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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유쾌하게 노는 방법

공부는 No! 고양이는 Yes!

by 깜이집사

"네? 이 밤에 다이O를 왜 가요?"


"딸이 종이 접시를 사겠다네요"


"아까 장 볼 때 갔어야지 지금 몇 시인데 또 나가요"


"딸이 보채는 데 어떻게 하나요. 좀 가줘요"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월요병'도 앞당겨졌다.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면 슬슬 짜증이 난다. 밖으로 놀러 가든 집에 있든 오전부터 기분이 개운치 않다. 오후가 되면 답답함이 더욱 몰려오고 저녁이 되면 자포자기다.


마트가 걸어갈만한 곳이 아니어서 대게 일요일 오후쯤 차를 몰고 간다. 여느 때처럼 아내와 잔뜩 장을 보고 돌아왔다. 그런데 밤 아홉 시 가까운 시간에 다이O를 또 가야 한다니. 순간 열이 올라왔다. 학교 숙제나 과제물은 미리미리 해놓고 챙겨가라고 아이들에게 당부를 해도 그때뿐이다. 공부하는 애들이 나보다 정신머리가 더 없는 때도 많다. 하루 종일 뭐 하다가 이제야 종이 접시를 사야 한다니.


딸은 집에 종이 접시가 있는 줄로 알았단다. 아내가 찬장을 뒤졌는 데 없었나 보다. 그때부터 딸은 아내에게 징징거리는데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


다음 날 토핑을 만드는 학교 실과 시간에 받침 접시를 준비해야 한단다. 토핑이면 케이크를 만들고 그 위에 과일이나 초콜릿 따위를 올리지만 딸은 접시를 챙겨 오기로 했다는 것이다. 딸기나 샤인 머스캣 또는 손바닥 케이크와 롤케이크를 가져온다는 친구들이 있었다는데 자기는 접시라는 거다. 의아해서 물었더니 집에 접시는 있을 거라 생각했단다. 어찌 보면 선수를 친 셈이다.


부담이 줄어든 건 좋은데, 딸의 말에 꽤나 놀랐다. 포도나 딸기를 가져온다고 했다면 집에서 안 챙겨줬을 거란다. 접시는 집에 있을 테니까 바로 가져오기 쉬웠다면서.


아내가 나에게 한 마디 한다. 우리가 딸에게 소홀히 한 거라고.


나는 아니라고 대꾸를 못 했다. 틀린 말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딸을 사랑한다고 여겼지만 정작 딸이 만족할 만큼 아빠 노릇을 했나 돌이켜보았다.


해외 주재원 시절, 아들은 현지에서 태어났다. 돌이 지나고 반 년이 안 돼 귀국했다. 현지에 오래 있지 못했지만 어쨌거나 첫째여서 나와 아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았다. 아내도 아직 체력이 있을 때라 열심히 키웠다.


그러다가 세 살 터울로 딸이 태어났다. 나도 아내도 조금씩 지쳐갔다. 어머니가 운영했던 어린이집에 세 해 가까이 맡겼지만 그렇다고 손하나 까딱 안 할 순 없었다. 옷 입히고 등하원을 시키고 저녁 먹이고 씻기는 건 아내 몫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들이 다섯 살, 딸이 두 살 때 나는 박사 학위 과정을 시작하였다. 아들 녀석은 아빠 아빠 재잘거렸으나 딸은 아직 말을 못 뗄 때였다. 3년 가까이 평일 저녁과 주말을 올곧이 공부에 시간을 보내는 바람에 딸과 많이 놀아주지 못했다. 수업을 마치고 늦은 밤 집에 돌아오면 남매는 모두 꿈나라였다.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학위 논문 심사를 통과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젠 아빠와 남편 역할을 제대로 해보겠다고.


하지만 기쁨도 잠시, 학위를 받고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나는 원격지인 강원도 춘천으로 발령을 받았다. 운전이나 열차로 출퇴근이 불가능해 꼼짝없이 주말부부 신세가 되었다. 아내도 한계에 다다랐는지 몸이 성치 않아 병원을 오랫동안 들락거렸다. 그렇게 2년 가까이 주말에만 집을 오갔다. 주말에는 되도록 근교로 나들이를 가서 아이들과 놀아주었다.


그러는 사이 아내의 독박 육아는 4년이 넘었다. 어느새 아들은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고, 딸도 유치원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안 되겠다 싶어 딸을 초등학교에 1년 조기 입학 시켰다. 딸이 총명해서가 아니었다. 같은 학교에 남매를 넣어 아내가 돌보기 편하도록 해주는 게 목적이었다. 학군 내에서 가장 좋다는 초등학교를 포기하고 큰길 건너편 학교에 그렇게 일 년 일찍 딸은 입학하였다.


원격지에서 근무한 지 2년이 지나지 않아 본사로 복귀하였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아들과 아빠표 학습을 시작했다. 딸의 공부는 뒷전인 채 아들을 붙잡고 열심히 가르쳤다. 그러다가 2020년 초, 코로나가 터졌다. 아이들은 2년 가까이 집에서 원격수업을 받았다. 아빠표 학습으로 어느 정도 스스로 공부습관이 몸에 밴 아들은 잘해나갔다.


하지만 초등학교 2~3학년을 원격학습으로 보낸 딸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방학을 맞이해서 교과서를 펼쳐보니 깨끗하였다. 모니터만 켜놓았을 뿐 혼자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거였다. 아차 싶어서 부랴부랴 EBS도 같이 들어보고 책도 읽혔다. 방과 후에 남아 학업이 부진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반올림'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렇지만 한번 뒤처진 학과 과목 실력이 좀체 올라오지 않았다.


학업에서 어영부영한 채 딸은 벌써 5학년 여름방학을 맞았다. 지난 주에 오랜만에 가족과 2박 3일간의 여행을 다녀왔다. 딸의 가장 큰 걱정은 고양이 '깜이' 걱정이다. 에어컨도 못 켜면 집이 더울 텐데 죽는 거 아니냐, 밥과 물을 잔뜩 주고 가면 썩어서 식중독 걸리면 어떡하냐, 배변 모래 못 갈아주면 어떡하냐, 근심이 끝이 없다. 여행지에 가 있는 동안 나와 아내를 들들 볶는다.


그림도 고양이만 그리고 책도 고양이 책만 읽으려고 한다. 그렇다고 그림을 잘 그리거나 글쓰기에 재주가 있지도 않다. 다른 걸 좋아하거나 잘하는 게 없기 때문이다. 뭘 좋아하고 뭐 할 때 즐거운지 물어보면 동물 말고 딱히 대답을 못한다. 관심은 아직도 고양이인데 올해 들어 마라탕이 추가되었다. 도대체 언제 어디서부터 좋아하게 되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마라탕이 주식(主食) 비슷하게 되었다. 어제도 마라탕 오늘도 마라탕, 마라탕에 마약이라도 넣었는지 딸은 계속 마라탕을 찾는다.


과거는 잊은 지 오래다. 내일은 없고 오늘만 사는 딸이다. 이제 점점 미래를 앞당겨 살려고 한다.


속은 타들어가지만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지켜보련다. 5학년이지만 4학년 나이이기에 일 년 더 참고 지켜보기로 했다. 올 여름방학에 내가 딸에게 내준 임무는 아들과 함께 읽었던 초등학교 동시집 예닐곱 권이다. 혼자서 꼼꼼히 읽어보라 하고 말았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책을 잔뜩 빌려다 줬다. 3학년 때부터 <358 이솝 우화 전집>이라는 책 세 권을 지금까지도 독서록으로 우려먹고 있는 딸이다. 책은 세 권인데 그 안의 이야기가 358개여서 재빠르게(?) 독서록 쓰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불호령을 내리며 나는 <358 이솝 우화 전집> 책을 압수했다. 그런데도 정신을 못 차린 딸이다. 여름방학을 보낸 지 이제 3주 째인데, 느닷없이 겨울방학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한다. 놀 궁리만 가득하다. 어안이 벙벙해진다.


참겠다. 지켜보겠다. 만 나이로 이제야 두 자리 수가 되었다. 코로나 시국을 탓할 필요도 공부에 관심이 부족한 딸을 나무랄 이유도 없다. 내 잘못이 크다. 한 번 더 안아주고 볼에 뽀뽀도 하며 격려해 주련다. 지금 아들에게 절대 못할 행동이기도 하고, 딸에게 사춘기가 찾아들면 신체 접촉도 어려울 테니 실컷 그러련다.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지켜보련다. 정신이 바짝 들만한 사건이 있거나, 스스로 대오(大悟) 하는 상황이 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러려니 하련다.


딸에게 머리 빗질도 잘 못해주고, 옷 코디는 더더욱 젬병이다. 그러면 어떤가? 공부 이야기만 안 하면 혼자서 잘 놀고, 엄마 아빠에게도 살가운 딸이다. 오빠와 간헐적(?) 전쟁을 벌여 골치가 아프지만, 세상에 둘도 없는 싱그럽고 예쁜, 집안의 분위기 메이커이다. 이 정도면 족하지 않은가? 나는 대한민국 딸 아빠다!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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