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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눈임

나이를 잊은 교류, 망년지교

by 깜이집사

블런치(블로그+브런치)에 글벗인 '온라인 눈임'이 두 분 있다. 내가 먼저 '눈임'이라고 불렀다.


블런치는 개인 플랫폼이지만 글을 써서 올리는 순간 공적인 성격도 띤다. 글의 목적이나 내용, 가치는 여러 사람들에게 평가받기 때문이다.


평가야 어떻든 자신의 글을 내놓을지 말지는 자신이 정한다. 자신을 어디까지 드러낼지도 스스로의 결정에 달렸다. 그런데 글쓴이의 성별이나 '연식'은 몇 개의 글만 읽어보면 안다. 상품 정보 글이나 책 리뷰 또는 자신을 꽁꽁 숨기기로 작정하고 글을 쓰지 않는다면, 알게 모르게 자신이 누구인지 글에 드러난다.


개인의 성향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목적도 각양각색이다. 그럼에도 결이 맞다고 할까, 유난히 와닿는 글이 있다. 관심사나 생각의 무늬가 비슷한 이웃 간에는 자연스레 의미 있는 댓글이 오고 간다. 의도한 바를 정확히 짚어준 이웃의 코멘트에 놀라기도 하고 격려와 응원에 용기를 얻는다. 이른바 '품앗이'로 오간 소통이라 할지라도 글과 생각이 좋으면 마음 한구석에 남는다. 깜박하고 며칠 방문을 못해도 짬이 나면 스스로 찾아가게 된다.


온오프라인에서 수십수백 가지 광고가 시시각각 눈에 들어오고 귀를 때린다. 이 중에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광고가 얼마나 있는가?


온라인 플랫폼은 광고보다 더하면 더했다. 잠깐 눈에 띈 포스팅이 몇 분 사이에 안드로메다로 사라진다. 본방 사수도 쉽지 않은 데 남의 글을 역주행해가며 찾아보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마음이 있으면 숨이 턱 막히는 장문의 글도 늦게라도 찾아본다. 반대로 몇 줄 안 되는 명구 모음이나 메시지도 마음이 안 나면 넘어간다.


이런 상황에서 온라인 눈임과의 소통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친누나가 없는 내겐 일종의 로망이기도 하다. 같은 부에서도 열 살 많은 신입 여직원에게 누님 하면서 말을 걸었다. 왠지 모를 친근함과 포근함, 누님이 주는 느낌이다. 나이가 문제가 되지 않는 온라인 세계, 유독 누님은 다르게 다가온다. 나이를 잊은 교류가 앞으로 쭉 이어 질진 모르겠다. 당장 내일 일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고 했잖은가!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면 된다. 그래서인지 수년을 봐왔어도 마음이 안 통하는 사람과는 말 한마디 섞기를 꺼리지만, 불과 몇 달 전에 알게 된 온라인 눈임과는 기쁘게 글을 나눈다.


온라인에서지만 참으로 오랜만에 나이를 잊고 마음을 나누는 요즘이다. 돌이켜봐도 내가 나이를 떠난 소통을 해본 건 오래전이었다.


© davegoudreau, 출처 Unsplash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코앞에 둔 한여름, 노을 지던 베이징 시내 북해공원 찻집이었다. 한국의 일행들과 비공식 업무협의를 마치고, 북경건축공정학원 마쩬롱 교수는 나에게 고맙다고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忘年之交!


그 당시 그 순간 난 이 말 뜻을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희끗희끗 쇤머리가 덥수룩한 채 정년을 앞둔 노(老) 교수가 30대 초반 새파랗고 혈기 왕성한 나에게 악수를 청하며 한 그 말! 忘年之交(망년지교).


이후 텍스트나 영상에서 이 사자성구를 접할 때마다 그때 그 자리 마 교수의 목소리가 들린다. 망년지교는 말 그대로 나이를 잊은 교제, 사귐이라는 뜻이다. 나이를 떠난 우정, 친구관계, 사랑으로도 확대 해석이 가능하다. 망년지교는 보통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말하거나, 그 둘의 관계를 제3자가 평가하는 말이다. 일상에서는 아랫사람의 학식이나 경험, 마음가짐 등에서 본받을 점이 많을 때 아랫사람에게 자신을 낮추면서 말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내가 마 교수에게 직접 도움이 되었다거나 학식, 인품 등의 원인이라 보기도 어렵다. 업무 협의로 서로 한국과 중국을 몇 차례 오가며 일을 같이 한 게 전부였다. 아마 30대 초반의 생기발랄함과 패기, 중국과 중국어를 공부한 한국 젊은이에 대한 존경의 의미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실제로도 아름다운 우리말로 평역 된 동양 고전이나 조선 선비들의 서신을 읽노라면, 사상이나 신분의 제약을 뛰어넘은 교류와 우정에 관한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잠시 겉돌았다. 어쨌든 온라인 눈임들에게 내가 망년지교라고 말하는 순간, 눈임들은 나보다 최소한 대여섯 살 아니 십몇 살 많게 된다. 졸지에 '큰 누님'이 돼버리는 셈이다.


눈임은 눈임이다. 두세 살이든 대여섯 살이든 나이차가 무슨 상관인가. 지천명 전후로는 다 친구다. 글과 생각을 닮고 싶은 온라인 눈임과 계속 교류가 이어졌으면 좋겠다. 누님 누님 하는 설렘도 느끼면서.


그리고 눈임들에게 외치겠다. 우리는 나이를 잊은 사이, 망년지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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