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딩에세이] 내 커리어 장르는 블랙코미디 - 6

#6 글로벌 파트너십이라는 이름의 고스톱 (부제:하청은 누르는 게 제맛)

by 직딩누아르

글로벌 파트너십이라는 이름의 고스톱 (부제: 하청은 누르는 게 제맛)



“한국의 가장 큰 매력은 제조업 기반의 풍부한 경험과 우수한 인력을 기반의
협력업체들과 끈끈한 파트너십입니다.”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 대표가 단골처럼 읊는 레퍼토리다. 기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보도자료는 미소로 장식된다. 하지만 인터뷰가 끝나기도 전에 내 휴대폰에는 하청업체 대표들의 부재중 전화가 줄줄이 찍혀 있다.

'대금 결제는 언제 됩니까?'
'계약 조건이 너무 불공정합니다.'

'대표님은 대체 왜 무지막지하십니까?'
쌓여있는 문자함에는 이러한 항의 섞인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이게 바로 글로벌 파트너십의 민낯이다.


며칠 전에는 밤 열한 시가 채 안 돼서 보이스톡이 울렸다. 대표님이었다.
“너네 한국 업체들은 도통 믿을 수가 없어. 그들의 하청, 그 밑의 개인 계약자까지 다 뒤져봐. 재고 데이터도 조작했을 거야. 너네 한국인들끼리 짜고 치는 고스톱일지도 모르잖아? 내가 한두 번 속아?”

".............."


쌍팔년도 악덕업체도 아니고, 어떤 근거와 절차도 없이 계약사항을 위반하면서 직접 원청이 나서서 하청업체의 속살을 다 뒤져야 하는 세상이라니. 의심이 들면 경찰에 맡기든, 협상하든, 소송을 하든 해야 할 텐데—우린 오히려 수십 년 쌓아온 업체 간의 신뢰를 망치며 상도덕을 무덤에 묻어버린다. 업체들의 항의과 고성을 들으면서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양해를 구하면서 묵묵히 대표의 지시를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대체 이런 비이성적 지시는 어디서 비롯됐을까?

답은 간단하다. 아직도 19세기말 식민사대주의에서 살았던 것 같은 대표의 사고와 특히 옆에서 부채질과 장난질을 잘하는 독사 같은 말포이 같은 사내(2화 참조), 바로 A 때문이다. 대표의 신임이 살짝 흔들릴 때쯤이면, 그는 새로운 루머와 가짜뉴스를 단독 보고한다. 누구도 확인하지 못한 '신박한' 정보라며 지구 반대편 대표의 불안을 자극한다.

“이것들이, 감히 내 돈을?!”

대표의 혈압이 치솟을수록, A는 더욱 사랑받는다. 지구 반대편에서 늘 노심초사하고 있는 본인에게 용감하게 진실을 밝혀주는 A는 그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였다. 진실을 보고하는 B에게는 극진한 대우와 증인보호를 해주면서 그리고 항상 뒷처리는 내게 맡긴다. 진실을 찾기보다는 부서를 뒤엎고, 담당자를 마비시키는 쪽이 훨씬 간단하다.


결과가 기대와 다르면? 아니면 말고. 사과도, 보상도 없다. 대신 상처 입은 직원들은 묵묵히 자리에 앉아, 점점 무관심과 냉소로 굳어간다.

이 악순환은 협력업체와의 관계까지도 좀먹는다. 업체와 친하게 지내면 “너 뒷돈 받은 거 아냐?”라는 의심 섞인 비아냥이 날아온다.
“내 돈을 가져가는 놈들을 어떻게 웃으면서 대할 수 있어? 너도 같이 나눠먹는 거 아니야?”
이쯤 되면 화기애애한 미팅 따위는 불가능하다.


사업계획서상 전체 프로젝트 완공은 이미 2년 전에 끝났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협력업체 선정 뉴스만 세 번 번복했고, 업계에선 소문이 무성하다.
“저 회사랑은 손잡으면 뒤통수 맞는다. 소송 칼 꽂힌다.”
업체 관계자들은 우리를 피해 달아날 궁리만 한다. 나는 여전히 순진하게 믿었다. 외국 자본과 국내의 우수한 기술·서비스, 그리고 협력업체와의 시너지가 어우러지면 기업 가치가 배가될 거라고.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루머를 해명하고 담당자를 두둔할수록, 나는 경영진의 미운털만 더 단단히 박혔다. 결국 남은 건, 귓가에 맴도는 이명뿐.


나는 귀를 닫은 채 그저 대표의 연설문을 타이핑한다.


“한국 협력업체와의 관계는 환상적이며, 그들의 시너지를 통해 프로젝트 추진력은 더욱 탄력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이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은 협력업체 관리가 아니라, 현실과 연설문 사이의 간극을 매끄럽게 타이핑하는 능력이라는 것을.
진실보다 추한 것을 가리고 덮어야 하는 스킬이 더 중시된다는 것을……


외부에서 보면 그럴듯한 포장에 현혹되기 쉽다. 그러나 취준생이라면, 회사의 진정성을 가늠할 때 단순히 보이는 화려한 이미지나 언론 기사만 믿어서는 안 된다. 회사의 역사, 추구하는 방향성, 가치관과 조직 문화, 성과의 맥락 등 다양한 부분에 관심있게 지켜봐야 한다.


겉모습만 외국계일 뿐 속은 구태한 곳이 많다.
좋은 회사는 ‘글로벌 간판’이 아니라,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얼굴과 목소리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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