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간을 혐오하기로 했다-2

죽어서도 치유받지 못하는 이들

by 흑선백지

1

‘이 세상이 멸망해 버렸으면…’


소설 '삼체'의 주인공인 예원제는 인간 혐오의 끝에 도달한 인물이다. 물리학 교수인 그녀의 아버지는 문화 대혁명 당시 수업 내용이 공산당 사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혁명분자로 낙인찍혔다. 예원제의 어머니는 같은 물리학자였음에도 홍위병인 예원제의 여동생과 함께 아버지를 고발했다. 결국 예원제의 아버지는 피투성이가 되어 공개 처형장에 올랐고 홍위병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며 죽음을 맞았다.


그녀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던 그녀 또한 공산당에게 불순분자로 낙인찍혀 북방 삼림지대에서 원시림을 벌목하는 일을 하게 된다. 뛰어난 물리학자였던 그녀는 이후 거대한 전파 망원경이 있는 군사 기지에 배치된다. 기지의 송수신 장비를 보수하던 중, 전파로 인해 하늘에서 수많은 새들이 추락해 죽는 것을 목격한다.


점차 능력을 인정받은 예원제는 전파 망원경으로 외계에 메시지를 보내는 연구를 수행하게 된다. 공산당의 감시를 받으며 일하던 중 한 메시지를 받는다.


“이 세계가 당신들의 정보를 받았다. 나는 이 세계의 평화주의자다. 내가 먼저 당신들의 정보를 수신한 것은 행운이다.

경고한다. 회신하지 마라! 회신하지 마라! 회신하지 마라! 당신들의 방향에는 1000만 개의 항성이 있다. 대답하지 않으면 이 세계는 송신원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다. 하지만 대답을 하면 송신원 위치가 파악되어 당신들의 생성계는 침략당하고 당신들의 세계는 점령당할 것이다. 회신하지 마라! 회신하지 마라! 회신하지 마라!

이 메시지에 회신하면 우리 문명이 너희를 추적하여 섬멸할 수 있으니 더 이상 전파를 쏘지 말아라."


발신자는 분명 인류를 압도하는 고도로 발달한 외계 문명이었다. 예원제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주변을 둘러본다. 그녀를 감시하는 눈은 없다. 그녀는 전파 신호를 입력한다.


“와주십시오, 인류는 자구력을 상실했습니다. 제가 이 세계를 당신들이 점령하는 것을 돕겠습니다.”


회신 단추로 향하던 그녀의 손이 멈춘다. 손끝의 떨림이 멈추지 않지만, 이내 버튼을 누다. 인류애를 상실한 한 인물은 그렇게 인류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2

예원제는 비합리적이었다. 그녀는 명석한 물리학자임에도 초보적인 일반화의 오류를 범했다. 자신의 삶을 고통에 빠뜨린 것은 중국 공산당이지 인류 전체가 아니었다. 인류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대신 뛰어난 두뇌로 인류가 더 나은 길을 가도록 이바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정체불명의 외계 침략자들을 지구로 부르는 가장 파괴적인 선택지를 골랐다.


헬렌 켈러는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일로도 가득하다’고 말했다. 그녀의 말처럼 전쟁은 반전 운동을 동반한다. 지구 한쪽에서 인간들이 숲을 파괴할 때, 반대쪽에서는 나무를 심는 사람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유기된 반려동물은 입양된다. 인간에게 받은 상처는 인간으로 치유된다. 이는 부분에 갇히지 않고 전체를 보는 균형 잡힌 시각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모두가 헬렌 켈러처럼 자신의 고통을 극복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는가? 다시 말해 인간에게 상처받은 인물은 필연적으로 인간으로부터 치유받는 경험을 할 수 있는가? 당연히 아니다. 이것이 세상의 부조리한 점이며 이는 소설속에서만 발견되지 않는다.


팔라우의 대통령 수랑겔 휩스 주니어는 현실에서 이러한 부조리를 경험하는 대표적인 인물일 것이다. 팔라우는 필리핀에서 동쪽으로 3시간 정도 비행하면 나오는 섬나라다.


인구 2만 명에 영토 크기가 남한의 200분의 1에 불과한 이 작은 섬나라는 자연을 보호하는 전통을 지켜왔다. 2015년에는 자국 해역의 80%를 해양 보호 구역으로 지정했다. 아름다운 풍경 때문에 관광객이 증가하여 자연이 훼손되자 팔라우는 입국하는 모든 사람에게 팔라우 서약(문장이 아름다우므로 한번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에 서명하도록 요구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팔라우는 기후 위기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받았다. 다른 나라에 비해 탄소 배출량이 현저히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해수면 상승으로 국토가 잠기고 농작물이 죽었다. 20년에 한 번 올 법한 대형 태풍이 1년에 세 번씩 찾아왔으며, 집들이 쓰나미에 허물어졌다. 휩스 대통령은 2009년 한국에서 열린 환경 회담에서 당시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서류를 제출했다. 서류에는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 전 세계가 '반드시 해야 할'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강대국들은 이 '반드시 해야 한다'는 표현을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어떤 나라 대표는 팔라우 인구가 2만 명이라는 말에 "오! 별문제 없네요. 그냥 이주하면 되겠네요."라고 말했다. 물론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들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문제의 심각성을 느낀 일부는 육류 소비를 줄이거나 탄소를 포집하는 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들이 현실을 바꾸지는 못했다. 섬은 계속해서 물에 잠기고 있었다. 그는 결국 2021년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절규했다.


"느리고 고통스러운 죽음에는 품위가 없다. 차라리 우리의 섬을 폭격하라."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팔라우는 느리게 죽어가고 있다. 만약 휩스 대통령이 외계 문명으로부터 회신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받는다면 어떻게 행동할까? 만약 예원제와 같은 행동을 한다면 나는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3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나의 인류애도 시간이 지나면 회복될까? 흔히 인간은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한다고 하는데, 과연 인간한테 받은 상처도 아물 수 있을까?


한국인인 나는 이에 대한 답을 이미 알고 있다. 시간은 해결책이 아니며, 인간한테 받은 상처는 당사자가 죽어도 계속된다는 것을. 일제강점기에 억울하게 죽은 조선인들은 끝까지 일본인에게 적개심을 품었을 것이다. 이들은 불운했다. 상당수는 후세 다쓰지, 요시노 사쿠조, 가네코 후미코처럼 조선의 독립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던 일본인들을 만나지 못했다. 따라서 그들의 경험은 제한적이고 일본인 전체에 대한 그들의 분노도 합리적이지 않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편향성을 비판할 수 없다. 나는 피해자의 후손으로서 죽은 그들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일반화의 오류를 문제 삼지 않는다. 일본 여행을 가서 현지인의 친절을 경험한다 하더라도 나는 일본인에 대한 피해자의 분노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인류가 만들어낸 문제들은 언젠가 기적적으로 해결될 수도 있다. 기후 위기로 인한 해수면 상승도, 공장식 축산으로 인한 동물 학대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 또한 언젠가는 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출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팔라우 국민들의 삶이, 인간 때문에 고통스럽게 죽어간 수많은 동물들이 되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2027년 2월부터 개 식용이 금지된다. 나는 한국에서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고통받는 강아지들이 줄어든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하지만 이는 2027년 2월 이전에 도살될 강아지들과는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다.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이 진보한다고 해도 그 진보가 과거의 희생자들에게 보상이 되지는 않는다.


나는 인간 때문에 고통받는 생명들에게 눈을 뗄 수 없었다. 결국 인류애는 회복되지 않았다. 그것이 나를 부정하는 것이라도.


(계속)




'흑선백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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