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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충환 Feb 06. 2016

장률의 "필름시대사랑" (2015)

포스터를 본 첫인상


<경주> <풍경><경계>의 장률 감독이고, 박해일이 보인다. 포스터의 색감은 썩 괜찮아보인다. 그런데 제목이 왜 "필름시대사랑"인지, 이게 무슨 의미인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영제목은 Love and.. 고. 

더더욱 모를따름이다. 사실 이게 흔히 말하는 "예술영화"인지, "멜로영화" 인지, "다큐멘터리"인지는 모르겠다. 보기전엔 그랬고, 보고나서는 셋다 해당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봤다.


영화는 총 4개의 파트로 구성된다. 


1) 극이 "일반 영화" 처럼 구성되는 파트

2) 극이 "실험적인 장면" 들로 구성되는 파트

3) 극이 "다른 영화 장면"에 다른 연관없는 대사로 더빙되어 구성되는 파트

4) 첫번째 파트와 거의 동일하지만 장면없이 대사로만 구성되는 파트


단편영화도 옴니버스 영화도 아니다. 

일반적인 구성이라고 볼수있는 첫번째 파트 이후 영화는 잘게 쪼개진다. 그 "쪼개지는 기준" 또한 매우 세세하다. 장면 일 수 있고, 소리 일 수 있다. 인물과 공간일수도 있다. 

심지어는 필름과 디지털, 혹은 대사와 자막.


파트2에서는 사람으로 대표되는 것이 영화를 구성하지않고, 영화 속 오브젝트로 존재하고있는, "사람이 아닌것" 으로 구성된다. 아무런 의미없는것을 촬영하는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파트2에서는 사람만이 존재하지않을뿐, 매우 다양한 영화적 연출이 존재한다. 혹은 그냥 불친절할수도 있고.

어리둥절한 머릿속을 정리하기도 전에 파트3에서는 또다시 영화가 나뉘어진다. 

이 시점에서 나도 좀 기분이 복잡해진건 당연한 수순이다.


박해일부터 한예리까지, 그들이 출연했던 과거작의 장면들이 나온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인용"되는게 아닌, 다시 더빙됨으로서 영화는 계속 이어진다.

우리는 "살인의 추억"을 보고있을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필름시대사랑" 의 3번째 파트를 보고있다.

이를 증명할수있는것은 눈이 아닌 귀다. 

즉, 장면(image)이 아닌 더빙된 음성(sound)이 3번째 파트를 규정하고있다.

그리고 다시 4번째 파트로 돌아왔을때, 영화는 마지막 실험을 단행한다.

영상을 제거하고 음성만을 남겨둔다.


이 장면에서의 대사를 기억한다면, 4번째 파트에서는 기분이 묘해진다. 우리는 이미지로 확인했을때는 한예리의 심정을 이해하지만, 사운드로 받아들일때는 그를 대변할수없다.


난해하거나 혹은 난감하거나


이러한 영화적 실험들이 넘쳐나는 "실험영화" 라고 볼수있으니,

사실상 박해일 보러갔던 관객들에게 애도를 고한다. 

(나쁜 영화가 아니고, 그냥 단지 어려운 영화를 봤을뿐이다.)


영화속에서 은유하는 부분이 제각각이고, 이는 해석할수있는 사람의 견해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 

감독들은 제각기의 "취미 영화"가 있는데, 사실상 <필름시대사랑>은 

장률이 영화에게 바치는 사랑을 다룬 취미영화에  가깝다. 

개인적으로는 짝사랑에 가깝다고 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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