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키>, <람보> 시리즈로 유명한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할리우드 액션 활극으로 1993년에 개봉했으니 무려 30년 전 작품이다.
특수효과와 내용 면에서 영화사에 획을 그은 명작 <터미네이터 2>, <쥐라기 공원>, <스피드>도 이쯤에 나왔다. 내 기준으로 <클리프행어>는 독특한 소재와 긴장감 측면에서 고전의 반열에 들어갈만한 영화다. 매력적인 스토리텔링과 관객을 끌고 가는 여러 장치가 압권이다. EBS 교육방송 '세계의 명화'에서도 지금껏 수 차례 방영됐다.액션 영화치고 흔치 않은 일이다.
<클리프행어, 1993> 때와 <람보: 라스트 워, 2019) 때의 실베스터 스탤론. 세월은 비켜가지 못하나 보다. 1946년 생이니까 우리 나이로 올해 78세이다
'23년 7월 하순 기준, 다음 영화(네이버 영화는 '23년 4월에 서비스 종료)에서 찾아본 <클리프행어>의 평점은 8.9
<터미네이터 2>는 9.5, <쥐라기 공원>은 8.7, 2020년 작품상을 포함하여 4개의 오스카상 수상작인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의 평점은 7.9이다. 신작이 아니어서 댓글이나 평점 알바도 없을 텐데9에 가까운 점수이다. 시간을 역행하는 대작이 분명하다.
호평도 자자하다.
"드라마, 오락적 요소에 감동까지 주는 산악영화가 있을까? 혹시 있어도 클리프행어를 넘어설 수는 없다"
"요즘 이 정도 재미를 느낀 액션 영화가 없다"
"CG로는 표현할 수 없는 산악영화!! 지금 개봉해도 될 정도로 잘 만든 영화가 아닐까?"
"28년 전에 저런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 등등
어벤저스, 마블 시리즈가 점령한 지금의 할리우드 액션 영화에 나는 왠지 정을 붙이기 어렵다. 기계들이 치고받고 부수고 변신하는 등 볼거리는 넘쳐나지만 어느 순간부터 '금속 피로감'을 느낀다. CG로 찍찍~, 쨍그랑~, 펑펑~, 쫘악~ 하면서 눈과 귀를 호강시키는 듯해도, 투박하지만 과장되지 않은 액션에 못 미친다.
세월이 흘러 <클리프행어>도 어느덧 고전이란 수식어가 붙을 정도가 되었지만, 이만한 작품을 또 만나긴 힘들 듯하다. 맨몸 스턴트만이 보여 줄 수 있는 거친 매력이나 화려한 CG만으로는 우려낼 수 없는 깊이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클리프행어> 이후 수많은 산악영화가 나왔지만 아직도 배경음악, 영상미, 스토리 측면에서 이 작품을 능가하지 못한다는 평이 대다수다.
<클리프행어>의 시작과 끝. 시작할 때는 사람이 떨어지고, 끝날 때는 헬리콥터가 떨어진다
<클리프행어>가 나의 인생 Top10 영화가 된 계기는 우연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학교 자습실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공부하던 내가 안쓰러웠는지 담임 선생님은 바람 좀 쐬라면서 영화표 한 장을 주셨다. 며칠 후 나는 혼자 시내 극장에 가서 이 영화를 보았다. 대형 스크린으로 펼쳐지는 2시간가량의 영상을 보는 내내 긴장하고 조마조마했다. 학교와 집, 공부밖에 모르던 놈이 영화관람이라는 신 문물을 접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클리프행어>보다 1년 전에 상영된 희대의 명작 <터미네이터 2>는커녕 초중고 시절 상업영화를 본 기억이 없었다. 학교에서 단체 관람한 <우뢰매>나 <마루타> 같은 영화는 물론 빼고.
아무리 짜임새 있는 영화라 할지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은데도, 영화 도입부에서 충격적인 장면은 관객을 잡아 놓기 충분했다. 영화관 앞자리 아저씨가 "아이고 어쩌냐, 저 가시나 죽겠구먼..."이라며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 그리고 맥락이 전혀 다른 또 다른 사건이 우연찮게 겹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전개, 악당들이 하나씩 죽어나가면서 마지막에 결국 어떻게 될지 궁금하게 만드는 장치들이 인상적이다. 뭐 이 정도는 영화의 기본 아니냐 할지도 모르겠지만 <클리프행어>는 30년 전 작품이다. 할리우드 액션 영화로서 엉성한 부분도 없는 건 아니지만 웅장한 영화음악과 연속되는 긴장감으로만 보면 명작의 반열에 오르기 충분하다.
스탤론의 산악구조대 동료 마이클 루커가 절벽에 매달린 모습. 이 장면이 바로 '클리프행어'다
험준한 로키산맥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이고 주인공이 산악구조 대원이어서 제목을 <클리프행어>라고 한 것 같다. 말뜻 그대로 '절벽에 매달린 자'이다.
하지만 본래 클리프행어(cliffhanger)는 문학에서 쓰는 전문 용어이다.
클리프행어는 소설이나 영화 등에서 쓰이는 줄거리 장치로, 주인공이 위협적인 상황에 처하거나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충격적인 결말을 맞게 됨을 뜻하기도 한다. '다음 회에 계속 To Be Continued' 과도 비슷하다. 드라마나 영화 맨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에 느닷없이 장면을 끝내고 뜸을 들이면서 시청자나 관객을 애태우는 수단이기도 하다.
특히 연속극에서 클리프행어 기법은 빛을 발한다. 연속극은 보통 일주일에 한두 편 정도 방영하는데 시청자를 계속 잡아두기 위해서는 다음에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지 궁금해하도록 해놔야 한다. 제작비 충당이나 광고수입을 위해서라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시청자를 붙잡아 놓는 것이다.
주인공이 철로 위에 묶여있는데 저쪽에서 기차가 달려오면서 끝나버리는 건 고전 기법에 속한다. 곳간으로 가까스로 몸을 피했는데 연쇄살인마가 낫을 들고 걸어 들어오며 다음 회 예고편이 나오거나, 유명 여배우가 무당이 되어 신내림을 받고 처음으로 작두에 막 올라서려는 찰나에 방송을 끝내버리는 것도 클리프행어 기법이다. 요즘은 현란한 편집기술을 무기로 더욱 교묘하고 기발한 엔딩 방식이 널리 사용된다.
이러한 '애태우기'는 영화, 드라마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잘 먹힌다. 연애를 할 때 여자든 남자든 너무 많이 자신의 패를 내놓아서는 안된다. 진도가 지나치게 빠르면 쉽게 싫증이 난다. 홀라당 벚어제끼기 보다는 보일 듯 말 듯 걸쳐 입은 모습이더 야릇한 법이다.
연예뿐인가? 유익한 성과물을 계속 쏟아내거나 다재다능함으로 주변의 귀와 눈을 간질간질하게 만들 줄 아는 사람은 환영받을 가능성이 크다. 까도 까도 끝이 없는 양파 같은 사람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이 있던가?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나에게 점점 더 신박함을 원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기대감 인플레이션'을 불러온다. 좀 더 세고 자극적인 걸 바란다. 그만큼 나의 부담감은 커진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고 자기도 모르게 초심을 잃고 무리수를 둔다. 거짓말에도 이자가 붙는다고 했다. 부풀만큼 부푼 풍선은 뻥! 하고 터져버린다. 쌓아 놓았던 성과가 와르르 무너져버린다.
남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이 양파면 어떻고 고구마면 어떤가?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있는 듯 없는 듯 둥글둥글한 돌로 살아가는 게 나을지 모른다. 나무도 하늘 끝까지 자라는 걸 봤는가? 높게 올라가 봤자 가장 먼저 싹둑 잘려나갈 게 뻔하다.
그렇다면 답은 나왔다.
"이번엔 무슨 패를 내놓을까" 하며 스스로 너무 애태우지 말자. 절벽에 매달아 놓는 게 능사는 아니다. 보여줄 게 없으면 좀 쉬면 된다. 남이 짜놓은 장단 말고 나의 리듬에 맞게 춤추면 된다. 스스로 즐겁고 의미 있게 여기는 걸 꾸준히 해나가자. 소소한 행복은 잘게 쪼개는 만큼 생길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