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빈틈의 빈대들
: 출장이랑 명목으로 호캉스 오는 본사 직원들
여름이면 이탈리아 본사 직원들이 네다섯 명이서 떼를 지어 한국 '정기 출장'을 왔다.
명목은 국내 사업장 실사였지만, 여름 출장만큼은 이상했다. 국내 직원들과의 대면 미팅도 없고, 하도급 업체 협력도 없었으며, 지방 사업장 실사조차 없었다. 그들이 한 일이라고는 우리가 매달 보내는 월별 리포트를 대충 훑는 정도였다.
한국에 오기 전부터 몇 주간, 그들로부터 메일이 쏟아졌다. “출장 준비 사항”이라는 명목의 요구 리스트였다. 본연의 업무 지시보다는 호텔 멤버십, 객실 컨디션, 무료 조식 메뉴 같은 걸 꼼꼼히 따지고 몇 차례나 확인했다. 정작 업무 관련 이메일은 체감상 3할도 되지 않았다. 퇴근 후 밤에도 띠링띠링 울리는 메일 알림에 성의껏 몇 단락 답변해도, 돌아오는 건 늘 똑같았다. “Grazie.” 딱 한 단어.
한국에 도착하고 나서는 서울 사무실로 매일 아침 출근했지만, 오전·오후 두 번은 꼭 스타벅스에 들러 에스프레소를 마셔댔다. 점심을 먹고 나면 오후 4시 반쯤 “시차 때문에 피곤하다”며 숙소로 돌아가는 게 일상이었다.
숙박·식사·교통비는 모조리 한국 지사의 몫이었고, 그들이 직접 지갑을 여는 순간은 딱 두 가지였다. 다이소에서 3천 원짜리 기념품을 살 때, 유니클로에서 셔츠를 집어 들 때.
어느 날, 그중 한 명이 무심히 내뱉은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아, 시원하게 에어컨 바람 쐬며 일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
그 한마디에 모든 게 설명됐다. 그들은 출장 명목으로 한국의 여름 피서를 즐기러 온 것이다.
남유럽의 여름, 몇백 년 된 석조 건물에 변변한 냉방 시설조차 없는 현실. 실제로 본사 건물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중세 성채에 갇혀 일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문화재 보호와 건축 규제로 인해 신식 건물은 드물었고, 에어컨과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사무실은 더욱 보기 힘들었다. 출장 다녀온 영업이사가 “하루라도 빨리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었다”라고 혀를 내두른 이유를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점심마다 “한국 음식은 짜고 맵고 건강하지 않다”라며 불평할 때면, 숟가락으로 한 대 후려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아야 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건네면 “이건 커피가 아니야”라며 얼굴을 찡그렸다. 에스프레소 한 잔에 영혼을 걸 듯 호들갑을 떠는 그 모습에 속으로 외쳤다.
“여기에 휴가차 놀러 온 주제에! 그 입 다물라.”
게다가 저녁이 되면 또다시 “와인 없는 식사는 상상할 수 없어”라며 레스토랑을 찾아 헤맸다.
보고서 검토보다 와인 리스트 검토에 더 진심인 듯 보였다. 한국의 무더운 여름밤, 우리는 땀에 젖어 야근 보고서를 정리하고 있었고, 그들은 에어컨이 빵빵한 룸에서 와인잔을 부딪치며 “사루테 Salute(건배)~!”를 외치고 있었다.
출장이랍시고 한국을 찾은 본사 직원들의 모습은, 사실 웃어넘기면 그만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풍경 속에는 묘한 진실이 숨어 있었다. 겉으로만 ‘글로벌’을 내세우고, 실제로는 무늬만 외국계인 회사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진짜 좋은 외국계 회사는 다르다. 문화적 차이를 빌미로 갑질하거나 피상적인 출장 놀음을 반복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지의 시스템을 존중하고, 서로의 차이를 조율하며, 직원들의 전문성과 노고를 인정한다. 그래야만 조직도 살고, 회사도 성장하며 한국시장에 오래 동안 버텨낼 수 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미래에 외국계 회사에 지원할 누군가가 있다면, 한 가지 조언을 해주고 싶다.
“브랜드 로고만 보지 말고, 그 회사가 얼마나 ‘현지와 함께 호흡하는가’를 보라.” 에스프레소 향기보다 중요한 건, 같은 공간에서 땀 흘리는 동료와 공감할 줄 아는 문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