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좀 앓았다. '산 송장'이 따로 없었다. 온몸의 이상 신호가 눈에 몰렸는지 눈이 떠지지 않았다. 눈을 감은 채 하루 반을 누워있었다. 우중충한 비 날씨도 한 몫했다. 마음과 바깥이 온통 새카맣다. 깨어나지 못하나 싶더니 다시 살아났다.
이 년 반 넘게 근무한 지사를 떠나 본사로 자리를 옮겼다. 새로운 환경, 인물들과 긴장 상태로 일주일을 보내서 그런지 생체리듬이 깨진 거였다. 저녁에 좀 쉬면 되었는데 곧 죽어도 킥복싱을 해야 한다며 이틀 연속 도장에 가서 미친 듯이 몸을 풀었다. 거기에 브런치, 블로그 댓글을 쓰고 답방을 가다 보니 잠을 늦춘 것도 화근이었다. 참 어리석기 짝이 없었다.
지난 3월 허리가 아파서 킥복싱 도장에 두 번 못 갔을 때 나는 화가 났다. 공짜든 돈을 주든 뭘 배운다면 결석은 안 된다는 게 나의 신념이기 때문이었다.
난 초중고, 대학, 대학원까지 이십여 년 가까이 개근했다. 정말 한 번도 결석을 하지 않았다.
자랑할 일까지는 아니지만, 때문에 '부심'이 강하다. 초중고 십이 년 개근은 썩 내세울 만한 일은 못 되겠다. 하지만 대학원 과정으로 가면 말이 달라진다. 개근했다고 손들 사람은 적어진다. 중국에서 보낸 석사 교환학생 일 년도 포함된다. 대학원 과정에서는 취업이나 자격증 준비, 주경야독 등으로 자의 반 타의 반 수업에 빠지는 일이 적지 않다. 석사 때는 예비군 훈련으로, 박사 때는 회사 워크숍 때문에 연구 방법론 시간에 이십 분 지각한 게 전부다.
운이 좋았다.
직장과 학업을 병행한 박사과정 때는 더욱 그랬다. 이런저런 행사는 수업이 있는 날과 시간을 비켜갔다. 착하고 능력 있는 부사수도 나와 호흡이 잘 맞았다. 공부한답시고 업무에 소홀하다는 말을 듣기 싫어 수업에 가는 날은 아침 일곱 시 전에 출근했다.
무엇보다 집안에도 큰일이 닥치지 않아 일과 학업에만 오롯이 집중했다. 집에 있을 때마다 무릎 위에 올라타려는 두 살 배기 딸을 떨쳐버리는 게 속상할 따름이었다. 덜 놀고 덜 쉬고 덜 잤다. 기진맥진했지만 마지막 제도권 공부라고 여겼다. 서른 끝자락을 그렇게 불태웠다.
그깟 수업 빠지는 게 뭐 대수냐고 할지 모르겠다.맞다.
하지만 신부와 수녀, 스님의 한결같은 복장과 독신 수행의 자세처럼, 묵상으로 시작하는 새벽 기상러들의 루틴 하면서도 열정적인 삶의 모습처럼, 결석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나에겐 하나의 신념이었다.
학부 4학년 사회과학 방법론 첫 시간, 교수님은 수업에 절대 빠지지 말라고 몇 번을 강조했다. 방법론이라는 강의 특성도 있었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면서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결혼식 올린 날, 오후에 수업하고 신혼여행 떠났어"
언행일치가 이런 말이지 싶다. 자신의 말대로 실천한 사람이 그래라 하는데 선뜻 거부하기가 쉬울까.
그런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했던가.
"여러분이 수업에 빠지는 이유는 한 가지예요. 그게 뭔지 아세요?
본인 사망!
십 년이 다 돼가는데, 그 당시 네 글자가 어찌나 강렬했는지 아직도 생생하다. 김현식 회계사의 회계원리 온라인 강의를 듣었는데, 이 분도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출석을 강조했다. 열이 펄펄 나거나 다리가 부러졌더라도 강의실에 몸을 끌고 와서 듣고 가라고. 그런 의지가 있어야 뭐라도 한다면서.
김현식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는 마냥 기분이 좋았다. 손수건을 가슴에 옷핀으로 걸고 입학한 여덟 살 때부터 최상위 제도권 교육을 마칠 때까지 '프로 개근러' 타이틀을 일궈낸 나의 집요함이 비정상은 아니었구나, 하고 다독였다. 학생이라면 당연히 그래야지, 하면서 스스로 뿌듯해했다.
세월은 더 흘렀다. 지금 나는 '제도권 학생'도 아니고, 여전히 깨달을 것도 많다. 하지만, "내 사전에 결석은 없다"라는 말을 할 자신이 없다. 몸이 따라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의학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평균 수명도 늘어난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인간이 줄곧 생생할 순 없다.
"생로병사라는 네 글자 중에서 40대에 해당하는 글자는 로(老)라 할 수 있다. 40대에 노화가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40대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병(病)이 찾아오는 시기가 50대가 될 수도 있고, 90대가 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40대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사(死)가 찾아오는 시기도 달라질 것이다. 생(生)은 나의 의지가 아니다. 하지만 노병사(老病死)는 나의 의지에 따라 바뀔 수 있다. 그 변화가 시작되는 시기가 바로 지금 40대인 것이다." <마흔에 읽는 동의보감> 중에서
작년 8월 코로나 확진으로 일주일 병가를 낸 걸 제외하면, 회사를 다니며 휴직은커녕 병가조차 낸 적이 없었다. 그러던 내가 지난 상반기에 허리와 어깨에 잔통이 계속되어 일주일을 다시 쉬었다. 그리고 한두 시간 병가 외출로 한의원과 정형외과, 이비인후과 신세를 졌다. 결석하지않겠다는 신념은 서서히 사라져 갔다. 개근과 출석에 대한 집착을 버리니 마음이 편해졌다.
네 명 모두 MBTI 성향이 IN*J였다. 이런 경우가 있을까 싶다. 조용하면서도 적의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는 스텔스기처럼 일을 척척해내는 일당백의 여자 동료이자 후배들이었다.
아프면 참지 않고 병원부터 가겠다. 회사에 병가를 내고, 온오프라인 강의를 건너뛰더라도 괴로워하지 않겠다. 이젠 그럴 만한 나이가 되었고,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합리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