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자의 탄생-5

다녀왔습니다, 지옥에서

by 흑선백지

결국 나는 회사에 사표를 냈다. 회사는 내가 나갈 때가 돼서야 직원들의 정신 건강을 위한 상담사를 주 1회 불렀다. 물론 이는 다분히 형식적인 것으로 직원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집에 전화를 걸어 그동안 있었던 일을 어렵사리 이야기했다. 누나와 어머니의 탄식이 되돌아왔다. 누나는 나에게 기왕 거기까지 갔으니 한국으로 곧장 오지 말고 다른 나라에서 여행을 하면서 좀 쉬다 오라고 말했다. 나는 그 조언을 받아들였다. 평소 깔끔한 호주의 도시와 아름다운 자연에 마음이 끌렸기에 멜버른과 시드니를 10일 동안 여행하기로 했다. 얼마 없는 돈을 탈탈 털어 숙소와 비행기표를 예약했고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멜버른행 비행기를 탔다.


그동안의 불운을 보상하듯 11월의 호주는 여행하기 더없이 좋았다. 나는 고개를 어느 각도로 돌려도 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자연에 감탄을 멈추지 못했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에서 밀려오는 맑은 파도, 블루마운틴의 끝없이 펼쳐진 청록 빛 숲을 보며 나는 쿠알라룸푸르에서의 기억을 조금이나마 씻어낼 수 있었다. 호주 사람들은 친절했다. 그들은 미소를 띠며 No worries라는 말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 말마따나 이곳에서는 어떤 걱정도 사라질 것 같았다. 밤바람이 선선한 날, 나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무료로 나눠준 화이트와인을 홀짝거리며 오페라 하우스의 야경을 보았다. 지옥과 연옥을 거쳐 천국에 도달한 단테처럼 내가 말레이시아를 거쳐 도달한 호주는 천국 같았다. 하지만 내가 이곳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짧은 여행을 마치고 나는 시드니 공항에서 인천공항 행 비행기를 탔다. 얼마 지나자 구름 아래로 미세먼지 가득한 누런 하늘이 보였다. 어머니와 누나가 공항 입국장으로 나를 마중 나왔다. 우리는 간단한 포옹을 한 뒤 차에 짐을 싣고 집으로 출발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대충 알고 있던 누나는 애써 분위기를 띄우는 말을 했다.


“동생아,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을 거야.”


나는 대답 없이 창밖을 멍하니 보았다. 머리 위로 지나가는 인천 대교의 케이블들을 따라 쿠알라룸푸르에서 본 온갖 끔찍한 장면들이 빠르게 머릿속을 지나갔다. 가족과도 공유 못할 잔상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죄책감과 연민이 올라왔다. 이것들은 분명 내 마음속에서 쉬이 사라지지 않을 터였다. 짧았지만 강렬했던 몇 개월의 지옥 여행은 내 마음에 사라지지 않을 낙인을 남겼다.


쿠알라룸푸르가 지옥이었다면 내가 다시 돌아온 한국은 무엇일까? 헬조선이란 단어처럼 여전히 고통뿐인 지옥일까? 아니면 속죄와 구원의 가능성이 있는 연옥일까? 연옥이다. 아니 연옥이어야만 한다. 그래야 쿠알라룸푸르에서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 그 고통은 ‘세상은 원래부터 그랬어’라는 말로 치유될 수는 없는 것이니까. 유대인 학살이라는 지옥을 본 쉰들러는 그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속죄의 길을 걸었다. 마찬가지로 나는 속죄의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한국이라는 연옥에서.


그리고 그것은 나의 위선의 시작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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