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빈틈의 빈대들
대표와 몇몇 도라이바 임원들이 사내 시스템을 무시하고, 감정과 변덕이 심해지자 관리자급 인사들이 줄줄이 사퇴했다. 억울하게 몰린 경우도 있었고, 반강제 회유나 협박에 가까운 일도 있었다.
빈자리는 커져만 갔고, 처리해야 할 업무는 산더미처럼 쌓였다.
스마트하게 문제를 풀고 길을 이끌어줄 숙련된 경력자가 시급했다.
보통 경력자라 함은 인맥·전문성·리더십으로 인정받고 즉시 효과를 내야 한다. 그러나 좁은 업계에서 이미 평판이 나빠진 회사였다. 소문이 워낙 빠르다 보니 적합한 인재를 찾기가 쉽지 않았고 채용공고 지원율도 형편없었다. 면접날 잠수 타는 경우도 허다했다.
더군다나 겉모습은 외국계지만 속은 폐쇄적이고 제멋대로인 조직에서, 매일 특이한 캐릭터들과 사투를 벌이며 정의롭게 싸워줄 히어로 같은 사람을 채용시장에서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꺼낸 카드가 바로 ‘고문·컨설턴트’라는 임시 직함이었다. 주로 정계나 공공기관 출신을 정관예우처럼 모셔와, 가끔 그들의 황금 인맥 라인을 타고 필요한 연결고리를 얻는 식이었다.
사내 직급 구조는 역피라미드 같았다. 사원·대리는 드물고, 팀장·이사·고문 직급이 넘쳐났다. 상주하는 고문보다, 점심시간에 나타나 밥 한 끼·커피 한 잔 하고 사라지는 비상임 고문이 더 많았다. 덕분에 사무실은 가끔 동네 다방 같은 분위기가 났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숨겨왔던 꼰대 기질이 드러나, 실무자들의 시간은 불필요한 응대와 케어에 잡아먹혔다.
문제는 그들을 챙기느라 정작 하던 업무가 중단되고 지연된다는 것. 결국 ‘고문님 케어’가 끝나면 야근은 자동 확정이었다.
게다가 가끔 그들이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지인을 데려와 대접을 요구할 때면, 이미 탈진한 멘털을 붙잡으며 진짜 증발해버리고 싶었다. 그들도, 우리도 결국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급여를 받는 똑같은 월급쟁이일 뿐인데, 왜 굳이 여기서도 상전 행세를 해야만 했을까.
외부 컨설턴트를 모셔오는 건 단기 처방일 뿐,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었다. 오히려 조직 내부에서 진짜 일꾼을 길러내고, 그들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토양을 다지는 게 더 절실했다. 외부의 이름값이 아닌 내부의 실력과 주인의식이 쌓일 때, 회사는 비로소 무늬만 글로벌이 아닌 진짜 기업으로 자랄 수 있다.
결국 ‘고문님 케어’로 허비한 수많은 시간은 우리에게 하나의 교훈을 남겼다.
인재는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길러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