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자의 탄생-3

내가 지옥에 떨어진 이유

by 흑선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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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나는 이 비극의 원인을 19년전의 뉴욕에서 찾았다. 그러니까 최초의 소셜미디어 Six Degrees 가 뉴욕에서 탄생했다. 회사의 서비스는 수익 모델의 부재로 2001년 종료되었지만 얼마 후 다른 서비스들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2002년 등장한 링크드인, 페이스북, 트위터 등은 사람들의 일상에 빠르게 스며들었다. 이메일만 인증되면 누구나 계정을 만들어 글, 사진, 동영상을 업로드할 수 있었다.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점이 생겼다. 올라와서는 안 될 콘텐츠들이 올라왔던 것이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테러리스트가 조직원을 구하고 마약 중독자들이 마약을 거래했으며 인종차별적인 발언이 올라왔다. 사용자는 클릭 몇 번이면 유해한 콘텐츠에 노출되었다. 이런 문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소셜미디어 회사들은 사용자가 유해 콘텐츠를 신고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했다. 그 결과 2021년 페이스북은 3분기에 1360만 개, 인스타그램은 330만 개의 콘텐츠를 폭력 및 선동 관련 콘텐츠라는 이유로 제거했다. 유튜브는 같은 기간에 800만 개의 동영상을 삭제했다.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일부 사용자들의 무분별한 신고로 억울하게 불이익을 받은 사람들이 생겼다. 결국 회사들은 신고된 콘텐츠가 정말 문제가 있는지 일일이 확인해야 했다. 문제는 그 일을 ‘누가’ 할 것인가였다. 이런 일을 위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같은 미국 회사들이 비싼 돈 주고 현지인들을 고용했을까? 선진국에서 이런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을까?


일은 개발도상국으로 넘어갔다. 소셜미디어 회사들은 영어가 공용어인 인도, 필리핀 등에 직접 사무실을 세우거나 외주를 맡겨 값싼 현지 인력을 활용했다. 나를 고용한 회사의 경우는 후자였다. 직원들은 모니터 앞에 앉아 하루 종일 세계 각지에서 신고된 콘텐츠들을 일일이 보고 분류했다.


그럼에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이들이 모든 언어와 나라의 상황을 알지는 못한다는 거였다. 챗지피티가 없던 때에 보통의 인도인이 한국어로 적힌 혐오 발언을 읽을 수는 없었다. 소셜미디어 회사들은 어쩔 수 없이 한국에서 신고된 콘텐츠를 분류할 한국인을 뽑아야 했다.


물론 적은 급여에 이런 일을 하러 쿠알라룸푸르까지 올 한국인은 거의 없었다. 컨설팅 회사는 꾀를 냈다. 순진한 사회초년생들을 대상으로 자신들의 간판을 걸고 채용공고를 냈다. 마치 ‘삼성전자에서 인재를 뽑습니다’라는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했는데 합격해 보니 사무실 쓰레기 통을 비울 사람을 찾는 것과 같았다. 물론 이 일과 사무실은 고연봉을 받는 본사의 컨설턴트들과는 아무 접점이 없었다. 내가 헤드헌터에게 구체적인 업무 내용을 물어봤을 때 그가 비밀 유지 계약을 핑계로 알려주지 않은 게 이해가 되었다. 면접관이 면접 말미에 나에게 슬쩍 ‘자극적인 콘텐츠’에 노출이 되어도 괜찮냐고 물어본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런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몰랐던 나는 당연히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기대와는 정반대의 상황에 나는 혼이 나간 상태로 지사장과 간단한 면담을 나누었다. 그가 내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지갑을 가져가도 몰랐을 것이다. 이 일이 있고 난지 몇 년 동안 스스로에게 수 없이 물었다. 구체적인 업무 내용을 알려주지 않았을 때 왜 의심하지 않았을까? 왜 자극적인 콘텐츠가 구체적으로 뭔지 묻지 않았을까? 왜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나라에 덜컥 취업할 생각을 했을까? 왜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가 평범한 나에게 면접을 관심을 보인 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면접이 그렇게 쉬웠을까? 도대체 왜?


나는 비극의 원인을 내 안에서 찾기 시작했다. 나는 나를 치유하고 싶었다. 세상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생긴 상처를 아물게 하고 싶었다. 해결책은 간단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었다. 세상이 뭐라든 나를 품으면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상처 투성이인 나에게 채찍질을 했다. 하루빨리 한국을 떠나면, 이력서에 유명한 회사에서 일한 경력을 추가하면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 눈먼 바보는 어리석은 결정을 내렸고 그 대가를 치르게 된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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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담 후 나는 바로 업무 교육을 받아야 했다. 지사장은 한주 앞서 입사한 열댓 명의 베트남인 무리가 있는 회의실로 나를 안내했다. 그들 모두 나처럼 미끼에 낚인 건 아니었다. 일부는 이곳의 실체를 알고도 왔다. 베트남에서 은행원으로 일하던 한 남자는 여기 월급이 더 높아 이직했다고 말했다.


땅딸막한 필리핀 여자가 들어오면서 곧바로 교육이 이루어졌다. 그녀는 방의 불을 끄고 내 팔 너비의 두 배 정도되는 크기의 스크린에 피피티를 띄웠다. 우리는 신고된 콘텐츠를 분류하는 방법 대한 설명을 들었다. 분류 기준은 테러, 학대, 성적인, 잔인한, 스팸 등으로 다양했는데 예시로 각종 사진들이 화면에 나왔다. 얼굴이 썩어 문드러진 강아지, 토막 난 시체, 테러리스트의 깃발, 혐오 표현 등이 스크린을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우리에게 시체 성애자와 관련된 사진과, 동물을 학대하는 변태들의 영상은 무엇으로 분류되어야 하는지 알려줬다.


백 번을 다시 생각해도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회사 밖으로 나왔어야 했다. 취업사기 한 번 세게 당해 돈과 시간을 낭비했다 생각하고 한국으로 돌아갔어야 했다. 다시 채용공고를 뒤지고 이력서를 돌리면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공항에서 나의 새 출발을 축하해 주던 가족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들에게 알고 보니 취업 사기였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잘못된 선택으로 여기에 왔지만 그것을 오히려 기회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공포 영화의 클리셰와 비슷했다. 주인공은 관객에게 빤히 보이는 위험을 인지하지 못한다. 누가 봐도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집에 머물고, 딱 봐도 악령이 든 흉측한 인형을 옆에 두고 잔다. 마찬가지로 당시의 나는 이게 내 영혼에 얼마나 상처를 남길 수 있는 일인지 인지하지 못했다. 어쩌면 너무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방어기제가 발동해 현실의 심각성을 부정한 건지도 모르겠다. 머릿속에선 눈앞의 위기를 합리화하기 위한 말들이 분수처럼 쏟아졌다.


‘기왕 해외에 나왔는데 다른 회사로 이직을 준비하자. 하지만 그것만 하기에는 돈이 부족해. 일단 여기서 버틸 수밖에 없어.’


새로운 계획을 세운 나는 현재에 집중해야 했다. 스크린에 보이는 중동인이 어느 테러단체의 지도자인지 외워야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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