, 핑클이나 SES 테이프를 사서 들었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FM 라디오를 켰다.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이나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가끔씩 들으며 DJ가 "이 번에 들려드릴 곡은...."이라고 하면 허리를 곧추세웠다. 몇 시 몇 분에 나의 최애 음악이 나올지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원하던 노래를 소개하는 순간 머리털이 쭈뼛 섰다. 얼씨구나! 공테이프를 꽂아 놓은 라디오의 REC 버튼에 손가락을 올린 채 숨죽였다. 노래가 나오는 순간 REC를 눌었다. 테이프가 잘 돌아가는지 한번 봐주고 흐르는 노래를 들었다. 노래가 끝나갈 때쯤 STOP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리고 음이 사라지면 부리나케 버튼을 눌렀다. 내가 듣고 싶은 노래가 하나 '따진' 순간이었다. <홀로 된다는 것> 변진섭, <사랑일 뿐야> 김민우, <미소 속에 비친 그대> 신승훈 등의 발라드 음악이 그렇게 공테이프를 채웠다.
그 후 이십여 년이 흘렀다. 음성과 텍스트, 이미지의 시대를 지나 영상의 세상이 활짝 폈다.
온라인 SNS의 힘을 제대로 느낀 건 남매가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때였다. 아들과 딸은 하나같이 "~사랑을 했다 우리가 만나 지우지 못할 추억이 됐다~"를 집에서 불렀다. 사랑이 뭔지도 모를 녀석들이어서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으나 그럴 만도 했다. 그 당시 온오프라인에서 굉장히 유행한 노래여서 세대를 막론하고 귀 달린 사람이라면 누구가 들었을 테니까. 초연결 시대에 문화도 사람의 유전자처럼 밑으로 전파되는 현상으로 여겼다.
실제로 인터넷과 영상 혁명 덕분에 연결 사회가 가속화되고 있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들었듯, 과거는 현재가 되고 현재는 미래가 되고 있다. 과거나 지금이나 텍스트의 힘은 여전하다. 그런데 텍스트에 날개를 달아준 건 바로 영상 매체이다. 기록이 되면 기억이 되고, 기억이 되면 언젠가는 끄집어내진다. 아니, '언젠가는'이 아니라 마음먹은 '아무 때나'가 맞는 말이다. 텍스트는 발이 없지만 인터넷과 영상 매체를 거치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다. 검색과 공유로 수십 수백 년 전의 기록이 어느 때나 내 손안에 들어온다. 입소문을 타고 수정돼가면서 텍스트가 전혀 다른 느낌을 풍기기도 한다. 그 시대의 유행이나 문젯거리와 묘하게 뒤섞여 과거와 현재를 넘어서는 새로운 문화가 생겨난다.
누구나 손에 스마트폰이라는 '작은 컴퓨터'를 가지고 다니며 원하는 정보를 찾아보고 공유하는 시대이다. 널린 정보를 어떻게 섞어 재구성할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확실한 건 더 이상 정보나 지식의 양이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박사나 박사 할아버지라도 동그란 CD-ROME이나 8G 이동식 디스크에 들어가는 정보량의 1/10도 즉석에서 쏟아내지 못한다. 이세돌도 알파고에 완패했다. 다섯 판 중 한 판을 이겨서 인간에게 희망을 주었지만 그건 2016년의 일이다. 지금은 세상 어느 누구도 알파고와 바둑을 두면 이기지 못한다. 인간 두뇌 게임의 최고봉인 바둑에서 컴퓨터에 자리를 내준 뒤 4차 산업혁명, 메타버스, AI, 챗 GPT라는 말이 세상을 휩쓸고 있다.
지식의 축척이 아닌 지식의 생성, 전파, 공유의 시대이다. 지식과 정보가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진다. 사라진 바람이 또 언제 어떻게 불어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국내외 SNS 플랫폼이 자웅을 겨룬다. 소비자에게 마음껏 쓰고 찍고 올리고 퍼뜨리라며 난리다. 점점가만히 있기 어려운 때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텍스트를 만들어보자. 되도록이면 양질의 텍스트를. 스스로 만들어낸 텍스트는 영원히 남는다. 대중의 집단의식이나 챗GPT가 범접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사람 냄새 가득한 의미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보자.
<버스 안에서>를 부른 그룹 자자는 대중들에 잊힌 듯했지만 자고 있지 않았다. 인터넷과 SNS 덕분에 화려하게 부활하였다. 열한 살 먹은 내 딸도 따라 부르는 노래가 되었으니 말이다. 어디 <버스 안에서> 뿐이랴. 김연자의 <아모르파티>, 나훈아의 <테스형>에도 1020세대가 열광했다. 흥겨운 가락, 쉬우면서 가슴 때리는 노랫말도 한몫했겠지만 무엇보다 SNS를 타고 무섭게 퍼져나간 힘이 컸다.
여전히 뻘 속에 묻힌 검은 진주가 많다. 진주는 언제 어떻게 발견될지 모른다. 내가 만든 텍스트가 공개하자마자 안드로메다로 갈지 언제 다시 끄집어내어져서 역주행을 할지는 모른다. 어쨌거나 아무것도 안 하기보다는 뭔가를 꾸준히 쌓아가야 캐내질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온라인 플랫폼은 널려있다. 자신에게 맞는 멍석을 찾아서 깔고 질펀하게 한번 놀아보자. 몸과 마음이 피곤할 순 있겠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당장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기죽지 말자.
계속 잠자고 있으면 또 어떠랴. 혹시 아는가, 몇 달 몇 년 후 온라인 플랫폼에 있는 당신의 글을 누군가가 퍼 나르다가 발동이 걸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앞날은 모르고 정해진 건 없는 게 인생이다. 인생은 본래 그렇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