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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망초를 욕하지 마라

알아주지 않아도 예쁘게 핀다. 우리도 그렇다

by 깜이집사

연가를 내고 하루 쉬었다. 아빠이자 아들 노릇하기 어디 쉬우랴. 주말에 진이 빠졌던 내게 꿀 같은 휴식이었다.


느지감치 일어나 점심을 대충 때우고 혼자 밖으로 나갔다. 며칠 비가 와서 그런지 그새 초록이 무성하다. 나팔꽃, 해바라기, 무궁화, 수레국화가 눈에 들어온다. 다른 건 봐도 알지 못하는 꽃들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실감 났다.


작년 이쯤부터 냇가와 밭이 있는 자연 속에 살게 되면서 어머니에게 꽃과 풀들에 대해 조금씩 주워듣는다. 시골 소녀였던 어머니는 외삼촌들과 산과 들을 다니며 풀과 꽃, 나무를 익혔다. 이것저것 모르는 게 없다. 텃밭을 가꾸는 방법, 심고 거둬야 할 작물도 혼자 몫이다. 어머니와 흙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시니어 합창단 연습으로 그러지 못한 게 아쉽다.


꽃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건 회사 상관인 부장님 때문이었다. 지난 몇 주 동안 부장님과 서울 외곽 지역으로 출장을 다녔다. 부장님은 시를 쓰기 위해 초목과 꽃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어머니와 부장님 모두, 배우는 과정이 달랐을 뿐 자연이 내린 선물의 이름과 특성에 빠삭하다. '인간 나무위키'들이다.


88 고속국도 양쪽에 듬성듬성 피어있던 능소화, 파주 방향 수도권 외곽순환 고속도로에 늘어진 밤꽃과 모감주나무, 양주 국도 갓진 시골길에 가득했던 개망초와 애기똥풀까지, 보이는 속속 부장님의 설명이 이어졌다. 나에겐 그저 이름 모를 꽃과 나무들이었는데 어느새 사연이 있는 대상으로 다가왔다.


애기똥풀
모감주나무


능소화는 꽃의 빛깔과 담을 타고 올라가는 성질 때문에 금등화(金藤花)로 불린다. 옛날에는 양반집 마당에서만 심을 수 있었다고 해서 '양반꽃'이라고도 한다. 그랬던 꽃이 지금은 자동차 매연이 휘날리는 서울 고속국도변에서도 흔히 보인다. 옛 영화를 잃어버린 것인가? 인간사와 별반 다를 게 없는 꽃의 운명인가?


무궁화는 여름 백여일 동안피고지고를 반복한다. 새벽에 펴 그날 오후 늦게 지는 특성 때문에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는 지조와 절개를 상징한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무궁화를 끈기 없는 소인배이자 의지박약의 대상으로 본다. 이렇게 같은 꽃이라도 보는 시각이 다른 데 사람을 함부로 이러쿵저러쿵할 수 있을까?


보름 가까이 '꽃 도슨트'를 해준 부장님 덕분이다. 흙길을 걷는 동안 여기저기 무리 지어 흩날리는 개망초가 한눈에 들어왔다. 부장님이 아니었다면 올해도 내년도 이름도 모른 채 흘려보냈을 텐데.


대게 우리말에 '개'가 붙으면 가치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개새×, 개자×, 개차반, 개꿈, 개나발, 개수작, 개망나니, 개살구꽃 등등. 당장 떠오르는 명사만 해도 주르륵이다.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 '개만도 못한 놈아', '개꼬리 삼 년 묻어 놔도 여우꼬리 안 된다' 같이 툭하면 개를 들먹인다. 개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개망초의 순우리말은 '계란꽃'이다. 위에서 보면 달걀 프라이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망초라는 꽃에 '개'를 붙인 건데, 놀랍게도 망초는 그 생김새가 보잘것없다. 빛바래고 산만한 꽃잎을 보노라면 이게 꽃인지 잡초인지 알 길이 없다. 이렇게 예쁜 계란꽃이 어쩌다 개망초로 불리게 되었을까?


본래 개망초는 우리나라 토박이 꽃이 아니다. 구한말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제로 빼앗은 뒤 물자를 싣어나르기 위해 전국에 철길을 만들었는데, 철도가 생기는 곳마다 개망초가 피었다. 이를 보고 우리 조선인들은 일본이 꽃을 일부러 퍼뜨렸다고 여겨 망국초(亡國草)라고 불렀다. 나라를 망하게 한 망할 놈의 꽃이라는 뜻이겠다. 그러나 개망초는 본래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이다. 철도가 들어올 때 같이 딸려온 나무에 개망초 씨앗이 묻어 들어온 것이다. 참으로 순탄치 못한 개망초의 운명이다.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는 5월 말부터 9월 초까지 개망초 세상이다. 생명력과 번식력이 강한 개망초는 겨울에는 뿌리와 잎만 남긴 채 버티다가 다음 해 한번 더 꽃을 피우는 두해살이 풀이다. 이렇게 아무 곳이나 막 피는 이름 없는 풀이지만 자세히 보면 색과 모양이 곱다. 누가 돌보지 않아도 잘 자라는 야생화이다.


개망초는 억울할만하다. '개'자가 붙어서 그렇지 망초보다 아름답다. 하긴 '개좋아', '개이득', '개꿀' 같이 개가 붙어서 뜻이 좋아지기도 한다. 계란꽃 개망초도 이런 경우일 텐데, 예쁜 꽃이름과 아기자기한 모양의 진면목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게 아쉬울 따름이다. 나도 그랬고.


'계란꽃' 개망초


꽃 피는 봄은 지났지만 잠깐 주위를 돌아보면 꽃들의 향연은 끝이 없다. 지금은 여름 꽃들이 한창이다. 두어달 지나 이들이 자리를 내주면 국화, 코스모스 같은 가을꽃들이 자태를 뽐낼 것이다. 대부분의 동식물들이 잠에 빠져드는 겨울에도 꽃들의 인사는 이어진다. 절개의 상징인 매화, 동백꽃, 수선화들이 스산한 겨울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이렇게 알아주지 않아도 때가 되면 너도 나도 핀다. 형형색색 향기를 품어댄다. 아무도 관심이 없는 탓에 꺾이지도 밟히지도 않고 야생 그대로의 모습이다.


꽃집에서 옆구리를 맞댄 채 전시된 줄기 잘린 꽃 무리보다 야생화의 자유분방함이 더 좋다. 꽃다발을 주고받을 때의 기쁨도 잠시, 꽃병 속에 꽂혀 며칠 못 가 말라비틀어지고 씨도 못 뿌린 채 버려지는 관상용 꽃에 열광할 일이 아니다. 보잘것없는 야생화지만 한 자리 차지하고 솓아 오르며 볕과 공기를 맘껏 누린다.


눈에 안 띈다고 보잘것없는 건 아니다. 이름이 불리지 않는다고 쓸모없는 것도 아니다. 생명력과 아름다움은 야생의 날 것이 더 빛난다. 우리가 관심을 안 줘도 꽃은 때가 되면 핀다. 빠르거나 늦거나의 차이일뿐, 저마다 자태를 뽐내며 향을 뿜는다.


남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꽃들은 그렇게 살아간다. 인간이라고 다를까?


흙길을 들어서면 여름꽃들의 향연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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