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버린 건 김치와 미루던 마음이었다

by 으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매트리스를 드러내어 바닥에 있던 먼지와 머리카락을 쓸었다. 그리고 냉장고 속에 있는 ‘먹으면 천사와 하이파이브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날짜 지난 음식들’을 버렸다. 그중에는 2년이 지난 김치가 있었다. 김치가 썩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얗게 썩은 김치를 보니 내 심리 상태와 이 김치가 겹쳐 보였다.


냉장고를 이 상태로 만든 건 집안을 돌볼 심적 에너지가 고갈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직장에서 10시간 가까이 내근하고, 정해진 쉬는 시간 외에는 쉬지 않고 계속 근무하니 집에 오면 시들시들 파김치가 된다. 근무지에서 손님이 없으면 열심히 이곳저곳을 청소하는데, 정작 내 보금자리는 잘 관리하지 못하니 모순인 것 같다. 깨끗한 집에서 쉬어야지 에너지 충전도 잘 될 텐데, 마음속에서는 해야 된다는 생각만 반복만 하면서 정작 몸은 따라주지 못했다. 왜 나는 자신을 잘 돌보지 못하는 걸까. 스스로 안타깝기도 하다.


원래부터 이렇게 집안일을 미루지 않았다. 가족들과 살 때도 집안일은 내가 도맡아 했고, 자취를 시작할 때는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며 물건 개수도 컨트롤하며 집안을 깨끗이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밥도 직접 장 봐서 요리하며 건강 챙기고 식비를 아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우울증이 깊어지니 씻는 것조차 어렵게 느껴졌다. 특히 2025년에는 큰외삼촌의 갑작스러운 죽음 등 여러 가지 일로 내 마음의 계절이 계속 겨울인 상태로 멈춰서 그런지 작은 원룸이 많은 물건과 쓰레기로 복잡해졌다.


그러다 오늘 아침 일어나는데 출근 지각하는 일이 있어도(사실 그러면 안 된다) 쓰레기 버리는 날에 맞춰 냉장고 속에 썩어가는 김치 및 유통기한이 지난 식재료를 버려야겠다고 마음먹고 실행에 옮겼다. 김치통의 뚜껑을 여는데 상상 이상의 냄새가 내 코를 고통스럽게 했다. 이 냄새가 스스로에 주는 벌이라 생각하며 20리터짜리 음식물 쓰레기봉투 하나, 일반 쓰레기 20리터 하나, 재활용 쓰레기를 배출했다.


아직 원룸은 많은 물건들로 어지러운 상태지만, 소스류 빼고는 텅텅 비어있는 냉장고를 보니 속이 시원하고 뿌듯했다. 진작에 부지런히 청소하고 관리할걸. 청소를 미루던 마음이 썩은 김치처럼 곪아있다가 해소된다. 가벼운 마음이 들면서 과장된 것 같지만 뭐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까지 들었다. 이 기세로 손대지 못했던 옷장이랑 책상 위도 정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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