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각도에서 봐도 예쁜 프라하 - 인생에 한 번은 그곳에 가보길
"한국인이시죠? 사진 좀 찍어주시겠어요?"
20년 전, 체코 프라하 카를교에서 프라하성을 배경으로 아경 사진을 찍고 있던 우리에게 한 남자가 다가와 고급카메라를 내밀었다. 커다랗고 묵직해 보이는 카메라를 보자마자 겁이 난 나는 몸을 뒤로 물렸고 같이 있던 후배가 카메라를 받아 들었다.
"어떻게 찍으면 돼요?"
"그냥 카메라를 단단하게 잡고 셔터만 누르면 됩니다."
그리고 그 남자는 커플인 여자와 다정하게 포즈를 취했다. 후배는 몇 컷을 찍은 후 자신 없는 말투로 흔들린 것 같다고 말했다. 카를교는 조명이 밝은 편이지만 빛 한 점 없는 블타바 강 위에 있어서 밤에 흔들림 없이 사진 찍기가 쉽지 않았다.
그 남자는 괜찮다며 우리도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그 시절만 해도 떨림 보정 기능이 시원찮았던 삼성 디지털카메라로 고급카메라 못지않게 흔들림 없는 사진을 찍어준 남자에게 여자친구와 여행온 거냐고 물어봤다.
"우리는 지금 신혼여행 중입니다. 와이프가 프라하로 꼭 신혼여행을 오고 싶다고 해서 정말 배낭 하나씩 메고 여행 중이에요."
당시 한창 배낭여행 붐이 일어나서 대학생과 직장인들은 자유여행을 즐겼지만 신혼여행은 패키지여행이 대세였기에 두 사람이 배낭 메고 신혼여행을 한다는 이야기가 신선하게 느껴졌다.
"너무 멋있네요. 신혼여행으로 낭만의 도시에 오다니."
나는 커플에게 엄지척을 날려줬고 그들과 웃으며 헤어졌다. 뒤돌아서 가는 커플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여기서는 누구와도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것 같아."
그날 밤, 트램을 기다리는 정류장에서 후배는 이렇게 말했다. 늦은 시간, 노란 가로등 불빛이 은은하게 비추는 길거리에서 그녀는 제법 진지하게 속삭였다. 그때 내 반응이 어땠더라. 아마 건투를 빈다며 크게 웃었던 것 같다.
2005년 체코 프라하는 그랬다. 아직은 젊은 우리에게 낭만을 선사하고 사랑을 꿈꾸게 했다. 우리는 구시가 광장에서 야경을 보며 감탄했고 카를교에서 프라하성을 바라보며 미래에 대해 얘기했다.
강을 바라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돌연 키스하는 커플을 구경하기도 하고 평균 나이가 70대로 보이는 할아버지들의 버스킹 4중주 연주를 들으며 어깨를 들썩이기도 했다.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세트장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프라하는 나에게 낭만의 도시로 남았다.
그로부터 11년 후인 2016년. 나는 다시 프라하를 찾았다. 이번엔 오롯이 나 혼자였다. 프라하는 여전했다. 여전히 구시가 광장 야경은 멋졌고 카를교에서 바라보는 프라하성도 예뻤다. 스트라호프 수도원과 프라하성에서 바라본 시내 전망도 여전히 가슴을 뛰게 했다. 1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 프라하는 나이를 먹어도 늙지 않는 미모의 여배우 같았다.
그리고 11년 전보다 더 북적거렸다. 구시청사 시계탑에서 매시 정각마다 펼쳐지는 인형 퍼포먼스를 보기 위해 모인 인파도 2배는 더 많아 보였다. 그만큼 달라진 모습도 눈에 띄었다. 여전히 북적거리는 구시가 광장에는 바닥에 주저앉은 사람이 없었다. 11년 전, 광장 한복판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토론하거나 웃고 떠들던 청춘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당시 저녁 무렵에 들른 구시가 광장은 바닥에 주저앉은 청춘들이 뿜어내는 자유로운 에너지가 넘쳐났는데 그 풍경이 사라진 것이다.
그 자리를 세그웨이가 차지하고 있었다. 광장에 세그웨이를 세워놓고 세그웨이 수강생(?)을 유치하기 위해 팸플릿을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들과 세그웨이를 타고 운전요령을 듣는 관광객들로 구시가 광장은 시끌벅적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 혼자 묘한 배신감에 사로잡혔다. 사랑했던 옛 연인의 묘하게 달라진 모습을 바라보는 심정이었달까.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프라하라고 별 수 있어? 시대에 맞게 관광객을 대하는 자세가 변한 것일 텐데도 씁쓸했다.
하지만 프라하는 밀당의 귀재였다. 해가 지고 야경이 펼쳐진 시각, 프라하성에서 야경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에 카를교를 지나 프라하성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귀에서 이어폰을 빼고 들어보니 불꽃놀이 같았다.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가늠해 보니 카를교 쪽이었다. 사람들이 서둘러 카를교로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거의 뛰다시피 걸어서 카를교에 도착했다. 그리고 소박하지만 충분히 화려한 불꽃놀이를 감상했다. 마치 11년 만에 프라하를 찾은 나를 환영해 주는 느낌이었다.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 기분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다. 영상을 찍어서 페이스북에 올렸다. 내가 뭐라고 썼나 궁금해 찾아보니 '그동안 여러 면에서 고생했다며 토닥여주는 느낌'이라고 적었다. 나는 그날 다시 한번 깨달았다. 프라하는 내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도시라는 사실을.
나는 이후로도 프라하를 두 번이나 더 여행했다. 세 번째 방문은 6년 후인 2022년이었고 네 번째는 올해 4월이었다. 언니와 함께 세 번째로 프라하에 왔을 때는 구시가 광장에 새하얀 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사람들로 붐비는 구시가 광장에 이 기둥이 들어서자 사람들이 가득 찬 느낌이 들었다. 특히 이 기둥 아래에 있는 계단에는 앉아서 쉬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게 뭐지? 궁금한 마음에 검색을 해봤더니 마리안 기둥이라고 한다. 1650년에 세워진 이 기둥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1918년에 시민들이 끌어내리며 파괴됐다가 100년 만인 2020년에 복원됐다고. 기둥 꼭대기를 올려다보니 성모 마리아상이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중세 시대에 세워진 건축물이 둘러싸고 있는 구시가 광장에서 새롭게 등장한 이 '신상품'은 솔직히 이질적이었다. 고딕부터 바로크, 로코코 양식의 다양한 건축물 사이에 21세기 최신형 조형물이 들어선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밤이 되자 기둥 뒤에 있는 틴 성모 성당과 기가 막히게 어울리면서 묘한 아우라를 뽐냈다. 복원된 건 21세기지만 원래 17세기 작품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올해 4월에 방문한 프라하는 때마침 추수감사절 시즌과 맞물려서 구시가 광장엔 추수감사절 마켓이 들어선 상태였다. 그리고 마리안 기둥은 오래전부터 그곳에 있었던 듯 자연스럽게 서 있었다.
동생과 함께한 네 번째 여행에서 드디어 프라하와 헤어질 결심을 했다. 내내 즐겁게 여행하다 마지막 밤, 저녁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인종차별을 당했기 때문이다. 프라하에서의 마지막 밤인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밤이 되고 블타바 강을 따라 숙소로 걸어가는 길, 우리는 노란빛으로 사람을 홀리고 있는 프라하성 야경에 다시 마음을 뺏기고 말았다. 동생이 한국으로 떠나는 다음날, 갑자기 화창해진 날씨에 우리는 무장해제됐다. 햇살이 내리쬐는 프라하는 그림체가 달라진 느낌이었다. 우리는 다시 한번 해실해실 웃으며 엄청난 양의 사진을 찍어댔다.
헤어질 결심을 했지만 나는 여전히 프라하를 사랑한다. 천년 동안 꿋꿋하게 프라하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는 프라하성도, 그곳에서 바라보는 전망도, 30개의 성인조각상이 서있는 600년 된 카를교도, 여러 건축 양식이 어우러진 구시가 광장도, '프라하의 봄'으로 불리는 비극을 지켜본 바츨라프 광장까지 전부.
혹시 본인의 연애 세포가 죽었다고 느껴진다면 프라하에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카를교에서 블타바 강과 프라하성을 바라보노라면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어질 것이다.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프라하로 떠나보길. 카를교를 거닐다 버스킹 공연을 보고 노점상에서 마음에 드는 그림이나 귀걸이를 사보길. 존 레넌 벽에 들러 커플 사진을 찍어보길. 길을 걷다가 노천카페를 만나면 커피 한 잔 마시며 여유를 찾아보길. 해가 질 무렵이면 비셰흐라드에서 노을을 감상하거나 카를교 아래를 산책해 보길. 해가 지면 카를교에서 사랑을 속삭여보길.
만약 당신이 혼자라면 인생에서 한 번은 프라하를 만나보길 바란다. 예쁜 중세 도시에서 저절로 힐링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뜻밖의 풍경이 그대를 위로해 줄지도, 어쩌면 혼자여도 괜찮다고 토닥여줄지도 모른다. 그렇게 프라하에서 일상으로 돌아갈 기운을 얻고 다시 미래를 꿈꾸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