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딩에세이] 내 커리어 장르는 블랙코미디 - 4(1)

#4-1 빈틈의 빈대들

by 직딩누아르

#4-1 빈틈의 빈대들

: 회사의 피를 빠는 달러 청구서


회사 돈은 항상 새어나갔다. 구멍 사이로 흘러내리는 피처럼, 회사 자금은 줄줄 새고 있었고 그 피 냄새를 맡은 빈대들이 드글드글 몰려들었다.


가장 큰 빈대는 ‘외국법인 법률 상담 및 컨설팅’ 명목의 청구서였다. 언제나 달러로 표기된 그 청구서는 제일 먼저 도착해 결제 목록 맨 위에 올랐다. 그런데 내역을 뜯어보면 전문적인 상법이나 행정법 유권해석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은 국내 실무진이 이미 루틴하게 처리하던 업무였다. 외국인 비자 발급, 외국인등록증 특급 진행, 취업규칙 검토, 노조 설립 저지, 특정 직원 해고 명분 마련 등 ‘그때그때 발등의 불 끄기’ 수준의 사건 해결이 전부였다.

돈을 들인 만큼 실무진 입장에서 얻는 체감은 거의 없었다. 변호사가 고급스러운 타임스 뉴 로만(Times New Roman)체로 작성한 A4 두 장짜리 의견서는 오직 외국인 경영진에게만 전달됐다. 세부 논의를 해보려 하면, 우회적이고 꼬인 표현만 늘어놓아 되레 고구마 10개를 물 없이 삼키는 답답함만 남았다.


영어를 잘한다는 이유 하나로, 또 유창한 법률·재무 용어를 구사한다는 이유 하나로, 한국을 여전히 ‘개발도상국 이하’로 보는 외국인 경영진은 그들의 말에 의심조차 품지 않았다. 경력이 화려할수록, 억양이 세련될수록 청구 금액은 늘어났고 달러 자리수는 거침없이 늘어났다.


허술한 틈이 오래 방치되면, 그곳에는 반드시 빈대가 번성한다.


호구 고객을 사랑한 로펌


대표의 기분은 늘 날씨처럼 변덕스러웠고, 그 감정의 파고에 따라 인간관계와 사업관계가 무너져 내렸다. 그에 뒤따르는 건 어김없이 법적 분쟁이었다.


이는 외국계 로펌에는 더할 나위 없는 먹잇감이었고, 외국계 회사인 당사는 아주 대표적인 호구가 되었다. 복잡하고 낯설어 보이는 국내법을 매끈한 영어로 번역해 조언을 늘어놓으면 대표는 그제야 안심했다.

현장에서 몸으로 겪고 얻은 법적 지식을 아무리 국내 직원이 풀어내도 믿지 않던 그였다. 동일한 내용을 좀 더 법률용어를 가미하여 영어 문장 위에 로펌 직인과 달러 단위의 청구서가 얹히면, 이야기는 달라졌다.게다가 변호사가 나서서 해당 실무 직원의 업무를 깎아내리고 대표의 비위를 살살 맞추면 더 마치 매서운 시어머니 옆 괘씸한 시누이같이 굴었다.


그리하여 회사 고정비의 3할은 언제나 변호사들의 호주머니로 흘러들어 갔다. 그리고 직원들은 또다른 외부 상전을 모시고 일하고 업무를 공유하고 비위를 맞춰야했다.


법률가들과 일하며 의도치 않게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남녀고용평등법 같은 인사팀 단골 메뉴까지 섭렵하게 되었다. 원래 마케터였는데, 이쯤 되면 “마케팅 자격증보다 노무사 시험 준비가 더 빠르겠다”는 농담도 나올 법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해외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사업을 했다면? 아마 나도 현지인들을 못 믿고, 그 나라 로펌에 목숨줄을 맡겼을 것이다. 전문가라 불리는 그들의 말이라면 금과옥조처럼 받아 적고, 달러 청구서를 보고도 “아, 이게 안전비용이구나” 하며 안도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냉정히 따지고 보면, 회사 돈을 뜯어가는 외부 전문가에게 들이는 정성의 절반만이라도 내부 직원에게 쏟는다면 어떨까? 최소한 퇴근 시간 맞춰 도망가진 않고, 책임은 끝까지 지려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 아닌가. 돈으로 묶여 있는 로펌 변호사보다, 월급으로 묶여 있는 직원이 훨씬 더 충직한 법이다.


결국 회사가 더 단단해지는 길은, 달러 청구서를 예쁘게 뽑아주는 로펌이 아니라, 회식 자리에서 삼겹살 불판을 예쁘게 갈아주는 실무진한테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직딩에세이] 내 커리어 장르는 블랙코미디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