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딩에세이] 내 커리어장르는 블랙코미디 - 11

#11 반면교사와 타산지석이 떠오르는 지금...

by 직딩누아르

반면교사(反面敎師), 타산지석(他山之石)


최근 전국을 뒤흔든 대규모 정보 유출 사고로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기업의 뉴스가 연일 보도되었다.

역대급으로 센세이셔널한 사건이었고, 기업의 관리 소홀과 도덕적 해이에 대한 분노가 들끓으며 온 국민의 관심사가 되었다. 청문회가 열리고, 언론은 사건의 내막과 후폭풍을 쫓느라 분주했다.


그 뉴스를 보며 나는 묘한 기시감과 함께 순간 소름이 돋았다.

한때 내가 몸담았던 곳에서 반복되던 장면들과, 그다음에 이어질 수순까지 자연스럽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업무를 하며 방향과 반응을 예측하는 능력은 분명 도움이 되지만,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상황이 눈앞에서 재현될 때 느끼는 기시감은 언제나 불쾌했다.


실체가 불분명한 본사, 실시간 원격 지시


실질적인 사업장은 한국에 있지만 주요 경영진의 얼굴을 현장에서 보기는 쉽지 않았다.

그들은 지구 반대편에서 CCTV 화면과 중간 관리자들의 보고, 메신저 메시지로 모든 상황을 관리했다. 몇 년 전 중대재해법과 산업안전 관련 법규가 강화된 이후, 혹시 모를 사고로 법적 책임을 지게 될까 우려해서인지, 혹은 한국 사회의 엄격한 시선을 부담스러워해서인지 국내 방문을 반기지 않았다. 굳이 오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찾는 것은 영어에 능통한 검은 머리 외국인 변호사들이었다. 시간당 자문료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지만, 멀리 떨어진 경영진에게 그 비용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영어로 상황을 정리해 주고, 법적 방어 전략과 정치권 인맥까지 연결해 주는 그들이야말로 가장 믿을 만한 조력자였기 때문이다.


국내 언론 대응과 정부 관계자 미팅 결과를 보고할 때면 늘 같은 장면이 반복됐다.

한국전쟁 이후 아무것도 없던 이 땅에 자신들이 돈을 쏟아부어 산업을 일으켜 놓았는데, 돌아오는 건 비난뿐이라며 격앙된 목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그 분노를 묵묵히 받아내는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하곤 했다.


대화보다 법적 대응


한 번은 지자체의 행정 처분에 격분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진행하려 했고, 당시 관리자가 거의 석고대죄하다시피 하며 겨우 말린 일도 있었다. 대화와 조정보다 법적 대응이 먼저 떠오르는 방식은 늘 반복됐다. 실무진보다 변호사들이 더 신뢰받는 구조였다.
사내 법무 조직이나 상시 법률 자문 체계를 두자고 몇 차례 제안했지만, 언제나 검토 중이라는 답만 돌아왔다. 그리고 그 답은 끝내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실체에 대한 궁금증


회사 홈페이지에는 번듯한 본사 건물과 세련된 사무실이 있을 것처럼 소개되어 있었지만, 실제 주소지를 찾아가 보면 공유 오피스 한편에 놓인 책상 하나가 전부인 경우도 많았다. 세제 혜택을 위한, 이름만 존재하는 회사가 적지 않았다.


이런 구조에서는 해외 우회 상장을 통해 손쉽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까다로운 국내 상장 기준 대신 비교적 느슨한 해외 시장을 택해 투자금을 확보하고 운영 자금을 채웠다. 해외 투자자들이 국내 사업의 실제 상황을 세세히 파악하기 어려운 점도 도움이 되었다. 때맞춰 기사 한두 건 흘리고, 팟캐스트나 경제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추면 주가를 일정 수준 유지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문제가 발생하면 언제나 다른 이야기가 등장했다. 문화적 차이, 현지 행정의 비효율, 예측할 수 없었던 규제 환경 같은 설명이 뒤따랐다. 동시에 그동안 공들여 쌓아 온 정치권 인맥이 움직였다. 실제 사업의 중심이 한국에 있어도, 문제의 책임은 다른 곳으로 흘러가고 새로운 이슈가 만들어졌다. 그 과정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과 많은 돈이 얽혀 있었다. 진실이나 해결책보다는, 새로운 논란이 기존 문제를 덮는 방식이 더 익숙해 보였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며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의 홈페이지에 적힌 세련된 문구와 화려한 그래픽과 이미지 대신,

더 투명한 경영철학과 윤리경영, 구체적인 실천사항 그리고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려는 태도를 통한 국내 산업과 소비자들에게 전달되는 진심이 먼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신뢰는 피상적인 홍보 문구가 아니라,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보이고 증명되는 진실이 나타날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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