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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하늘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

by 깜이집사

하반기 인사 발령으로 본사로 다시 왔다. 승진이 한참 뒤진 패잔병을 두 손 들고 환영하는 곳은 없다. 마음을 고쳐먹고 헤쳐나가는 건 내 몫이다. 그래도 나를 위로한 건 가장 아끼는 동료 후배와의 만남이다.


후배는 나와 나이 차가 열 살이 넘지만 배울 점이 많다. 코로나 시국이 시작되기 전, 본사 같은 부(部)에서 일했다. 이후 내가 지사로 오는 바람에 헤어졌고 언제 또 만나나 싶었는데, 2년 반 만에 재회했다. 후배가 지사에서 6개월 파견 근무를 했었으니, 정확히는 2년 만이다.


물론 그 사이 만남은 있었다. 본사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사내 메신저로 대화도 가끔씩 나누었다. 그러다가 이렇게 다시 얼굴을 보게 되다니. 이십 년 가까이 된 입사 동기들과 복도에서 마주치면 목례조차 불편할 때가 많다. 인연의 깊이는 단지 시간이 만들어 주진 못하는 걸까? 짧은 만남이라도 마음이 통하면 백 잔의 술도 기울인다는 말이 그래서 와닿는다.


후배는 두 돌 넘은 딸을 하나 두었다. 내가 봐도 예쁜 데 얼마나 죽고 못살까. 185센티 미터 장신인 아빠를 닮아 모델이 될는지, 남다른 외모의 엄마를 닮아 연예인이 될는지 기대 가득한 딸이다. 딸바보 아빠들이어서 그런지 얼씨구나 죽이 잘 맞는다. 후배의 딸 이름은 '하루'이다. 순우리말인 '오늘'과 같은 뜻이다.


예전에 후배가 지사에 파견 왔을 때는 딸이 막 태어나기 전이었다. 자연스럽게 둘이 점심 먹고 산책을 하며 아기 이름 짓기를 했었다. '오늘', '한나' 등 여러 후보군이 있었으나, 후배 부부네가 '하루'로 지었다.


하루!


발음이나 의미로 얼마나 산뜻하고 시원하며 두루 통하는 이름인가.


순우리말 이름이 늘어나는 현 추세를 거스르지 않는다. 총 4개의 자모(字母)이지만 해석의 여지가 2배, 4배로 불어나는 예쁜 이름이다. 부부가 독실한 크리스천이어서 하느님이 내려주신 오늘 하루를 소중하게 보내자는 뜻이 가장 컸다고 한다.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하루가 뿜어내는 매력은 적지 않다.


먼저, 영어 발음이 편리하다. 하루의 알파벳 표기는 HARU다. 사실, 우리 이름에 받침이 있으면, 더욱이 두 글자 모두에 있으면 외국인들은 발음하기가 어렵다. 내 이름은 "쎵쥔"이 아닌데도 외국인들은 '쎵쥔'으로 불렀다. '쌩쥔', '생균'도 들어봤다. 영문으로 표기된 내 이름을 한참 쳐다보면서 한결같이 어설프게 발음하였다. 부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곤욕인 셈이다.


우리 문화에서는 상대방 이름을 몰라도 '선생님', '아줌마', '학생', '아저씨', '삼촌', '이모' 등 편리한 예비 명칭이 즐비하다. 적당히 친한 사이도 이름을 모른 채 몇 년씩 지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상대방이 이름을 묻기 전에는 여간해서 먼저 자신의 이름을 꺼내지 않는다. 지금은 많이 누그러졌지만 개인보다 집단을 중시하는 문화가 강하고, 자신을 앞세우지 않으려는 동양 문화 탓이다.


서양은 다르다.


집요하게 자신을 내세운다. 특히나 첫 만남이나 소개 시 예외 없이 먼저 이름을 주고받는 서양문화에서 이름은 목숨과 같다. 1:1 만남은 말할 것도 없고, 떼로 모인 장소에서도 돌아가며 소개를 하거나 소개를 받으며 이름이 돌고 돈다. 이름을 외워서 불러주는 일도 사실상 의무여서 여간 고역이 아니다.


약혼식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이름을 주고받았는데, 이름을 까먹어 할머니에게 이름을 다시 묻는 장면. 우리나라에서는 "할머니"라고 하면 끝났을 텐데. 출처: 미드 <모던 패밀리>


좀 거칠게 비유하자면,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인식이 동양이라면, 서양에서는 "우는 아이 젖 한 번 더 준다"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래서 외국과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일이나 공부를 한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Sam, John, Peter, Sunny, Mike, Scarlett 등 또 하나의 이름을 짓는다.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서다.


영어만큼 중국어로도 말맛과 글맛이 상쾌하다.


하루의 한자 조합은 여러 개 가능하다. 그중 압권은 하루(下婁)로, '별이 내린다'라는 뜻이다. 새까만 밤하늘 상공에서 별빛이 쏟아지는 광경을 본 적이 있는가? 록 밴드 안녕바다가 부른 <별빛이 내린다>라는 노래를 들어보면 된다. 귀로 들었을 뿐인데, 눈을 감으면 반짝거리는 별들이 샤라랄라라랄라 하면서 하늘에서 쏟아지는 신비한 장면이 펼쳐진다.


출처: 게티이미지 코리아


하루에 대한 한자를 억지로 끼워 맞출 필요도 없다. 중국인들을 하루라는 이름을 '루루'라고 부를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중국인들은 성과 이름을 합쳐 李丽, 于晨, 高琳, 张欣 과같이 두 글자인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는 이름을 연속해서 두 번 부른다. 丽丽, 晨晨, 琳琳, 欣欣처럼 말이다. 이름이 우리처럼 두 글자여도 끝 글자를 두 번 이어서 明明, 彤彤, 冰冰처럼 친근하게 부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따라서 하루는 루루가 된다. 루루라고 불리는 여자아이 이름, 정말 깜찍하다. 영어를 좀 하는 중국인과 친해지면 하이! 루! HAI RU 라 불리기도 하겠다.


같은 글자를 두 번 부르는 경우는 어린 아이나 젊은 아가씨에 한해서이다. 그럼에도 화면에서처럼 여자 친구는 이름이 高霖인 남자 친구를 霖霖이라 부른다. 출처: 중드 <최친애적니>


일본어로도 뜻밖의 수확이다. 하루はる는 바로 '봄'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전성기, 한창때라는 뜻도 있다. 기막히게도 하루가 태어난 날은 입춘 2월 3일이 2주 지난, 절기 상 봄이었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힘참이 느껴진다. 동사로도 하루는 1차적 의미가 '뻗다', '뻗어 나다', '활짝 펴다'이다. 참 이렇게 저렇게 끼워 맞춰도 절묘하다.


인간은 합리적이기보다는 합리화하는 동물이다.


이미 결론이 나버린 것들에 대해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의미를 매긴다. 자신의 소유물에도 평균 이상의 가치를 부여한다. 고통이나 불편함을 의도적으로 피하면서 스스로 만족하고픈 본성 때문이다. 때문에 이름이 '오늘'이었어도, 또는 '한나'였어도, 여기에 맞는 썰을 나는 한가득 풀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나는 하루가 주는 깊은 맛이 좋다. 그냥 특별한 이유 없이 좋은 그런 느낌이랄까.


나태주 시인은 그의 시 <선물>에서 "나에게 이 세상은 하루하루가 선물입니다"라고 했다. 철학자나 문학가를 들먹이지 않아도 삶이 무엇인지 깨친 사람이라면 오늘 하루의 의미를 안다. 우리는 모두 오늘 하루를 산다. 아니 하루하루 죽어간다는 말이 맞겠다. 누구나 언젠가 죽는 그날을 향해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 표현 그대로 "당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어요"라는 번역이 가장 와닿는다. 출처: 영화 <트와일라이트> OST


인간이 늙지도 않고 영원히 산다면 오늘 하루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늘 못하면 내일 하고 올해 못하면 내년에 하고, 10년 후에 못하면 20년 후에 하고, 50년 후에 못하면 100년 후에 해도 된다면 하루하루가 어떤 느낌일까?


우리 모두는 유한한 존재이다. 인지력도 물리적 생명도 숨이 멎는 순간 끝이 난다. 그래서 오늘이 우리에게 더 소중한지도 모른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가 강연에서 그랬다. '재미와 의미가 만나는 날이 바로 오늘'이라고. 나의 소임에 스스로 흥미를 가지면서, 그 소임이 사회적으로도 의미가 있다면 알찬 하루라는 말이다.


나는 오늘도 괜찮은 하루를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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