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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은 달 Feb 15. 2023

대출의 숲

30일 쓰기


책에 파묻히고 싶다. 검은 글자의 세상에 가닿아 현실은 까맣게 잊고 싶다. 온갖 이야기와 예술, 철학, 인문학의 단어들을 접배평자로 유유히 누비며 비루한 육신과 나약한 정신과 지난한 삶으로부터 도망치고 싶다.


밤이 되면 체력을 모두 탕진한 채 내일의 모레의 미래의 에너지를 끌어다 쓴다. 그렇게 당겨쓴 부채가 산더미만 해져 질식할 위기에 이르러서야 겨우 눈을 떴다. 다행이다. 아직 살아있다. 도망칠 곳도 도망칠 대상도 없다. 도망가야겠다는 마음만이 존재할 뿐. 잔뜩 쌓인 책들만이 가득할 뿐.


망각과 도피를 도모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들이 책장에, 마음에 숲을 이룬다. 그 숲을 모두 통과한 나를 상상한다. 그리하여 잠시 행복해진다. 그거면 되었다. 오늘도 나는 빌릴 책을 검색하고, 빌려온 책들을 들춰보며 납작해진 나를 힘껏 부풀려본다. 아직 희망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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