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딩에세이] 내 커리어장르는 블랙코미디 - 10

#10 현대판 무소불위(無所不爲) 폐행

by 직딩누아르

현대판 무소불위(無所不爲) 폐행

폐행: 임금에게 아첨해 총애를 받은 신하가 권력을 남용



인사담당자가 갑작스럽게 퇴사하기 한 달 전, 내게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는 오랫동안 고민한 사람처럼 한참을 뜸들이다가 결국 속내를 털어놨다.


“사내에 오래된 직원도 거의 없고… 이런 예민한 건 누구한테 물어봐야 할지도 모르겠고요. 그런데… 뭔가 이상해서요.”


순간 속에서 불길한 예감이 폭발했다.
'제발… 내가 떠올린 그 사람 얘기만 아니길.'
커피를 두 모금이 아니라 거의 들이켰다.


“그… A님이요. 학업을 이유로 주기적으로 결근했는데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고, 연차 신청도 없고… 코로나 때는 주 1~2회씩 안 오셨던 것 같은데요. 이런 경우는 처음 봐서요.”


그는 마지막으로 핵심을 찔렀다.


“그럼 경영진 승인 기록, 출근 대체 기록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요? 혹시 누가 승인했는지 아세요?”


질문은 너무 타당했고, 사실이라면 조직 차원의 조치도 있어야 했다.
보통은 학업 계획서 제출 → 승인 → 수업 후 증빙 제출이 정석이다.
그런데 이건 정석은커녕… 정석이 어디에 존재하기나 했는지조차 불명확한 케이스.

문제는 이 시기가 내가 휴직 중이었고, 나와 무관한 부서와 관련자들의 일이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A와 관련된 이야기는 늘

‘이건 정말 비밀인데…’라는 서막과 함께 오프 더 레코드로만 유통되던 '...라던데'들이었다.
잘못 입을 놀렸다간?
A의 특기인 ‘모함의 덫’에 걸려들어 말 그대로 회사 정치의 제물로 바뀌는 건 한순간이다.


그의 모습이 눈앞에서 무성영화처럼 재생되었다.

A는 “저의 학업이 회사의 미래를 열어줄 겁니다”라며

스스로를 비상계단이 아닌 대륙을 잇는 교량처럼 부풀렸다.
그리고 매번 지구 반대편에 있는 외국인 회장과 주고받았다는 ‘비공식 구두 승인’이라는 일방적 통보로 사규를 갈아엎는다.
그 카드는 마치 유효기간도 없는 무적 치트키처럼 작동했다.


그는 늘 조직 전체에 이렇게 선언했다.
“규정? 체계? 시스템? 당신이나 지켜. 나는 ‘예외’니까.”

그 태도에 절망한 직원들은 줄줄이 퇴사를 선택했고, 그 모습은 꼭 비엔나소시지 끓는 냄비에서 하나씩 터져 나오는 장면 같았다.

A는 자신의 박사과정을 훈장처럼 달고 다녔다. 필요하면 자랑으로, 필요하면 위협으로.

그런데 참 묘한 건—

그 박사가 도대체 어느 세계선에서 진행되고 있는지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
논문과 학위 소식은 수년째 감감무소식이고, 심지어 진짜 학교에 다니는지도 미스터리였다.
아마 쥬라기 공원보다 더 찾아보기 힘든 실체일 것이다.


그리고 한 달 뒤.
나에게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던 그 인사담당자도,

말없이… 정말 말없이 회사에서 사라졌다.


흔적이라고는 마지막 날 책상에 남겨진 반쯤 마신 아메리카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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