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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팔! 나는 쓰레기다.

신조어와 우리말에 대한 단상

by 깜이집사

'스레드' 열풍이다. 출시 닷새 만에 1억 명이 깔았다니 SNS에 밝지 않은 나도 궁금했다.


트위터의 대항마로 출시된 스레드는 페이스북 자회사인 메타가 만든 텍스트 중심의 SNS다. 잘파세대(Z세대+알파세대의 합성어로 1020 세대를 아우르는 말)의 환호를 받으며 인기가 심상찮다. 온라인 플랫폼의 최강자가 되려는 일론 머스크와 마크 주커버그의 대리전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스레드를 깔지 않았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도 안 하는데 스레드를 내려받을 리 만무하다. 유독 내 눈을 끈 건 스레드 관련 신조어였다.


쓰린이(스레드 입문자), 쓰팔(스레드 팔로우), 쓰레기(스레드 하면 기분이 좋다), 쓰인물(스레드에 이미 적응한 사람), 쓰님(쓰팔은 했지만 아직 어색한 사이)....


세상이 딸깍 변하고 신문물도 속속 나오면서 새로운 말과 글이 넘쳐난다. 어디 이뿐인가?


갑통알, 완내스, 꾸꾸꾸, 누물보, 알잘딱깔센, 쉽살재빙.... 근육 알통? 메리야스 브랜드? 비둘기가 우는 소리? 팥빙수 이름? 그런 게 아니고 주로 온라인상에서 통용되는 줄임말들이다. 단박에 이해하기 어려운 줄임말이 요즘처럼 엉킨 듯 춤추는 때가 있었을까? 가히 난장판 수준이다.


갑통알은 '갑자기 통장을 보니 알바해야겠다', 완내스는 '완전히 내 스타일', 꾸꾸꾸는 '꾸며도 꾸질꾸질', 누물보는 '누구 물어보신 분'?, 알잘딱깔센은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쉽살재빙은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어 빙고'란다.


보통 줄임말은 신문 지면이나 방송 화면에서 제목이나 헤드라인을 표시할 때 글자 수의 제약을 피하기 위해 사용된다. 선거대책위원회를 '선대위'로, 통합추진위원회를 '통추위', 문화체육관광부를 '문체부'로 부르는 게 대표적이다.


공정선거협의회, 손해배상소송, 토지공사를 헤드라인에서 줄여 썼다. 출처: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6년 1월 동아일보 기사 중 갈무리


더욱이 이러한 한자어 말 줄임은 같은 한자 문화권인 중국에서도 넓게 사용되기 때문에 어색하지 않다. 한자 자체가 낱글자마다 뜻을 지닌 표의(表意) 문자이다 보니 폭넓게 말 줄임이 이루어져도 뜻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우리 법원 판결문에도 교특법(교통사고처리특례법), 특가법(특정범죄가중처벌법) 같은 줄임말이 버젓이 쓰인다.


하지만 순우리말과 외래어로 이루어진 우리말 단어는 상황이 다르다. 칼, 밥, 술 등 한 글자 단어를 제외하면 순우리말은 한 글자 자체가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여러 글자가 합쳐져야 비로소 의미 체계를 이룬다. (아) / (버) / (지) 각각 한 글자는 우리 머릿속에서 어떤 연상작용도 일으키지 못하고 그냥 음성으로만 논다. /(아버지)/라고 뭉쳐서 말해야 비로소 의미가 와닿는다. 따라서 한자어와 순우리말로 이루어진 단어의 앞 글자만 따서 말을 줄이면 억지스러운 느낌이 강하고 어색하다. 주린이(주식+어린이), 미먼(미세+먼지), 마상(마음의 상처) 등이 예이다.


물론 웃찾사(웃음을 찾는 사람들), 개콘(개그 콘서트)처럼 오랫동안 시청자의 인기를 얻고 국민 대다수가 알고 있는 노래나 프로그램의 줄임말은 이러한 불협화음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건 사실이다. 미국+drama의 '미드', 나이+mileage의 '나일리지', 금수저+인턴의 '금턴' 등도 영어 음절 원리로 보면 말이 되지 않지만 사람들의 입에 무수히 오르락내리락한다. 지금도 방송 중인 어느 공영방송의 예능프로그램 명칭은 <편스토랑>이다. 편스토랑은 편의점과 레스토랑(restaurant, 식당)의 합성어로, 마치 식당처럼 손색없는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는 편의점을 이른다. 줄임말 원리에 맞지 않는 단어를 제목으로 따왔다. 하지만 편스토랑의 말맛과 뜻이 와닿는 느낌도 있긴 하다.


문제는, 우리말과 외래어의 조합, 또는 외국어의 우리말 발음에서 무차별적으로 몇 글자를 뽑아내어 줄여 버리는 데 있다. 본케(본래 캐릭터), 부케(副 캐릭터), 있어 빌리티(있어 보인다+ability)처럼 우리말과 외국어를 조합한 뒤, 싹둑 잘라버린다. 억지로 꾸민 듯한 느낌이 강해 거북스럽다.


왜 이렇게 멀쩡한 말을 줄이는 걸까?


아무래도 편리함 때문이겠다. 세 살짜리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던져주면 창을 이리저리 건드리고 놀만큼 1020 젊은 세대는 디지털 기기를 익숙하게 사용한다. SNS 메신저나 채팅창에서 손가락으로 문자를 빠르게 입력한다. 따라서 긴 문장이나 단어보다 줄임말로 대화를 나누는 걸 편안해한다.


더욱이 이러한 줄임말 사용은 같은 세대 간 소속감을 높여주기도 한다. 온라인상 단톡방이나 게임방은 그 자체가 다른 집단과 구분되는 공간이다. 그만큼 다른 사람들이 쉽게 알아듣지 못하도록 그들끼리만 흔하게 사용하는 말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이른바 인싸가 되기 위한 도구인 셈이다.


줄임말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소통이 우선인가? 아니면 언어의 권위가 우선인가?


소통이 먼저라면 젊은이들이 두루 사용하는 언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4050으로 대표되는 '라떼는 말이야' 세대도 젊은 세대를 나무랄 일이 아니다. 인구론(인구의 구십 퍼센트가 논다), 이태백(이십 대 태반은 백수), 사오정(사십 오세 정년) 따위이 줄임말을 만든 장본인은 바로 중년 세대다. 요즘은 그냥 웃고 넘기지만, 술자리 건배사 모음집이 돌아다녔던 한때를 생각해 보면 웃프다. 직장 회식에서도 개나발(개인과 나라의 발전), 변사또(변함없는 사랑으로 내일 또 만납시다)를 외치면서 젊은 세대에게 술을 강권하지 않았던가?


권위가 먼저라면 '바른 우리말을 제대로 써야 한다'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말이란 그 말을 쓰는 사람들의 소중한 약속이며 공적 도구다. 따라서 함부로 말을 줄여서 끼리끼리만 알 수 있는 암호 또는 은어는 다른 사람에게는 곤욕일 뿐이다. 선생님을 '쌤'이라고 하는 것까진 좋다. 그렇다고 스님을 '스'라고는 할 순 없지 않은가?


국립국어원은 외국어 발음이 그대로 우리말로 쓰이는 경우나, 시시각각 생기는 신조어가 널리 사용되면 사전적으로 정의하고 해설을 달기도 한다. 그 시대의 언어를 받아들인다는 증거다. 그런데 줄임말은 아직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우리말을 의미론적으로나 문법적으로 풍부하게 할 수 있다면 줄임말도 생존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문법이나 정서적으로 큰 거부감이 없으면서 의미론적으로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라면 말이다.


정모(정기 모임), 가심비(가성비+마음 심을 합해 줄인 말),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돈쭐(돈으로 혼쭐을 내주다) 등,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재밌는 뒷맛도 남기는 줄임말이 쏟아져 나온다. 이렇듯 우리말을 더욱 풍부하게 해주는 맵시 있으면서 쌈박한 줄임말을 기대해 본다. 어쨌든 어떠한 음도 표기할 수 있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한글이 받쳐주고 있으니까!



* 제목 <쓰팔! 나는 쓰레기다>는 '스레드 팔로우 했다! 나는 스레드 하면 기분이 좋다'를 뜻한다.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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